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한겨레 자료사진)· 디자이너 앙드레 김(씨네21 손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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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거니는 직각의 군홧발, 그 목에 두른 건, 짙은 쥐색 목도리. 추워서 걸치는 게 목도리지만 목도리는 때로는 권위와 지위를 부여한다. 빛나는 런웨이에서, 수만 관중이 모인 청계천 광장에서 패션 감각은 야망과 고집과 앞날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남자가 손만 댔다 하면 디자인은 ‘판타스틱’해지고 ‘엘레강스’해진다. 1935년생 모던 보이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흰색 의상을 고집한다. 오직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옷을 입는 그는, 겨울이면 타탄체크 무늬의 도톰한 목도리를 맨다. 붉은색이 감도는 타탄체크 목도리만을 앙드레 김 특유의 방식으로 몸에 걸친다. 목도리의 널찍한 양 날개를 두 어깨에 툭툭 걸쳐놓으면 천은 등 뒤로 길게 늘어진다. 목도리는 소품이 아니라 우아한 요술 망토처럼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밝힌 표현을 그대로 빌려오면 “우주시대의 이상을 보여주는 흰색 의상에 세계적 공감을” 드러내는 목도리를 찾다가 지금의 것을 만났다. 맞다. 풍성한 흰색 옷에 올라앉은 붉은색 타탄체크 목도리는 세계적이다. 비범한 이 남자를 공허한 우주가 아닌 세계적 감수성과, 땅 위의 유행과 연결해준다. 타탄체크는 옛 스코틀랜드 용사들이 입었던 옷감에서 시작됐다. 빨간색, 녹색, 황토색 등 여러 색의 줄무늬가 직각으로 교차해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 겨울이면 명동 거리의 리어카나 동대문시장 매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무늬다. 앙드레 김 쪽은 “직접 디자인한 것은 아니다. 쌀쌀한 계절에는 늘 이 디자인을 착용한다. 스무 개쯤 갖고 있다”고 전했다. 앙드레 김처럼 흰색 옷에 걸칠 자신은 없지만 타탄체크 무늬는 실생활에서 의외로 무던하게 빛나는 디자인이다. 앙드레 김에게 앙드레 김만의 타탄체크 목도리가 있다면 정치인들도 겨울이면 단색의 목도리를 맨다.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거나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를 위해 하나의 색을 택한다. 춥기도 하겠지만 선거에서 몇 번을 찍으면 되는지 한눈에 쉽게 알아보라고 상징색을 동원해 목도리를 둘둘 맨다. 날씨는 쌀쌀하나 마음은 따뜻하게 ‘서민적으로’, 될 수 있는 한 아무렇게나 맨 듯이 꼭 묶는 게 좋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처럼 꽈배기 형식으로 매거나 앙드레 김처럼 늘어뜨리거나 너무 춥다고 얼굴까지 가려서는 안 된다.
현시원의 디자인 극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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