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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20 20:47 수정 : 2010.01.20 20:48

‘클래식 TV’(엘지전자)

[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엘지 ‘클래식 TV’ vs 자동차 내비게이션





지난가을 톈안먼(천안문) 광장의 붉은 전광판은 참 멀리서도 보였다. 광장을 압도하는 대륙풍 디자인이었다. 신나게 춤추고 사진 찍는 소수 민족들의 모습은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처럼 제멋대로였다. 한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돌 기념 영상이 나오는 전광판 스크린이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화면의 힘은 괴이했다. 이렇게 큰 전광판을 소화하는 나라가 중국이구나. 전광판은 실내를 뛰쳐나온 텔레(tele: 멀리) 비전(vision)이자 세계의 중심이었다.

뭉뚝한 브라운관부터 얇은 엘시디 티브이까지 티브이 디자인의 진화는 ‘멀리 보는’ 기술과 궤를 같이한다. 여기서 ‘멀리 보는’ 기술은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건 아니다. 티브이로 인해 거리가 먼 달나라 모습까지 보게 됐지만 작렬하는 기미나 주름처럼 육안으로 잘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볼 수 있게 됐다. 최근 텔레비전은 미니멀한 디자인 뒤로 최신 기술이 숨어드는 추세. 이런 의미에서 신제품 ‘클래식 TV’(엘지전자·오른쪽)는 꽤나 맹랑하다. 더 멀리 더 잘 보게 해주는 데엔 관심 없다는 듯 도도하게 철 지난 네 발로 서 있다. 뒤가 통통하고 볼록한 브라운관의 귀환은 오히려 낮은 버전의 기술을 택해 어느덧 희소가치가 생긴 옛 티브이의 형태를 복원시켰다. 뚜두두둑 소리 내며 돌아가던 채널도, 더듬이처럼 나와 있던 안테나도 기억 속 모습 그대로다.

통통한 브라운관 형태로의 복귀는 퇴행으로도, 복고의 유행만으로도 볼 수 없다. 가전제품이라는 걸 깜빡 잊을 만큼 대상을 의인화시킨 네 다리는 우주 생물체를 연상시키는 실내 장식품처럼 보인다. ‘추억의 영상모드’라는 설명이 붙은 흑백, 세피아 모드에서 느껴지는 시간감각도 동시대적이다. ‘클래식 티브이’는 광장도 거실도 아닌 방에 어울릴 법한 디자인이다. ‘클래식 티브이’는 그 자체로 1966년 금성사가 만든 국내 1호 제품을 상당 부분 오마주했지만 1970년 일본 JVC사가 내놓은 ‘니비코 3240 GM’과도 닮았다. 팝디자인의 아이콘인 니비코 티브이는 추파춥스 같은 밝은색과 대담한 동그라미 형태로 장난스런 낙천주의를 보여줬다. 하이테크에 의해 사라졌던 이런 장난기가 ‘클래식 티브이’에서 오랜만에 읽힌다.

승용차 내비게이션
세계를 멀리 보여주는 디자인으로는 승용차 내비게이션도 맹활약한다. 내비게이션은 기교 없는 테두리에 터치스크린을 고집스레 보여준다. 목적지를 안내하는 역할. 티브이의 모공이나 주름 같은 디테일은 사치다. 간결한 점선면 기호만이 디지털 지도 위에 별처럼 빛난다. 사력을 다하지만 때때로 엉뚱한 실수가 잦은 내비게이션의 디자인은 기계적이고 차갑다. 운전하며 이걸 본다는 건 시청이 아니라, 잠깐 ‘힐끗’ 보기다. 그래서 적들 몰래 펼치는 보물지도처럼 필요한 정보‘만’을 담는다. 내비게이션은 보는 방식 못지않게 지리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옛 실내를 추억하게 하는 클래식 티브이와 달리 내비게이션은 멀리 보여주는 대신 갖고 있던 길 찾기 감각을 퇴행시킨다. 길을 기억할 필요는 점점 사라지고 동네 풍경을 보려고 뒷산을 탐험하던 꼬마들을 보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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