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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30 08:59 수정 : 2010.09.30 08:59

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롯데월드 제공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놀이동산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 vs 해녀들이 입는 옷

옷에는 꿈과 노동이 있다. 똑같은 옷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이 변한다. 색이 바래고, 헐거워지고 애초 디자이너가 계획했던 옷은 자기만의 옷이 되어간다. 할머니가 남기고 간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 앙고라 스웨터는 점점 할머니의 앉은 자세를 닮아갔다. 고등학교 때 입었던 여름 교복은 사각사각 스치는 느낌 사이로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더운 밤공기가 두텁게 담겨 있다. 애초에 기성복이란 존재하기 힘든 것 아니었을까. 인터넷 쇼핑몰, 동대문 패션몰, 청담동 편집매장처럼 옷을 살 장소는 너무도 많지만 어디에도 그대만을 위한 기성복은 없다.

기성복이란 에누리 없지만 딱히 정답도 없는 통계의 기술이다. 그런데 아현동에는 특별한 옷을 만드는 옷집 하나가 있다. 여기엔 기성복도, 자기 치수를 내미는 고객도 없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 약속 장소로 향할 때마다 가게 안을 바라본다. 완성된 옷은 보이지 않고 실과 바늘, 형광색 천, 묘한 표정의 장신구들이 가득하다. 안에서는 새벽 2시에도 한 남자가 옷 만들기에 몰두한다. 밤이 되면 어깨 뽕이 과하게 들어간 재킷이나 에스에프적인 느낌의 분홍 드레스 같은 범상치 않은 옷들이 마네킹 위에 걸린다.

한평 남짓한 좁고 허름한 공간에서 제작된 옷들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동화 속 주인공들의 옷을 닮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옷일까. “놀이동산에서 일하는 분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요.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시선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옷을 입고 계속 일해야 하니까 편해야 하고요.” 이 옷들은 보는 기능을 극대화한 옷이다. 동화 속 왕자들은 결코 일하는 법이 없지만 이 옷을 입는 사람에게 이 옷은 노동복이다. 옷을 입는 순간 노동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높은 무대에서 팡파르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놀이공원의 상식이자 패션이다.

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현시원 제공

지난겨울엔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에서도 기성복 아닌 특별한 옷을 만났다. 할머니의 호방한 목소리에 이끌려 집에 들어선 나는 할머니의 마당에 앉아 마당을 가득 채운 해녀복을 보았다. 해녀복의 허리춤에는 고철 덩어리가 빙빙 말려 있고 그 철 덩어리를 꽃무늬 천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허리에 납 덩어리를 채워야 무거워서 더 잘 가라앉아. 지금 이건 막 입는 거야. 사진 찍을 거면 새 옷 찍어줘요.”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셔서 추동복(FW) ‘신상’처럼 보이는 미끈한 다이빙 슈트를 들고 나오셨다. “내가 물질로 평생을 살았는데 나는 물속이 환하게 보여. 겨울에도 이 고무는 춥지가 않아요. 이 옷은 내가 다 만들지.” 고무로 된 검은색 해녀복에는 놀이공원 옷과는 정반대로 어떤 무늬와 장식의 흔적조차 없었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놀이공원 퍼레이드는 관중의 시선을 받으며 딱딱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지만, 해녀복 입은 여인들은 누구도 볼 수 없는 깊은 바닷속으로 홀로 들어간다. 전자가 타인의 꿈을 먹고 사는 장식적인 디자인이라면 후자는 1700년대 여인들도 입었던 물옷에서 기원한 그녀들을 위한 오래된 디자인이다. 하나는 보는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고, 하나는 입는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지만 노동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띠를 이룬다.

〈탐라지〉에는 “제주도에 여자가 남자보다 많으며 줄지 않고 느는 까닭은 활동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세상의 끝에 있는 여러 모양의 디자인을 탐험해 보겠다고 시작한 ‘디자인 극과 극’ 칼럼. 지금 끝에서 떠올리는 건 (해녀들처럼) 활동하는 말괄량이들에게 애당초 기성복은 없다는 것이다. <끝>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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