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노점 음식.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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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길거리 노점 음식 vs 백화점 푸드코트 음식
길은 끝이 없다. 그래서 세상 모두를 맛볼 수 있다. 거스 밴 샌트 감독의 영화 <아이다호>에는 끝없는 길이 펼쳐진다. <아이다호>에서 말하는 ‘맛’은 식욕과는 분명 다르지만 나는 ‘거리에서의 맛’을 자주 만나며 세계를 배운다. 특히 서울 종로 거리를 걸으며 세상의 ‘맛’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다. 종로 낙원상가를 지나면 ‘세상 모두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식욕의 냄새를 맡는다. 돼지머리, 꽃 모양의 떡, 케밥이 공존한다.
거리에 노출된 음식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정육점에서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고깃덩어리들은 마치 사육제에 거대하게 바쳐질 신의 선물 같다. 거리에 노출된 떡볶이, 토스트 같은 노점 음식들엔 상상의 여지없이 불량식품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도시의 공공 디자인 정책가들은 노점상을 지우개처럼 깨끗이 거리 위에서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엊그제 새벽 명동 입구에서 만난 토스트를 파는 상인에게 토스트 리어카는 생존이다. 버터와 1리터짜리 우유, 식빵 봉지와 지글지글 쇠판 위에서 끓는 기름은 다른 토스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한데 숙련된 장인처럼 요리 재료와 도구가 딱딱 각도에 맞게 진열된 데 눈길이 갔다. 자신이 설 자리 옆에는 낮은 의자를 만들어 놓고 케첩, 식용유, 냅킨 등을 가판대 아래에 구획을 지어 쌓아놓았다. 진열이라기보다 효과적인 배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식탁 디자인이자 이 남자의 직장이다.
토스트 리어카는 ‘맛’을 경험하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경제적인 장소다. 특별한 기술이나 비용은 필요 없고 적재적소를 찾아 사물에 제 공간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좁은 리어카는 요리사의 주방과 음식 가게 입구의 가짜 음식 디스플레이, 먹는 의자가 한꺼번에 결합된 곳이다. 주문을 하면 토스트는 제작에 들어간다. 토스트에 대한 기대가 까다롭지 않은 우리는 1천~2천원의 저렴한 가격을 지불한다. 높지 않은 기대, 음식의 제작 과정, 먹는 시간의 모든 것이 노출된 검소한 거리의 식탁이다.
길 건너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들어간 음식들은 180도 다른 대접을 받는다. 백화점 푸드코트도 길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전세계의 맛은 최대한 잘 포장된 가공된 상태다. 특급 호텔에서 하룻밤 명멸하듯 최고 대우를 누리는 음식과 식자재들이다. 음료수부터 유제품, 포장된 각종 육류, 생선류들은 베냐민이 봤던 20세기 초 거리의 아케이드처럼 그 자체로 세공된 볼거리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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