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X-7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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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경제불황 오면 찬밥 신세 되는 디자이너…디자인 혁신 통한 경비절감 사례 배워야
얼마 전 만난 굴지의 중견기업 디자인 팀장에게서 들은 푸념이다. “참 힘들다. 디자인해서 올리면 ‘팽 팀장, 요즈음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하면서, ‘이거 빼고, 저거 빼고, 요렇게 (대충) 디자인하자’고 하지. 회사 어려운 건 알겠는데, 그래도 쓸 돈은 써야잖아. 알면서도 (돈 때문에) 후진 디자인 하는 내 마음 알지?” 그녀의 퍼렇게 멍든 마음, 알 것 같다. 이번에는 굴지의 중견기업 임원에게서 들은 반대쪽 푸념이다. “요즈음 다들 어렵잖아. 경영하는 사람들은 돈 줄이려고 별짓 다 하는데, 디자이너들은 참 철이 없어요. 직원 감원하고, 자재 값 ‘네고’하고, 고철까지 내다파는 거 뻔히 알면서 제품(박스)만 찬란하면 뭐해? 디자이너는 매번 돈 쓸 생각만 한다니까.” 맞다. 요즈음 경영하는 사람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다닌다. 그러니 멋지고 예쁜 거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철없어 보일밖에. 한때 ‘디자인 경영, 경영 디자인’ 외치면서 철수와 영희처럼 친해졌던 디자이너와 경영자. 하지만 신종플루만큼 무서운 경제불황을 지나며 둘 사이에 껄끄러운 금이 생겼다. 경영에서는 현재 ‘불황 이겨내기’가 한창이다. 학교에서나, 현장에서나, 아끼고, 나누고, 줄이는 불황 경영에 여념이 없다. 반면 디자인 쪽에서는 아름다운 조형 만들기, 기발한 기능, 멋지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며 감탄한다. 존경하는 인물도 색다르다. 경영 쪽에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원가절감의 귀재, 카를로스 곤을 최고로 치지만, 디자인 쪽에서는 자동차공학의 결정체였던 베엠베(BMW)를 불꽃 조형물로 승화시킨 크리스 뱅글이 유명하다. 이런 식의 내용으로 ‘디자이너는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라는 식으로 ‘옆차기’하려는데, 오래전에 인터뷰한 김의석 삼성전자 디자이너의 말이 ‘두둥’ 떠올랐다. 오래전 일이라 조사까지 조목조목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전세계로 수출하는 모니터의 물류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돈을 줄여서 멋진 디자인에 활용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일명 고양이 모니터로 불리는 CX-710P(사진)를 디자인했다. 납작하게 다리를 접어서 박스에 들어가는 이 모니터는 당시 다른 모니터에 비해 박스 크기가 3분의 2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컨테이너 속에 더 많이 넣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물류비용 절감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김의석 디자이너는 이 모니터로 전세계 디자인상 12개를 휩쓸었다. 이게 벌써 5년 전, 2004년 겨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디자이너는 돈 아낄 줄 모르는 철부지’라고 쓰면 여기저기 억울한 디자이너가 많을 뻔했다. 삼성전자의 원가절감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꽤 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요즈음 잘나가는 삼성 엘이디(LED) 티브이의 테두리가 그렇다. 일반적인 텔레비전의 테두리는 네모반듯한 플라스틱 위에 도색, 후가공, 조립 등 몇 개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최신 엘이디 티브이의 테두리는 투명 플라스틱으로 한번에 ‘툭’ 찍어 만든다. 이렇게 단순한 공정으로 만들면 원가도 줄고, 인건비도 줄고, 공장설비도 줄고, 불량률까지 줄어들어서 원가절감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데 삼성 엘이디 티브이는 왜 이리 비싼 거야? 장진택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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