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16 19:48
수정 : 2009.06.1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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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전 베엠베 7시리즈(맨 위)와 2001년 발표한 7시리즈(위). 기술과 디자인에 큰 진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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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완전히 새로 만든 후륜구동장치에 투스카니 후속 모델 같은 디자인이라니
2001년 유럽 이야기다. 당시 베엠베(BMW) 7시리즈의 위상은 럭셔리 세단의 권좌, 벤츠 에스(S)클래스를 넘어서고 있었다. 날렵한 베엠베는 웃고, 밋밋한 벤츠는 울던 2001년 가을, 새로운 7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반응은 부정적으로 뜨거웠다. 기존과 너무 다르게, 그것도 이상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내 전세가 바뀌었다. 새로운 7시리즈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이 벤츠를 샀다. 잘나가던 7시리즈는 순식간에 동네북이 됐다. 전세계 저널리스트들은 이 차의 지나치게 진보적인 장치, 이를테면 와이퍼 스위치 자리에 옹색하게 붙은 전자식 기어 레버, 컴퓨터 마우스처럼 내부 제어장치들과 소통하는 아이드라이브 등을 트집 잡았다. 너무 앞서 있어서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이어 생긴 걸 갖고 또 트집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너무 앞서 있어서 적응이 안 된다는 거였다.
당시 베엠베는 어떤 반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나 7시리즈 아랫급인 뉴 5시리즈를 발표하던 날, 베엠베의 디자인 책임자, 크리스 뱅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저널리스트들의 지적이 모두 맞다. 그들이 성난 목소리로 꾸짖은 것처럼 7시리즈의 디자인은 한눈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시인했다. 그러고는 “새로운 7시리즈의 목표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진보’에 있었고, 엔지니어들은 그런 콘셉트에 맞춰 아이드라이브나 전자식 시프트 레버, 버튼처럼 생긴 주차 브레이크, 밸브트로닉 엔진 등의 신기한 부품을 차에 달았으며, 디자이너인 자신도 그들처럼 앞선 디자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워서 난해한 장치들이 적응될 즈음이면, 7시리즈의 난해한 디자인도 눈에 익을 것”이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제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현대자동차를 보자. 이들도 얼마 전에 베엠베의 2001년도만큼이나 혁신적인 진보를 가졌다. 전륜구동 자동차만 만들다가 후륜구동 자동차를 만든 거다. 전혀 없던 걸 만들었으니, 엔지니어들은 얼마나 고생스러웠겠나. 하지만 디자이너들의 노고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제네시스는 그런대로 수긍하겠으나, 제네시스 쿠페는 문제가 좀 심각해 보인다. 후륜구동 장치를 완전히 새로 만들었는데,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투스카니 후속 모델 같은 익숙함으로 디자인을 마쳤다. 그 속에 정녕 새로 만든 후륜구동 플랫폼이 들었는지 의심스럽게 보인다. 그렇다고 제네시스를 많이 닮은 것도 아니고. 제네시스 쿠페라면 제네시스를 좀 닮아야 하는 거 아닐까.
장진택 〈지큐〉 편집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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