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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24 19:33 수정 : 2010.03.01 11:08

몸뻬바지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시드니에서 사온 쫄바지의 정체는 ‘몸뻬’거나 ‘청바지’거나





2월 초 적도를 넘어 한여름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나는 굉장한 걸 생각했던 건 아니고, 다만 몸의 동작과 형태가 옷에 따라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쫄바지를 즐겨 입는 여인의 관절과 숏 팬츠 입은 할아버지의 허벅지를 참 많이 봤다. 사람 살점 보기 힘든 혹한의 겨울을 살다가 갑자기 노출한 사람들 틈에 있는 건 잠시 노래가 멈춘 나이트 홀에서 옆 사람의 맥박을 따라 숨고르기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열흘 후엔 평소 잘 입지 않는 시드니풍 쫄바지를 평상복인 양 사들고 왔다. 옆에 있던 엄마가 “어머, 몸뻬바지랑 똑같네”라고 소리친 꽃무늬 쫄바지가 내 눈엔 청바지처럼 보였다.

서울에 돌아와서 보니 이건 몸뻬바지였다. 몸뻬처럼 입고 벗기 편한 고무줄에 특히 허리춤이 배가 부르거나 고프거나 상관없이 일에 열중할 수 있을 만큼 편했다. 매혹적으로 보였던 분홍 꽃무늬는 밥이나 김치가 묻어도 마을 나갈 수 있는 몸뻬용 위장 무늬였다. 분명히 호주에선 20~30대 사이에 유행하는 브랜드라고 했는데 편하고 화사한 옷을 좋아하는 이웃 할머님께 선물하고 싶었다. 가사노동용으로 입으면 흘러내리지도 않고, 촌스럽지만 정겹다고 몸뻬바지의 장점을 생각했다.

티브이에선 아이돌 스타들이 몸뻬바지를 입고 나오고,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컵스가 몸뻬와 꼭 닮은 ‘배기바지’를 만든 게 뉴스지만 몸뻬는 칼로 베일 만큼 날카로운 역사가 있다. 몸뻬(もんぺ)는 일본에서 메이지 시대 이전부터 추운 농촌지방에서 입던 작업복이었다. 일제는 1941년 학내 애국반 활동을 강화하고 여성들을 방공훈련에 동원하면서 몸뻬를 강요했고 1944년에 이르러 ‘부인결전복장’, ‘부인국민복’이라는 이름으로 ‘몸뻬 필착운동’을 펼쳤다. ‘몸뻬 입지 않은 여성은 전차 타지 말라’거나 ‘새 옷감으로 이상한 몸뻬를 만들지 말라’는 희한한 규정들은 여성의 노동력을 통제하려는 과격한 명령이었다.

편하게 입는 ‘이지 룩’(easy look)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청바지는 몸뻬의 극단에 있다. 미국 서부 시대의 작업복에서 출발한 청바지는 20세기를 거쳐 청춘과 실용의 상징이자 반항의 매력의 패션이 됐다. 헐렁함으로 통일된 몸뻬와 달리 딱 붙는 스키니 진부터 땅을 쓸고 다니는 힙합까지 청바지는 다양한 자기 취향의 격투장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몸뻬와 달리 청바지 디자인은 유행과 함께 세월도 탄다. 흰 운동화에 입던 조다쉬나 아랫단 접어 입던 뱅뱅 스타일은 몸뻬바지보다 더 격하게 촌스러울 수 있으니까.

청바지
심벌을 물음표(‘?’)로 삼은 게스는 이번 봄 ‘로즈 골드’라는 청바지(오른쪽)를 내놨다. 럭셔리 데님의 진수를 표방한 신제품엔 반짝이는 핑크빛 스와로브스키 장식이 엉덩이에 도도하게 박혀 있다. 한계가 많은 한국인의 체형을 완벽한 섹시 핏으로 탈바꿈하는 데는 이효리가 빠지지 않는다. 예능 프로에서 몸뻬바지 입는 스타와 청바지 입은 이효리는 표정부터 극과 극이다. 다르지만 몸뻬와 청바지는 모두 가격 대비 성능 좋은, ‘노동자’와 친한 디자인이다. 자유든, 통제든 이상한 명목으로 꽃무늬 쫄바지 강요하는 사람 없어서 좋다.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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