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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11 18:26 수정 : 2010.08.11 18:26

아이를 위한 포크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까다로운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분화되는 디자인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계절이 변하듯 변덕스럽게 변하는데 정말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 가능할까? 이를테면 어린아이에게 4인용 식탁이란 너무도 거대한 것이다. 지금은 두 손가락으로도 휙 잡는 물컵이 어렸을 때엔 너무 커서 손에서 자꾸 미끄러졌다. 할머니에게 금성 세탁기의 덮개는 무거웠고, 아파트 계단의 스테인리스 난간은 너무 차가웠으며 요강은 한밤중 꼭 필요한 보물단지 같은 디자인이었다.

나는 지금 꼬마도 할머니도 아니지만, 내가 실내에서 유토피아를 이루지 못한 여러 이유들이 아직 많다. 가까운 이유를 찾으라면 그건 플러그 사용법에 있다. 전자레인지의 콘센트를 뽑고 그 자리에 다리미의 전원을 연결하려고 할 때 좌절한다. 자석처럼 꽉 붙은 플러그가 바닥에 놓인 멀티탭에서 도통 잘 빠지지가 않는 것이다.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은 내가 이 정도 일도 못하다니, 사물과 친해지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이 까다롭고 예측 불허인 인간들을 만족시키느라 디자인은 오늘도 변화한다.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전기 플러그에서 그 변화를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꾸었다는 디자이너 강순모씨는 툭 하고 몸체를 누르면 소켓에서 분리되는 플러그 ‘톡툭’(Tok took·왼쪽)을 만들었다. 무척 힘들게 전기 콘센트를 꽂았다 뺐다 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를 위해 이 사물을 만들었다. 플러그 톡툭에는 볼펜을 눌러 심을 나오게 해서 쓰고 스위치를 눌렀다 켜는 우리 주변의 심플하고 친근한 원리가 담겨 있다. 위트 있는 이름처럼 하얀 플러그 몸통을 가볍게 톡 눌러 소켓에 접촉시키고 다시 툭 눌러 분리하는 방식이다. 거창한 위장술은 없지만 배려심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분리되는 플러그 ‘톡툭’(Tok took)
일상적인 사물이면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사물로 우리 곁엔 포크가 있다. 플러그와 포크는 형태는 다르지만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점에서 같다. 포크도 전기 플러그처럼 밖으로 날카롭게 나온 몇 개의 갈고리를 이용해 목표 대상에 꼭 맞게 정확하게 눌러야 한다는 점에서 포크 사용법과 플러그 사용법은 닮아 있다. 다만 뾰족한 금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포크와 달리 강순모의 플러그는 감전 등의 이유로 위험해 보이는 금속성을 부드럽게 감췄다. 강순모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 플러그를 만들었다면, 스위스 디자이너 지빌레 슈퇴클리가 만든 파란색 포크(위)는 꼬마들을 위한 제품이다. 포크의 몸통이 양날개를 가진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난감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포크보다 꼬마들에게는 실용적인 디자인이다. 투정 부리는 꼬마에게 ‘윙~ 비행기 들어간다’ 하면서 ‘맘마’를 먹이는 건 정말 유니버설한 일인가 보다. 음식에서 입으로 향하는 포크의 이동을 비행기의 활주로 둔갑시킨 상상력이 재밌다.

비행기 포크는 꼬마들을 위한 것이지만 포크의 이름은 어른이 지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 포스 원’에서 힌트를 얻어 ‘에어포크 원’이다. 어린이를 위한 포크와 노인을 위한 플러그는 만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상극이다. 플러그로 스테이크 한 점을 찍어 먹을 수 없고, 아무리 호기심이 발동한다고 한들 포크를 벽면의 콘센트에 넣어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시원 독립큐레이터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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