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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25 20:54 수정 : 2009.11.25 20:54

‘모토폰’. 모토롤라 제공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허장성세 강한 인도인 겨냥한 모토폰…살뜰한 디자인에 패션 피플 ‘잇’ 아이템으로





남들은 다 애플 아이폰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판에 ‘디자인옆차기’에서는 철 지난 초저가 모토롤라 휴대폰 하나를 소개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살 수도 없고, 사도 쓸 수 없는, 매우 답답한 휴대폰으로서, 2007년 인도에서 출시된 물건이다. ‘모토폰(사진)’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 휴대폰은 이동통신을 처음 만나는 인도인들을 위해 특별히 저렴하게 만들었다. 괜히 가격만 높이는 슬라이드나 폴더, 터치 같은 것, 심지어 컬러 화면이나 좁쌀만한 카메라까지도 모두 들어내고 전화와 단문 메시지 등의 원초적 기능 중심으로 고안된 것이다.

당시 이 제품 디자인을 총괄한 황성걸 모토롤라 디자인 센터장은 “인도는 한마디로 ‘폼’ 잡는 나라였다”며, “그들의 이런 감성을 고려하여 저렴하지만 ‘폼’ 잡을 수 있는 휴대폰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남들이 ‘우와!’ 하고, 자신은 ‘뿌듯’할 수 있는 휴대폰이었다. 물론, 저렴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인도처럼 계급이 남아 있는 지역에서는 ‘허장성세’가 여전히 통한다. 전문가들은 계급에 눌린 욕구불만의 분출구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디자인된 모토폰은 두께가 9㎜에 불과했고, 몸통은 다림질한 듯 반듯했으며, 모토롤라 레이저부터 써온 형광빛 라인까지 넣어 잔뜩 ‘폼’을 잡았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오랜만에 동원된 흑백 화면은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인도인들을 위해 강한 태양 아래서도 잘 보이도록 흑백 대비를 강하게 줬고, 먼지가 많은 인도의 대기를 고려하여 키패드 및 각종 버튼의 굴곡을 최대한 없앴다. 틈이 있으면 언제든 먼지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의 전력 인프라를 고려해 통화대기 시간을 대폭 늘리기까지 했다.

인도를 위해 특별히 디자인한 모토폰은 인도에서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유럽, 북미, 호주 등 세계 전역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면서 ‘부작용’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좋고 멋진 것만 골라 쓰는 트렌드 세터, 얼리어답터, 패션 피플들에게 예정에 없던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쓸 수도 없는 이 휴대폰을 애써 구해서 소장한 사람도 있고, 요게 왜 한국엔 안 나오지, 하는 이들도 꽤 된다. 필자도 얼마 전 호주에서 유학하고 온 22살 청년에게 3만원을 주고 샀다.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햅틱, 뉴 초콜릿, 아이폰 등, 손으로 톡톡 ‘터치’하는 이 세상에, 질박한 흑백 휴대폰이 끌렸던 건 별것 아니다. 컨버전스가 가고 디버전스가 와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소경박(短小輕薄) 트렌드에 뒤늦게 올라탄 것도 아니다. 그저 솔직하게 잘 만들어서 끌린 것뿐이다. 만일 모토롤라에서 싸게 사서 폼 잡는 휴대폰을 만든답시고 플라스틱에 금도금하며 휘황한 거짓 디자인을 했다면 전세계로 퍼져나갈 일도, 패션 피플이 소장하는 ‘부작용’도, 필자가 3만원을 입금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디자인도 역시, 정직한 것이 최선이다.

장진택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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