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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28 18:35 수정 : 2010.02.28 21:21

서울대·연세대 등 대학생 10여명이 1997년 1월23일 오후 서울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검은 망토를 두른 채 안기부법 철회를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영삼 정권은 한총련사건 이후의 공안 분위기 속에서 1996년 말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통해 안기부의 수사권을 부활시켰다. 안기부는 자기들이 수사한 사건에 사법부가 무죄나 가벼운 형을 줄까 우려하여 계속 판사들을 길들이려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안기부, 한총련사건 뒤 법관이념교육 시도
무죄판결 판사에 ‘좌익 비호세력’ 매도도
서울지법 ‘공안특강’ 파문 국회서도 논란
보수언론마저 “판사 의식화 시도” 비판





한홍구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40. 법관들에 대한 이념교육 시도 (하)

안기부의 수사권 폐지와 한총련 사태

1996년 8월의 한총련 사태에 관한 한 법원은 5공화국 시절의 사법부만큼 권력에 협조적이었지만, 안기부는 여전히 사법부를 못마땅해했다. 안기부는 민주화 이후 과거와 같이 판결에 개입할 수 없게 된 데에다, 학생운동 출신 법관도 나오자 매우 불안해졌다. 1991년 5월의 국가보안법 개정 이후에도 1995년 1월에는 부산지법 박태범 부장판사, 1996년 3월에는 서울지법 박시환 판사 등 중견법관들이 국보법 위헌심판을 제청하자 안기부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이보다 앞서 1993년 12월의 안기부법 개정으로 국보법 7조(고무·찬양)와 10조(불고지)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권이 폐지되었다. 이는 공안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초보적인 변화였지만, 안기부의 권한이 최초로 축소된 사건이었다. 수사권 폐지로 한총련 사건 관련자들을 ‘공식적’으로 수사할 수 없었던 안기부는 이들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자, “시국인식이 크게 미흡”한 법관들에 대해 무언가 대책을 세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미 안기부가 직접 사법부에 대해 강력한 조정이나 통제를 하기는 어려웠다.

공안정국과 이념교육 강화

그러던 차에 김영삼 대통령은 한총련 사태와 관련하여 “대학생들의 폭력시위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으로 새로운 이념교육의 틀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지시”했다. 대통령은 학생들에 대한 이념교육 방안을 마련하라 했지만, 안기부는 판사들에 대한 이념교육을 하고자 했다. <법조계 일각, 판사 이념교육 필요성 지적>이라는 안기부 보고서는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근 공안사건 발생 등을 계기로 판사들에 대한 이념교육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며 “예비 법조인들의 교육기관인 사법연수원에 체제수호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이념교육 과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다” “검사들은 법무연수원에서 수시 이념교육을 받는 데 비해 법관들은 별도 교육 과정이 없어 안보관이 결여되기 쉬우므로” “사법연수원에 이념교육 강좌를 개설하는 한편 법관들에게 북한정세, 좌익운동권의 실상을 알릴 수 있도록 특강기회 등을 수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사법연수원의 교육 과정에는 연수원생들이 1년차 6월에 안기부 청사를 방문하여 안보교육을 받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었다. 안기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수원생들과 법관들에게 이념교육을 실시하자고 건의한 것이다. 안기부는 한총련 사태 발생 이전인 1996년 6월24~25일 사법연수원 1년차들을 신청사로 불러 “사회각계의 좌익세력”을 언급하는 가운데 “특정 시국사건의 무죄 선고나 영장 기각을 예로 든 슬라이드를 방영”한 바 있다. 이때 일부 연수원생들이 불만을 표했지만, 이 슬라이드 교육은 안기부 내에서 이루어진 탓인지 바깥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에서 판사 비난하여 말썽

