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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3 20:36 수정 : 2010.02.07 15:18

애드벌룬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애드벌룬 vs 콘돔





생일 파티나 결혼식에는 왜 풍선이 단골로 등장할까. 풍선의 동그란 모양과 고무 질감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미라도 있는 걸까. 재주는 곰이 넘고 칭찬은 누가 받는다고 풍선은 하는 일 없이 그 존재만으로 전세계 어린이와 키덜트들에게 사랑받는다. 제 힘으로 동그랗게 형태를 부풀릴 때 만족감이 느껴지고, 갖고 놀다가 팡 터뜨리면 모처럼 장난기를 발휘할 수도 있어서? 어쨌든 형태를 맘껏 바꾸는 건 재밌고, 가격도 저렴하니 만인의 장난감으로 통용되는 게 이해는 간다.

풍선을 마냥 귀엽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느낀 건 작가 남화연의 드로잉 ‘애드벌룬 감시 카메라’를 본 이후다. 그림 속에서 애드벌룬은 우리를 감시하는 카메라를 몸통 속에 숨기고 있다. 노랑·빨강·하얀색의 귀여운 디자인이지만 안에는 통치와 규율이라는 딱딱한 어른의 세계가 본체를 드러낸다. 놀랄 건 없다, 현실이니까. 서울시청 주변 위에 떠 있는 애드벌룬은 언제나 긴 슬로건 천을 늘어뜨리고 있다. 관변행사를 알리거나 강한 주장을 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무언가를 ‘홍보’한다. 동화 속에는 4차원 세계로 주인공을 데려가는 열기구가 있지만 현실의 애드벌룬은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위치를 점하기 위해 ‘하늘’에 떠 있다. 꼬마가 놀다가 안타깝게 놓쳐버린 풍선이 아니라 글이나 그림으로 대상을 홍보하는 애드벌룬(ad ballon·광고 풍선)인 거다.

지금 지구의 하늘에는 몇 개의 애드벌룬이 떠 있을까. 밴쿠버엔 겨울올림픽 선수촌을 감시하는 애드벌룬이 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분양’이라고 써 있는 빨간 애드벌룬을 봤다. 시력검사할 때 나타나는 풍선처럼 아스라한 인상이었다가 이내 ‘분양’이라는 글자와 함께 막 완성된 삭막한 골조의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 애드벌룬 제작업체 홈페이지에 가면 ‘고래 벌룬’, ‘비행선 벌룬’, 오픈한 가게 앞의 ‘춤추는 풍선’까지 동그란 풍선의 원형을 극단적으로 바꿔놓은 디자인들을 볼 수 있다.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유효함’이 디자인의 중요한 조건으로 작동하는 어른들의 풍선이다.

콘돔 착용기
애드벌룬 디자인의 반대편에는 뭐가 있을까.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콘돔!”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이다. 바람 넣기 직전의 얄팍한 풍선과 업무 개시 전의 콘돔은 오히려 형태가 닮았다. 고무 혁명으로 상용화된 콘돔은 재질과 느낌이 비슷하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환상에 동원된다는 쓰임새도 한통속이다. 하지만 애드벌룬이 만질 수 없는 저 멀리 올려보는 것이라면 콘돔은 가까이 지상에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애드벌룬은 거리에서 다수가 보고, 콘돔은 반대로 실내에서 한 명에 의해 ‘쓰이는’ 물건이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에 신경 쓰는 쪽은 도리어 콘돔이다. 무지갯빛 컬러 선택은 이미 파티 풍선의 화기애애함을 넘어섰고 캔디 모양, 사이즈 변화, 고무향 제거까지. 크기는 작지만 재주는 콘돔이 앞서 부린다. 뉴욕시는 올겨울 콘돔 디자인 콘테스트를 열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사무소 엑스와이제트(XYZ)가 디자인한 콘돔 착용기(오른쪽)가 2007년 그해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 최고상에 뽑혔다. 이유는 “사회·문화·국가 간 존재하는 격차를 극복하게 하는 흔치 않은 디자인 제품”이기 때문이었다. 배려심마저 깊은 어른들의 장난감이다.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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