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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9 09:22 수정 : 2010.09.09 09:22

셔터맨이 될 것이냐 병풍이 될 것이냐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셔터·병풍 똑같은 차단 기능…의인화땐 의미 확 달라져

셔터를 다시 보게 된 건 서울 을지로 3가에서였다. 모든 가게가 문을 꼭 닫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가게 주인들의 활발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을지로 거리의 주인공은 단연 셔터였다. 내린 후 불현듯 처마 끝이 다시 보이는 것처럼 평소 거리의 배경막에 불과했던 셔터가 유난스럽게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정수라의 노래 한 구절처럼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여요’ 느낌이 찾아왔다랄까.

셔터의 기능은 명확하다. 완벽한 차단이다. 안을 볼 수가 없다. 드릴로 구멍 낼 수도 없고 손가락으로 ‘뽕’ 창호지를 뚫을 수도 없다. 셔터(shutter)는 움직이는 벽 또는 문의 일종이다. 예전 영어를 배울 때 단어 뒤에 ‘er’가 붙으면 ‘모모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처럼 셔터는 이름 그대로 ‘닫는’ 자의 구실을 한다. 도난, 파손 등으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는 방재 시설이다. 셔터는 세상이 요구하는 제 기능을 자기 몸통으로 해낸다. 가림막 기능에는 그럴싸한 디자인의 버튼이나 신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몸 전체가 필요하다. 반대편인 실내를 가리기 위해서 말이다.

셔터는 현대적인 가림막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줄무늬가 규칙적으로 그어진 셔터는 대한민국 전국 공통의 디자인이다.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실험처럼 어떤 모던함의 표현이라도 있는 것일까. 서구의 20세기 초반 디자이너들이 셔터를 본다면 기계적 청결함이 깃든 표준화된 디자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J.H. 덜이 디자인한 세 폭의 스크린 병풍.

셔터 디자인은 이야기가 아닌 소리를 담고 있다. 닫고 내릴 때의 스르르륵 굉음이 연상되는, 셔터는 강한 직선의 이미지다. 영화에서 방해꾼과 악당들은 동굴 안에 셔터풍의 내려오는 문을 설치해 위협감을 준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히어로가 셔터가 내려오기 전에 몸을 아래로 쭉 뻗어 밖으로 내달리던 장면은 스릴의 표상이다. 셔터가 쳐진 공간은 모두 똑같아 보인다. 셔터 주위의 간판은 기능을 잃고 차단, 휴식이라는 의미로 통일된다.

셔터에는 이야기가 차단돼 있다면 병풍은 비밀스런 이야기의 디자인이다. 병풍도 셔터처럼 공간 사이를 차단하고 가르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셔터가 거리에서 실내와 실외, 공과 사의 영역을 구분해 준다면 병풍은 실내에서 자기만의 유토피아, 내 이야기를 꿈꾸게 돕는다. 옛 중국 화가가 그린 그림 중에는 병풍을 배경으로 홀로 사색에 잠긴 왕자님의 초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병풍 폭에 그려진 이야기 그림은 셔터 디자인에 비해 ‘보는 맛’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사실 그 너머의 공간을 보이지 못하게끔 하는 게 병풍의 포인트다. 철제 셔터에 비해 병풍은 유약하지만 반대로 격조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병풍에는 예술적 열정과 재치도 담겨 있는데 꼭 동양문화의 산물만은 아니다. 디자이너이자 사상가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친구 J. H. 덜이 그린 세 폭의 스크린은 꽃과 나비가 풍성하게 춤추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풍의 낙원을 보여준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셔터가 위아래 수직으로 움직이며 공간을 가른다면, 병풍은 수평으로 접히거나 펼쳐지며 공간에 자리한다. 셔터와 병풍 디자인에 대한 의인화도 재밌다. 병풍이 요새 병풍처럼 배경으로 서 있는 텔레비전 속의 대책 없는 연예인들을 가리킨다면, 셔터 맨은 보통 능력 있는 여성 자영업자의 셔터를 밤낮 내려주는 친절하고 무해한 남편을 시사한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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