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나오는 캡콤의 게임,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게임 홍보물. 뒤집어 쓰면 좀비가 된다. 장진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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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디자인 실전 명문… 조건없는 디자인은 개인 스케치북에나 하라
디자이너는 디자인은 잘하지만 말을 잘 못한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본 수단인데, 이걸 잘하지 못해 적잖은 피해를 본다. 엔지니어와 논쟁하다가 밀리고, 상품기획자가 엑셀 파일을 들이대면 또 밀리고, 윗분이 “왜?” 하고 따지면 주저앉는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필자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디자인 실전 명문 몇 개를 정리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온 말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동안 전 베엠베(BMW) 디자인디렉터, 크리스 뱅글을 비롯한 유수의 국내외 디자이너들과 인터뷰하면서 들은 말을 이러저리 융합한 문장들이다. 전부를 담진 못했다. 조만간 흐름을 이어 틈틈이 연재할 예정이다. “차가운 기계가 찍어내기 편하도록 디자인하지 말라. 따듯한 인간이 사용할 물건이다.” 이 문장은 기계가 만들기 편하도록, 혹은 원가가 늘어날 것을 두려워하는 엔지니어의 입을 콱 틀어막을 때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차가운 기계를 차갑다 하고 따듯한 인간을 따듯하다고 하니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러니 여기저기 두루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크리스 뱅글은 이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공학자 집단이었던 베엠베를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디자인으로 둔갑시켰다. “기능성과 심미성 사이에서 고민하지 말라. 아름다워야 하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다.” 디자인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아름다움과 기능 사이에서 고민하는 디자이너의 삶을 배운다. 보통 디자이너는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기능성이 떨어진다고 난리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자. 아름다운 것은 버튼 잘 눌러지는 기능보다 100배 중요한 기능이라고. “조건이 너무 많아서 디자인하기 힘들다는 말은 속이 불편할 정도다. 조건 없는 디자인은 너의 스케치북 속에서나 해라.” 신입 디자이너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여러 조건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쥐 잡듯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멋진 디자인을 정말 많이 할 수 있는데, 이걸 못 하게 자꾸 가둔다고 말한다. 하지만 흉포한 악조건까지 모두 받아들인 디자인일수록 위대한 디자인이 된다. 그래도 조건이 너무 많아 디자인하기 힘들다면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회사를 차리라고 하자. 그러면 조건 많은 디자인의 거룩함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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