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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3 19:04 수정 : 2009.12.23 19:06

새로운 5시리즈 디자인을 알리고 있는 BMW의 디자인 대장, 아드리안 판 호이동크. 베엠베코리아 제공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정보 보안 이유로 숨기고 가리는 대기업 디자인실…문 열고 뽐내는 베엠베에서 배우자

대한민국 디자인은 유명하다.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정도는 안 되더라도, 대한민국 컬링보다는 유명할 거다. 레드닷, IDEA, IF 등 세계적인 디자인 상을 석권하는 것은 물론, 인력 규모부터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200여명의 디자이너가 일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이너가 20여명인 것에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딱 여기까지다. 그 이상의 정보는 없다. 디자이너도 많고, 상도 많이 타는데, 그 많은 디자이너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디자인을 했기에 상을 받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홍보 담당자는 정보 보안을 이유로 든다. 기업의 미래를 그려가는 요원들이기 때문에 외부와 함부로 만날 수 없다는 논리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밖에 나가서 펜을 잡는 것도 금지다. 펜을 잡고 자동차를 그리면 이래저래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라나? 그래도 그렇지, 친구가 부탁하는데 차 한 대 못 그려주냐?

아무튼,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패쇄적일 때, 독일의 베엠베(BMW)는 디자인연구소 문을 활짝 열어 전세계 자동차 저널리스트 60여명을 초청했다. 1박2일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내년에 나올 6세대 5시리즈의 디자인 발표와 더불어, 디자인 스토리, 디자인 철학과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 담당 디자이너들과의 대화 등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새로운 5시리즈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뉴 5시리즈를 디자인하면서 키드니 그릴(콩팥 모양으로 생긴 베엠베 그릴)을 바짝 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어” 이런 이야기에서부터, “각 문짝의 앞부분이 뒷부분보다 아주 약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가 있어야 주행 시 바람 소리도 덜 나고 보기에도 더 단정하지” 이런 어려운 내용까지 들을 수 있었다.

베엠베의 이런 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도 7시리즈의 발표에 앞서 전세계 저널리스트들을 초청해, 전용 주행시험장에서 천막을 치고 클레이 모델(신차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찰흙 비슷한 물질로 만든 모형차)을 보여줬다. 작년 가을에도 새로운 Z4를 발표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두 명의 여성 디자이너를 소개하면서 상세한 디자인 스토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디자인 홍보 전문가)라는 직책을 가진 직원이 여럿 있다.

우리에겐 아직 이런 게 없다. 가끔 디자이너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한 장 뽑기 위해 백만 장 그렸어요” 하질 않나, “주말에도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와서 계속 일했어요” 등의 처절한 소리만 꺼내 놓는다. 이 시점에서 필자가 하고픈 얘기는 ‘디자인 알리는 것도 잘하자’는 거다. 디자인 잘하려고 잘난 디자이너 가려 뽑았고, 디자인 상도 그렇게 많이 받는다면, 이제 제대로 알릴 때가 됐다. 디자인 잘해 놓고 알리지 않아서 이상한 루머로 얼룩지는 것처럼 억울한 것도 없다. 또 디자인 잘했는데 디자이너 인터뷰 이상하게 해서 졸지에 바보 되는 경우도 여럿 봤다. 마지막으로 다시 말한다. “디자인만 잘하지 말고, 디자인 알리는 것도 신경 좀 쓰자. 응?” 이건 정말 마지막이다. ‘디자인 옆차기’는 이번 글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1년 반 동안 고마웠다. 설마, 울고 있니?

장진택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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