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씨 고문사건과 관련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현장검증이 실시된 1990년 12월10일 김씨의 부인 인재근씨(맨 오른쪽) 등 재야인사들이 대공분실 입구에서 ‘고문경찰관 처벌하라’는 플래카드를 압수하려는 사복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근태는 검찰청 복도에서 기적적으로 아내 인재근을 만나 고문을 폭로한 그 힘으로 검찰에서 묵비권을 고집하며 버틸 수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재판부, 안기부 공판대책 따라 진행
기일·선고내용·보도지침까지 세세히
거센 고문 논란엔 ‘운동권 전술’ 몰아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33. 김근태 고문사건과 사법부 (2) 묵비권의 대가 안기부는 김근태의 신체감정 및 증거보전 신청을 기각하여 잠시 숨을 돌렸지만, 사회에서는 고문 문제가 점점 이슈로 되어가고 있었다. 이 무렵에는 민청련 정책실장 이을호, 전학련 삼민투위원장 허인회, 백범사상연구회장 정진관 등 여기저기서 고문 과 조작 시비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안기부나 경찰은 고문 시비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장이었던 박처원(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과 이근안 도피사건의 배후책임자)은 김근태의 고문이 사회문제가 되자 “전희찬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정형근 안기부 대공수사단장,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 김원치 검사 등과 함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김씨에 대한 면회, 접견 금지 및 상처 조기 치유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1999년 이근안 사건으로 조사받을 당시 검찰에서 진술했다. 김근태는 검찰청 복도에서 기적적으로 아내 인재근을 만나 고문을 폭로한 그 힘으로 검찰에서 묵비권을 고집하며 버틸 수 있었다. 묵비권의 대가는 참으로 비쌌다. 김오수 판사가 증거보전 신청을 기각할 때의 이유도 묵비권 행사였고, 검찰에 의한 가족면회 금지의 이유도 묵비권 행사 때문이었다. 1심 재판장 서성 판사에 의한 면회금지 결정에도 진술을 거부했기 때문에 죄증을 인멸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는 것이 핑계였다. 김근태는 변호인 접견도 1차 공판을 열흘 앞둔 12월9일에 가서야 할 수 있었고, 가족면회는 1차 공판을 마친 뒤에야 할 수 있었다. 서성 판사의 면회금지 조치는 김근태를, 그를 도와줄 수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차단해버린 야비한 조치였다. 묵비권의 또다른 대가는 민청련 간부들에 대한 전면적 구속과 지명수배였다. 1985년 10월 초순 최민화, 김희상, 김종복 등 민청련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것이다. 경찰에서의 신문조서는 본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지만, 검찰에서의 신문조서는 본인이 법정에서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있다. 그런데 김근태가 뻗대면서 ‘가당치 않게’ 묵비권을 행사하자, 검찰은 ‘증거의 왕’인 ‘자백’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두환 정권은 민청련 간부들을 대거 구속하여 그들의 신문조서를 김근태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삼으려 했다. 검찰이 김근태에게 묵비권을 고수하면 오히려 큰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이라고 거듭했던 협박이 현실화한 것이다. ‘고문 및 용공조작시비에 대한 대응논리’
바깥에서 끊임없이 고문조작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자, 1985년 11월 안기부는 <최근의 학원 좌경 폭력 소요 배후사건 수사과정 시비에 대한 진상>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김근태 등의 고문 주장이 모두 이들의 구명과 정치투쟁 가속화를 위해 재야 운동권세력들이 허위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날짜 미상의 또다른 보고서는 제목 자체가 <허구적 주장의 배경>이었다. 이 보고서는 김근태가 “고문 주장과는 달리 일절의 흔적이 없고 얼굴색도 건강, 보행 및 거동도 정상”이라며, 변호인이 제기한 증거보전 신청을 김오수 판사에게 ‘강력 조정’해 기각 결정토록 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술했다. 국정원 존안 문서에는 안기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최근의 학원 좌경 폭력 소요 배후사건 수사과정 시비에 대한 진상>과 서울지검 공안부가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고문 및 용공조작시비에 대한 대응논리>라는 두 편의 보고서가 남아 있다. 이 두 보고서는 서로 다른 두 기관에서 각각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목차에서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작성했거나 거의 베껴 썼다 싶을 정도로 유사하다. 아마도 안기부가 작성한 보고서를 서울지검에서 조금 수정하여 유관기관에 배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안기부의 보고서는 검찰 명의의 보고서에 비해 사건의 ‘진상’을 “김근태는 검찰수사 시 자신에게 불리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였으므로, 가혹행위나 진술강요조차 없었음이 자명하고 경찰 수사과정에서도 폭행, 전기고문 등 가혹행위 사례는 일체 없었으며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것임. 왜냐하면 경찰수사 시의 자백은 본인이 공판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가혹행위를 하여 자백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임”이라고 하여 좀더 자세하게 기술했다. 이 보고서들 역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따라 검찰수사 과정에서 동 사실의 진부를 조사하였으나 고문의 흔적을 일체 발견할 수 없고, 얼굴색도 건강할 뿐만 아니라 보행이나 거동에 고문의 의심을 가질 만한 여지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며, “동인은 자신의 죄상을 은폐하고, 처벌을 면해보려는 군색한 방편으로 검사의 신문에서조차 시종일관 묵비하는 등 갖은 수단을 모두 동원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 가족이나 변호인들을 만날 때 수사기관에서의 고문 사실을 왜곡 주장할 가능성이 있음”이라고 결론지었다. ‘좌경세력’의 단계별 처리계획
한홍구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