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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8 20:52 수정 : 2009.10.28 20:52

흰색 전면에 은은한 꽃무늬 디자인이 들어간 김치 냉장고들. (왼쪽부터) 삼성 지펠, 위니아 딤채, 엘지 디오스.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법적 잣대 까다로운 디자인 베끼기…특허·지적재산권 등 실제 효력보다 상징적 의미 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디자인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단어다. 독창성은 디자인의 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수영양소 정도는 충분히 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창의력, 크리에이티브 등의 창조적 단어를 자주 대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여기까진 졸업 이전에 배우는 도덕교과서 같은 얘기일 뿐이다.

디자인 판에는 아직도 베끼고 베낌을 당하는 일이 끊이질 않는다. 디자이너가 베끼기 싫어도 윗분의 주문에 의해 베끼는 일도 많다. ‘참고한다’, 혹은 ‘벤치마킹’이라는 말로 죄를 감하려 하지만, 뭔가를 보고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건 엄연히 베낀 거다. 하지만 이 바닥이 원래 다 이렇다.

굴지의 대기업 사이에서도 이런 내용을 담은 ‘내용증명’들이 오간다. 이쪽에서 ‘니네들이 우리 꺼 베낀 거 같으니까 조속히 조치 바람’이라고 서신을 날리면, 저쪽에서도 ‘니네들도 우리 꺼와 아주 흡사하니 검토 후 개선 바람, 안 그러면 법원에서 보자고’라고 받아친다. 중견기업이 대기업에게, 벤처기업이 중견기업에게, 다국적기업이 신생기업에게도 이런 내용증명을 민방위훈련 통지서만큼이나 자주 보낸다.

중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아주 심해서 ‘산자이’라는 신조어가 한창이다. 산자이(山寨)는 모조품을 일컫는 중국의 신조어로서 ‘도적떼들이 집결하는 장소’를 뜻한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짝퉁’ 정도일 것이다.

디자인 전문회사를 운영하는 문준기 대표(엠아이 디자인)는 이런 말을 했다. “특히 아이티(IT)제품의 경우, 트렌드가 빨리 변하기 때문에 ‘카피’ 당한다 해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법적으로 해결하는 데 소비되는 노력이면 디자인 10개는 더 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우리 디자인을 따라 하는 게 보이면 바로 다음 모델을 디자인해서 더 멀리 도망가는 방법을 택하죠. 디자인에서 법은 그리 큰 의미는 없어 보여요.”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대기업 디자이너 김인식씨는 이런 말도 했다. “그건 저쪽 부서에서 알아서 해서 잘은 몰라요.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의장등록이나 특허 같은 걸 해 두는데, 그게 큰 효력을 발휘한 적은 아직 못 봤어요. 그냥 보험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아주 기발한 디자인은 정보보안 때문에 (의장등록이나 특허를) 출시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봤어요. 외부 사람들이 절대 못 들어오는 기간이 있거든요.”

한편 특허청 디자인정책과 윤내한 사무관은 이런 견해를 밝혔다. “디자인이 닮았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꽤 주관적이에요. 누구에겐 비슷해 보이고, 누군 안 그렇죠. 소비자가 구입에 혼동을 느낄 정도라면 문제가 된다지만, 그것조차 누군 혼동하고, 누군 구별하거든요. 저희가 관장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통제의 수단은 아니에요. 법적인 도구도 아니죠. 이를 테면 ‘격려’ 차원이고, 이것을 통해 서로 더 발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어요. ‘여기서 이렇게 좋은 디자인을 했으니 모두 더 분발하자’고 알리는 거죠.”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디자인과 독창성, 모방, 특허권 등을 모두 종합하면 대략 이렇다. 독창성은 여전히 디자인의 필수영양소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았던 모방은 달콤한 ‘정크푸드’ 정도로 승격되겠다. 또한 공개를 통해 독점권을 인정하는 지적재산권은 모두 함께 발전하자는 선량한 취지이지, ‘내 꺼 베끼면 다 죽는다’는 식의 유아독존 권리는 아니다. 한 마디로 ‘눈치껏’ 베끼라는 얘기다.

장진택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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