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월드컵 공식구 ‘텔스타’ vs 통일신라시대 주사위 ‘목재 주령구’
|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최초 월드컵 공식구 ‘텔스타’ vs 통일신라시대 주사위 ‘목재 주령구’
지난주 토요일 밤, 차두리의 폭풍 질주를 보면서 태어나 처음 축구공에게 감사했다. 이런 장면을 볼 수 있게 해주다니.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엔 피구공 맞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었는데 저 축구공에 맞아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축구공을 향해 움직이고 돌진하는 차두리의 모습은 야생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다. 만화 <피구왕 통키>나 <슬램덩크>의 소년들이 수없이 던지던 공에선 느낄 수 없었던 후광이랄까. 경기 중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는 지휘자는 저 둥근 축구공이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공식 축구공 ‘자블라니’는 화려하게 멋을 냈지만 우리 눈에 익은 축구공은 뭐니뭐니해도 최초의 월드컵 공식구 ‘텔스타’다. 12개의 검은 오각형과 20개의 흰 육각형 조각들이 둥근 원의 형태를 감싸고 있다. 별모양의 간소한 변형인 육각형과 오각형이 만나서 블랙 앤드 화이트의 심플한 패턴을 이룬다. 동네 일요축구회나 꼬마들이 놀이터에서 차고 노는 점박이 형태의 친근한 디자인이다. 멋은 없어도 단단해 보이는 보통명사 축구공의 매력을 거침없이 뽐낸다.
완전한 구면에 가깝게 만들어진 이 흑과 백의 공은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선보였다. ‘텔스타’라는 공의 이름과 흑과 백을 강조한 디자인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해 월드컵이 텔레비전으로 최초 위성 생중계가 되면서 ‘텔레비전 안의 별’이라는 의미의 텔스타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농담인지 과장인지 모르겠지만, 흑백 텔레비전에서는 흑백 패턴의 공이 화면발 잘 받기 때문에 아디다스가 그렇게 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축구공의 흑백 교차는 단지 시각적인 장식의 차원이 아니다. 흑백은 날아가는 공의 회전에 따른 궤적을 보여주며, 축구 선수들이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공을 인지하는 데 필수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1872년 영국 축구협회가 ‘둘레가 68~71㎝ 구면이어야 한다’고 합의한 이후 축구공의 기본 모양은 ‘버키 볼’로 통칭된다. 미국의 천재 건축가 리처드 버크민스터 풀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이유가 재밌다. 건축가 풀러가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가진 건축물, 그중에서도 돔 형태를 진지하게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축구공은 오각형, 육각형이 어울려 완전한 원형을 이루는 효과적인 실험의 결과와 닮아 있는 ‘개념 있는’ 공인 셈이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