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엠베(BMW)의 전 디자인디렉터 크리스 뱅글(오른쪽), 디자인을 엠티브이처럼 유쾌하게 읊조리는 유일한 사람이다. 베엠베코리아 제공
|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내려다보며 가르치려 하는 한국의 디자인…“디자인은 애인” 크리스 뱅글 말 새겨들어야
사람들이 묻는다. “도대체 디자인이 뭐냐”고. 나는 얼버무린다. “그것은 꽤 어려운 것”이라고. 디자인 공부하고, 디자인 글 쓰면서, ‘디자인 옆차기’까지 날리는 필자도, 그런 단도직입적 질문엔 기도가 콱 막힌다. 전직 베엠베(BMW) 디자인 대장, 크리스 뱅글에게 물었더니, “디자인은 애인”이라고 가볍게 받아치더군. 하지만 필자에겐 그렇게 말할 배포가 없다. 더구나 애인처럼 친해질 것 같지도 않다. 우리네 디자인은 아직도 고등학교 한문 선생님처럼 어려운 말만 하신다. 그래서 아직 멀기만 하다.
디자인 좀 알려고 하면 일단 용어부터가 먹먹하다. 디자인의 의미부터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아니냐”고 하면, “그게 아니다, 혹자는 요기까지로 말하는데, 제대로 알려면 대략 저 끝까지 보는 게 옳다”라 하질 않나, “유니버설 디자인이 장애인, 노인을 위한 디자인 아니냐”고 하면, 저쪽에서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다. 그저 범용 디자인을 말하는 거고, 거기에 장애인, 노인 등이 포함될 뿐”이라고 ‘잘난 척’을 한다. 유비쿼터스 디자인, 퓨전 디자인,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등등, 외국어로 된 단어들이 대부분 이렇다.
바우하우스, 아르누보, 공작연맹, 유겐트슈틸, 미술공예운동 등 한국어와 외국어를 오가는 디자인 역사 공부는 세계사만큼이나 따분하다. 그걸 안다고 해도 디자인에 별 도움이 안 되는데, 디자인 서적 전반부는 대략 그들의 이야기를 고색창연한 흑백사진과 함께 담고 있다. 몇 년 동안 ‘필립 스탁’이라고 부르던 사람을 ‘필리프 스타르크’로 바꿔 부르는 건 표기법 변경 때문이니 십분 이해한다. 입에도 붙지 않는 ‘필리프 스타르크’ 디자인 얘기에 열을 올리는데, “모나미 153볼펜, 이태리타월, 태화 고무장갑 등이 진정한 굿 디자인”이라며 얼음물을 붓는 분도 계시다.
디자인 관련 조직이나 학회, 협회 등에서 만든 각종 인쇄물과 소식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 (그중 미치도록 소장하고픈 게 있긴 하지만) 대부분 대중과 높은 담을 쌓은 채 그들만의 소식을 도란도란 나누고 있다. 이메일이나 인터넷 카페로 나눠도 충분할 소식을 굳이 종이에 찍어 손에 쥐여주는 목적은 뭘까? 한국디자인학회, 한국디자이너협의회,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한국디자인기업협회 등 유사상표 목록처럼 디자인 모임도 이렇게 다양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