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6.17 19:38 수정 : 2009.06.18 13:01

디자인은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다. 뒤에 있는 사람은 BMW의 디자인 대장, 아드리안 판 호이동크. 사진 BMW MEDIA 제공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여러 명의 팀 작업으로 완성되는 산업디자인 … 디자이너 개인 독려는 약이자 독

디자인은 음악, 시, 소설, 그림처럼 한 사람의 무대가 아니다. 아이디어와 엔지니어링, 논리와 기술, 역사와 사회까지 모두 버무린 종합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을 전제로 하는 산업디자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특히 대기업 디자인팀은 팀 단위로 디자인을 진행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고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물으니 무더기로 나올 수밖에. 한 사람만 정해 달라고 하면 가장 윗사람이 나가거나, 프로젝트에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이 지목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제품을 디자인한 한 사람이 아니다. 여러 명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미디어에는 마치 그가 모든 걸 창조한 디자이너로 추대된다. 이내 옆에서 도운 디자이너는 김이 샌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니나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조직은 디자이너 인터뷰를 기피하는 편이다.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대장, 페터 슈라이어도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어렵게 인터뷰 했을 때 그는 “무슨무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세간에는 그가 아우디TT, 폴크스바겐 골프,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입에선 그저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 중 1명으로 언급됐다.

손에 쏙 들어오는 휴대폰을 보자. 외관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있고, 화면 속에 들어가는 그래픽을 디자인하는 이가 또 있고, 스케치가 들어가기 전에 전략을 잡는 디자이너가 있고, 표면의 소재와 컬러를 디자인하는 사람, 포장할 박스를 디자인하는 사람, 엔지니어링 디자이너라 해서 컴퓨터 설계 쪽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또 있다. 2만개의 부품으로 조립되는 자동차는 포병 중대 규모다. 겉으로 보기엔 외관 디자이너와 실내 디자이너가 전부인 것 같지만, 손잡이, 휠, 핸들, 라디에이터 그릴, 룸램프, 계기판, 열쇠까지 각각 다른 디자이너가 투입된 경우가 많다. 엉덩이에 붙은 차 이름 서체 디자이너까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러니 누가 디자인했는지 궁금해하지 말자. 어느 누구도 “내가 그거 디자인했다”고 호언장담하지 못할 테니.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반면 “한 명의 천재가 수백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전 회장의 천재육성론을 받들어, 삼성전자에서는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을 독려하는 편이다. “네가 이 물건 디자이너야”라는 자부심을 씌워 주는 것이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제품의 기획에서부터 마지막 박스 디자인까지, 직접 디자인하거나 감수하게 하는 방식으로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아이디어만 끝내 주면 신입 디자이너라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몇 개씩 챙겨오는 디자이너들이 대략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디자이너에게 당근과 채찍, 독과 약이 모두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제품에 적용하진 않는다. 휴대폰을 비롯해 일부 트렌디한 제품 중에서도 일부 품목에 한정된다. 여기까지, 기아자동차 오피러스 룸램프 디자인에 잠깐 참여했으면서 오피러스 디자인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전직 자동차 디자이너의 말이다.

장진택 〈GQ〉 차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