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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18:44 수정 : 2009.06.19 14:33

애완견 전용 샤워기. 인간만 위하는 이 물건을 좋은 디자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개 팔자냐, 사람 팔자냐, 이것이 문제로다. 외국에 잠시 나가는 친구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받았다. 강아지와 고양이, 새를 포함, 말 안 통하는 것들과 대화할 만한 감성은 없었지만, 사연이 절박하고 시간이 긴박해서 일단 받았다. 곱게 자란 녀석이라 사납지도 않고, 예쁘게 생겼고, 심지어 목줄까지 채워져 있지 않았다. 목에 상처가 날지 모른다나? 곱게 자랐다는 걸, 강아지에 딸려 온 짐을 보고 알았다. 이동가방, 펜스, 전용 브러시, 겨울옷, 향수, 배변처리기, 전용 우유, 소고기육포, 그리고 커다란 전용 샤워기가 거실에 늘어섰다. 정말 개 팔자가 상팔자였다. 어른 먹을 육포도 없는 집에 강아지 전용 육포라니. 육포 뜯는 녀석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뺏어 먹진 않았다.

원래 아파트에서 자라던 강아지라서 개념 없이 짖어대진 않았다. 변도 아무 곳에나 보지 않았고, 사람을 무는 일은 전혀 없었다. 몇 가지 재롱까지 있어서 귀여웠다. 이틀 만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목욕시키는 마음으로 전용 샤워기에 목을 걸었다. 사진으로 보면 알겠지만, 앞쪽에 달린 기둥을 벌려 그 사이에 애견의 머리를 넣어 고정시킨 후에 목욕을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일이 터졌다. 낯선 사람이 죄수들이나 차는 큰칼 비슷한 것을 목에 채우려 했으니, 이해는 한다. 몸부림치며 도망가려는 녀석을 제압해서 강제적으로 목에 걸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듯 낑낑거리는 녀석을 씻기려니 괜히 우울해졌다. 씻기는 사람이야 편하다만,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목을 조르다니.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말 애완견을 씻기는 것일까? 학대하는 것은 아닐까? 애완견은 목욕을 하는 걸까?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목욕을 당하는 게 아닐까?

애완견의 목을 졸라서 인간이 편하게 목욕시킬 수 있게 하는 이 물건을, 동물을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만 위하는 이 물건을 좋은 디자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디자인은 인간을 위해야 한다고 배우긴 했지만, 실제 써본 소감은 모래를 씹은 것처럼 찜찜하다. 이런 물건을 만드는 인간은 참 이기적이다. 인간밖에 모른다. 하긴, 다른 인간도 생각 안 하는 인간인데, 동물에게는 오죽하겠나? 인간이 인간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건 예전부터 있었다. 소를 쉽게 다루기 위해 코를 뚫어서 고삐를 채웠고, 말굽을 채우고, 고양이까지 불임시키고 있으니까. 퍼피배스라는 이 제품의 홍보 사이트엔 애견과 애견인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실용성과 디자인을 강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장진택 〈GQ〉 편집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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