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벌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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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애드벌룬 vs 콘돔
생일 파티나 결혼식에는 왜 풍선이 단골로 등장할까. 풍선의 동그란 모양과 고무 질감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미라도 있는 걸까. 재주는 곰이 넘고 칭찬은 누가 받는다고 풍선은 하는 일 없이 그 존재만으로 전세계 어린이와 키덜트들에게 사랑받는다. 제 힘으로 동그랗게 형태를 부풀릴 때 만족감이 느껴지고, 갖고 놀다가 팡 터뜨리면 모처럼 장난기를 발휘할 수도 있어서? 어쨌든 형태를 맘껏 바꾸는 건 재밌고, 가격도 저렴하니 만인의 장난감으로 통용되는 게 이해는 간다. 풍선을 마냥 귀엽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느낀 건 작가 남화연의 드로잉 ‘애드벌룬 감시 카메라’를 본 이후다. 그림 속에서 애드벌룬은 우리를 감시하는 카메라를 몸통 속에 숨기고 있다. 노랑·빨강·하얀색의 귀여운 디자인이지만 안에는 통치와 규율이라는 딱딱한 어른의 세계가 본체를 드러낸다. 놀랄 건 없다, 현실이니까. 서울시청 주변 위에 떠 있는 애드벌룬은 언제나 긴 슬로건 천을 늘어뜨리고 있다. 관변행사를 알리거나 강한 주장을 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무언가를 ‘홍보’한다. 동화 속에는 4차원 세계로 주인공을 데려가는 열기구가 있지만 현실의 애드벌룬은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위치를 점하기 위해 ‘하늘’에 떠 있다. 꼬마가 놀다가 안타깝게 놓쳐버린 풍선이 아니라 글이나 그림으로 대상을 홍보하는 애드벌룬(ad ballon·광고 풍선)인 거다. 지금 지구의 하늘에는 몇 개의 애드벌룬이 떠 있을까. 밴쿠버엔 겨울올림픽 선수촌을 감시하는 애드벌룬이 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분양’이라고 써 있는 빨간 애드벌룬을 봤다. 시력검사할 때 나타나는 풍선처럼 아스라한 인상이었다가 이내 ‘분양’이라는 글자와 함께 막 완성된 삭막한 골조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 애드벌룬 제작업체 홈페이지에 가면 ‘고래 벌룬’, ‘비행선 벌룬’, 오픈한 가게 앞의 ‘춤추는 풍선’까지 동그란 풍선의 원형을 극단적으로 바꿔놓은 디자인들을 볼 수 있다.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유효함’이 디자인의 중요한 조건으로 작동하는 어른들의 풍선이다.
콘돔 착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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