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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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슬로건 없는 생활은 불가능할까? 특정 이상향과 목표의식을 담은 슬로건은 표어부터 동상에 이르기까지 텍스트와 이미지의 세계 속에 차고도 넘친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만 해도 ‘나는 할 수 있어요!’라는 구호가 있었다. 말투도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있’을 가장 높고 당차게 발음했다. 유치원이 유별났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슬로건, 표어, 급훈 등을 따르거나 비웃거나 외면하거나 하면서 지낸다. 뇌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슬로건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닌데 거리의 풍경이 된 이 슬로건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휘갈겨 쓴 강요된 반성문 같다. 글자는 뭔가 훈계하는 듯하고 교실 뒤에서 두 팔 들고 서 있던 친구의 표정도 떠오른다. ‘바르게 살자’ 돌덩어리는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가 1999년부터 전국 곳곳에 세우고 있는 표석이다. 이 돌덩어리는 주장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자 공간을 구성하는 환경 디자인이다. 한데 수백 개가 넘는 표석 디자인을 누가 기획하고 만드는지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별 관심이 없다. ‘바르게 살자’ 표석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텍스트로 환원시킨다. 이미지는 곧 글자다. 바위는 사라지고 표어만 남는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야생적인 돌 위에 인공으로 파낸 다섯 글자라니. ‘다섯 자로 말해요’ 게임도 아니고 고인돌 같은 문화유산도 아닌데 신촌, 종로, 서대문 등 잘 드러나는 장소에 골라서만 서 있다. 부조를 이용하거나 돌로 형태를 조각한 건축물, 공예품, 표석 등은 많지만 이렇게 압도적으로 글자만을 담은 설치물은 흔치 않다. 비바람에 끄떡없는 돌 위에 문자를 새기는 제작 방법은 지극히 원시적이다. ‘바르게 살자’는, 제안인 척하는 명령을 담은 검은 서체는 어딘가 무시무시하다. 이유는 크기와 전달 방식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신촌 오거리에 세워진 돌덩어리를 줄자로 재보니 전체 너비가 2m가 넘었다. 첫 글자 ‘바’만 해도 가로 28㎝, 세로 23㎝. 상상할 수 없이 큰 폰트의 글자다. 바르게 살자는 제안은 오늘날 이토록 거대하고 낯선 미래다. 청유형의 ‘바르게 살자’ 표석이 가까운 현재와 미래라면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은 과거를 기념하는 슬로건이다. 이순신, 안중근 동상을 비롯해 1, 2공화국 당시 수많은 국가 기념조형물을 제작했던 친일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했다. 텍스트 자체를 보여주는 ‘바르게 살자’ 표석과 달리 맥아더 동상은 대상을 이상화하는 ‘이미지’의 힘을 전략적으로 구사했다. 맥아더는 누구보다 쭉 뻗은 8등신 몸매로 하늘 높이 서 있다. 기고만장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은 포즈, 전쟁터를 굽어보는 흡사 할리우드 배우 같은 꽃 중년으로 이상화됐다. 그런데 웬걸. 동상이 제작된 1957년에 맥아더는 이미 일흔일곱 노인이었다. 동상 옆 비석은 한술 더 뜬다. 띄어쓰기 한 칸 없는 숨 가쁜 말투로 “정의에는 국경이 없다” “다그라스 맥아더 장군의 천재가 발휘된 인천”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런 게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리얼리즘 조각의 전형적인 이상화 방식이다. 동상 철거 논란이 점화됐다는 걸 이곳의 잠든 노병은 알 리가 없다. 한 손에는 쌍안경을 쥐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도 많다. 현시원 객원기자 sonvadak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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