한총련 사건에 이어 9월18일 강릉에서 이북의 잠수함이 침투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안기부는 적극적으로 이념교육에 나섰다. 그런데 안기부가 외곽단체 명의로 제작·배포한 비디오 교육자료가 큰 말썽을 빚었다. 11월9일부터 주요 언론은 “정보기관이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당국이 시국 사건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거나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를 겨냥해 ‘한총련 비호세력’ ‘좌익 비호세력’ 등으로 표현한 비디오테이프를 상영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대법원이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테이프는 “한총련 영장이 기각될 당시의 한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빌리면서 ‘좌익동조자’라는 대사를 교묘하게 삽입”했는데 “뉴스 화면은 법복을 입은 판사 형상을 그림으로 처리해 등장시킨 뒤 옆에 ‘한총련 시위학생 영장 기각 - 증거 불충분’이라는 자막을 넣었다”는 것이다. 비디오는 이런 화면에 “우리 사회에는 좌익동조자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아직도 한총련 사태를 옹호하는 행동과 발언, 언론 보도 및 칼럼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을 달았다. 언론은 “비디오를 본 사람은 누구라도 영장기각 판사를 ‘좌익동조자’로 연상할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사법부, 특히 소장법관들은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 재판 결과를 두고 ‘비호세력’ 따위의 표현을 쓰는 것은 사법권의 침해로 보지 않을 수 없다”며 격앙했다. 안기부는 중간 간부가 나서 ‘실무자의 실수’라고 해명하는 것으로 얼버무리려 했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휴가를 중단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등 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결국 안기부장 권영해가 전화로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였으며, 그 내용을 담은 공문을 대법원에 보냈다. 이로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는데, 안기부가 외부에 사과문을 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기부는 이런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집요하게 안보교육을 밀고 나갔다. 안기부는 11월14일과 19일 서울시내 고교 교장 227명을 안기부로 불러 ‘민주시민 통일안보 교육’ 강좌를, 20~22일에는 윤리·사회과 교사 528명을 동원해 같은 교육을 실시했다. 일반국민에 대한 안보교육, 이념교육은 안기부법에 규정된 직무범위를 명백히 벗어난 일로, 정부조직법상 통일원과 교육부가 맡아야 할 일이었다. 김영삼 정권은 한총련사건 이후의 공안 분위기 속에서 1996년 말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통해 안기부의 수사권을 부활시켰다. 안기부는 자기들이 수사한 사건에 사법부가 무죄나 가벼운 형을 줄까 우려하여 계속 판사들을 길들이려 했다.

공안검사의 판사 상대 한총련 특강

정부 당국의 한총련에 대한 강성기류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1997년의 한총련 제5기 출범식 폭력시위와 관련하여 구속된 학생들의 수는 무려 195명에 달했다. 검찰은 1996년의 연세대 사태 때는 단순가담자 27명을 기소유예 했지만, 이번에는 폭력시위를 근절한다는 차원에서 구속자 전원을 기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지법 형사부 판사 20여명은 6월14일 서울지검 공안2부장 신건수로부터 ‘학생운동의 변질과 실체’라는 주제의 특강을 들었다. 이 특강은 판사들의 요청으로 마련되었는데, 별다른 토론이나 질문 없이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안기부는 이 특강에 대해 아래와 같은 보고서를 올렸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 법원이 지난해 연세대 난동사건 관련 구속자 473명 중 430여명(91%)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등 법관들의 시국인식이 크게 미흡하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6.14 서울지법의 서울지검 공안2부장 초청 강연 시 일부 언론이 한총련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연에 참석했던 판사들은 좌익세력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호평했던 만큼// 법원으로 하여금 북한전문가 또는 공안 분야에 정통한 학자 등을 초청하여 자연스럽게 이념교육을 실시토록 유도하는 한편 차제에 사법연수원의 안보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음.”

안기부의 보고서는 늘 그렇듯이 ‘법조계 일각’이란 표현으로 우호적인 여론만 소개하지만, 이 사건으로 법조계와 언론은 무척 시끄러웠다. 민변뿐 아니라 변협도 법원이 이런 강연을 마련한 것 자체가 형사소송법의 근본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변협과 민변이 이 설명회를 비판한 내용은 안기부의 일일동향보도에도 소개되어 있다. 보수신문 역시 “판사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에 대해 담당검사로부터 설명을 듣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이날 강연이 공안담당 검사가 판사들을 교육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공안검사를 통한 판사들의 의식화가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의 보도는 “법원 주변”에서는 “판사들이 학생운동 현황을 파악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한총련 사건 담당 검사로부터 강의를 받은 게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걱정하기도” 했다는 등 비판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홍구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한겨레>는 사설과 기자의 논평을 통해 한총련 사건 재판을 앞둔 판사들이 집단으로 재판의 한쪽 당사자가 될 공안부장을 초청해 ‘한총련 특강’을 받은 사실을 “해괴한 일”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법원이 “판사들은 모든 사건에 대해 예단을 갖지 않고 증거를 토대로 판단을 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을 어겼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형사소송법에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소장을 제외한 일체의 검찰 수사기록을 보지 못하게 한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를 규정해 놓은 것”은 “법관의 선입관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신문은 이 강의가 법원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은 “모든 법관은 개별적인 사건들에 대해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번의 특강 파문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정찰제 판결’ ‘자판기 판결’ 등의 악몽을 떠올린다며, “검찰의 특강을 받은 판사들이 집단적 예단을 한 나머지 한총련 관련 학생들에게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판결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우려했다.

공안검사의 판사들에 대한 한총련 특강파문은 국회로도 비화되었다. 1997년 7월8일 열린 법사위에서 검사 출신의 조찬형 의원은 “과연 이것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개탄했다. 천정배 의원은 법원이 아직도 이 문제가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얼마나 침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그는 “법관이 공판정 밖에서도 검사로부터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내용의 강연을 듣는다면 재판의 공정성은 유지가 될 도리가 없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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