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0 19:52
수정 : 2009.06.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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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디자인이 디자인한 엠피3 플레이어 에스(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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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디자이너 브랜드에 거는 기대를 깬 이노의 S2 이어폰
제일모직과 앙드레김의 차이는? 둘 다 옷을 만들어 팔긴 하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보통 제일모직보다 앙드레김이 비싸지만 더 멋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앙드레김보다 더 멋진 제일모직을 봤을 때 깜짝 놀라고, 앙드레김보다 비싼 제일모직을 봤을 때 화들짝 놀란다. 앙드레김은 디자이너의 이름이자 디자이너 브랜드다. 우리가 디자이너 브랜드에 거는 기대는 더 멋지게 만들어 달라는 것, 그뿐이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저렴한 옷도, 입고 핸드볼을 할 수 있는 편한 옷도 아니며, 대를 물려 입을 수 있는 질긴 옷도 아니다. 그저 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그만이다. 앙드레김은 그런 일을 참 잘했다. 질기지도, 저렴하지도, 편하지도 않지만, 누가 입어도 화려하게 뽐낼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만든 엠피(MP)3 플레이어가 세상에 나왔다. 삼성전자, 아이리버 등의 회사에 디자인 컨설팅을 했던 이노디자인에서 만든 이노라는 브랜드에서 만든 에스(S)2라는 제품이다. 이 제품을 발표하면서 이노디자인 대표인 김영세는 이런 말을 했다. “아이팟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니까 대부분 고무로 만든 옷(보호커버)을 입혀 다니더군요. 저는 그냥 그걸 늘 입고 있는 엠피3 플레이어를 디자인했어요.” 디자이너 브랜드다운 제품에 대한 디자이너다운 연설이었다. 김영세가 설명한 에스2는 모서리를 둥글게 굴린 유연한 몸통에 보호커버를 씌운 듯한 부드러운 표면을 갖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이 제품의 값이나 음질, 기능 등에는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저 디자이너 브랜드답게 예쁘면 그만이니까. 에스2는 적잖이 예뻤다. 앙드레김의 옷처럼 멋내기 좋은 제품이었다. 그런데 못 볼 것을 봤다. 에스2를 들고 뽐내고 있는 모델의 귀에 꽂힌 하얀 이어폰을 본 거다. 그렇고 그런 형상에 난데없는 크롬 장식까지 붙어 있는 이어폰, 아이팟은 물론, 아이리버나 삼성, 코원이나 엠피오의 그것보다 매력 없는 이어폰, 그렇다고 에스2와 어울리지도 않는, 디자이너 브랜드임이 의심스러운, 한마디로 하나도 예쁘지 않은 이어폰이었다. 왜 그랬을까? 김영세는 왜 이런 이어폰을 선택했을까? 엠피3 플레이어는 대부분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 있다가 잠깐 나오지만, 이어폰은 언제나 귀에 꽂혀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아이팟은 처음부터 이런 걸 알고 모두가 평범한 검은색 이어폰을 넣어 팔 때 과감한 흰색 이어폰을 선택했다. 그래서 ‘흰색 이어폰=아이팟=멋진 사람’이라는 공식까지 생겨나지 않았나. 우리가 디자이너 브랜드에 거는 기대는 바로 이런 거다.
장진택 〈GQ〉 편집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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