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롯데월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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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놀이동산 일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 vs 해녀들이 입는 옷
옷에는 꿈과 노동이 있다. 똑같은 옷도 시간이 지나면 느낌이 변한다. 색이 바래고, 헐거워지고 애초 디자이너가 계획했던 옷은 자기만의 옷이 되어간다. 할머니가 남기고 간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 앙고라 스웨터는 점점 할머니의 앉은 자세를 닮아갔다. 고등학교 때 입었던 여름 교복은 사각사각 스치는 느낌 사이로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더운 밤공기가 두텁게 담겨 있다. 애초에 기성복이란 존재하기 힘든 것 아니었을까. 인터넷 쇼핑몰, 동대문 패션몰, 청담동 편집매장처럼 옷을 살 장소는 너무도 많지만 어디에도 그대만을 위한 기성복은 없다.
기성복이란 에누리 없지만 딱히 정답도 없는 통계의 기술이다. 그런데 아현동에는 특별한 옷을 만드는 옷집 하나가 있다. 여기엔 기성복도, 자기 치수를 내미는 고객도 없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지나 약속 장소로 향할 때마다 가게 안을 바라본다. 완성된 옷은 보이지 않고 실과 바늘, 형광색 천, 묘한 표정의 장신구들이 가득하다. 안에서는 새벽 2시에도 한 남자가 옷 만들기에 몰두한다. 밤이 되면 어깨 뽕이 과하게 들어간 재킷이나 에스에프적인 느낌의 분홍 드레스 같은 범상치 않은 옷들이 마네킹 위에 걸린다.
한평 남짓한 좁고 허름한 공간에서 제작된 옷들은 크레파스로 그려진 동화 속 주인공들의 옷을 닮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옷일까. “놀이동산에서 일하는 분들이 입을 옷을 만들어요.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시선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옷을 입고 계속 일해야 하니까 편해야 하고요.” 이 옷들은 보는 기능을 극대화한 옷이다. 동화 속 왕자들은 결코 일하는 법이 없지만 이 옷을 입는 사람에게 이 옷은 노동복이다. 옷을 입는 순간 노동이 된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높은 무대에서 팡파르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놀이공원의 상식이자 패션이다.
입는 순간 노동이 시작된다. 현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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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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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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