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맨이 될 것이냐 병풍이 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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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셔터·병풍 똑같은 차단 기능…의인화땐 의미 확 달라져
셔터를 다시 보게 된 건 서울 을지로 3가에서였다. 모든 가게가 문을 꼭 닫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가게 주인들의 활발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을지로 거리의 주인공은 단연 셔터였다. 내린 후 불현듯 처마 끝이 다시 보이는 것처럼 평소 거리의 배경막에 불과했던 셔터가 유난스럽게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정수라의 노래 한 구절처럼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여요’ 느낌이 찾아왔다랄까.
셔터의 기능은 명확하다. 완벽한 차단이다. 안을 볼 수가 없다. 드릴로 구멍 낼 수도 없고 손가락으로 ‘뽕’ 창호지를 뚫을 수도 없다. 셔터(shutter)는 움직이는 벽 또는 문의 일종이다. 예전 영어를 배울 때 단어 뒤에 ‘er’가 붙으면 ‘모모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셔터는 이름 그대로 ‘닫는’ 자의 구실을 한다. 도난, 파손 등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재 시설이다. 셔터는 세상이 요구하는 제 기능을 자기 몸통으로 해낸다. 가림막 기능에는 그럴싸한 디자인의 버튼이나 신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몸 전체가 필요하다. 반대편인 실내를 가리기 위해서 말이다.
셔터는 현대적인 가림막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줄무늬가 규칙적으로 그어진 셔터는 대한민국 전국 공통의 디자인이다.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실험처럼 어떤 모던함의 표현이라도 있는 것일까. 서구의 20세기 초반 디자이너들이 셔터를 본다면 기계적 청결함이 깃든 표준화된 디자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J.H. 덜이 디자인한 세 폭의 스크린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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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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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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