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가 2007년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지난 3년간의 활동 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당시 안광복 국정원 기조실장(가운데). 그 왼쪽은 안병욱 국정원 과거사위 위원장. 과거사위는 송씨 일가 사건을 반인권적 조작 사건으로 규정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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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때 ‘기각대책’ 지시
변호인 감시·수임 방해 공공연
증거 인정받으려 또 가혹행위
‘기속원칙 허문 고법’ 선례남겨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29. 송씨 일가 간첩사건과 사법부(5) 대책 안 서는 안기부 안기부는 송씨 일가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대책마련에 고심했다. 안기부는 “파기환송 후 고등법원에서 4개월간 재심리 기간 중 법원, 검찰과 협조, 증거보강 등으로 필히 유죄토록 유도”한다는 전반적인 대책하에 “송치된 사건이 기소된 이후의 공소유지, 형량, 선고 등은 전적으로 검찰 책임”이라면서 검찰에 책임을 떠넘겼다. 안기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검 공안부장 최상현은 대법원 판사를 접촉하여 “국가안보의 현실 및 대남전술양성과 간첩수사의 장기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법원의 ‘협조’를 구하였다. 그러나 안기부나 검찰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법원조직법에 상급심은 하급심을 기속하게 되어 있어 상급심인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이상 하급심인 재항소심은 대법원의 판결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또 대법원에서 쟁점이 된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부인, 사법경찰관의 장기간 불법구금과 고문시비, 검찰자백의 임의성 시비 등은 ‘간첩의 대법정 투쟁전술의 하나’라고 비난하는 것 이외에 달리 대응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안기부는 ‘국가안보적’, ‘정책적’ 차원에서 유죄판결을 건의할 뿐이었다. 대법원의 대책 마련 대책을 마련한 곳은 대법원이었다. 파기환송 판결로부터 채 열흘이 걸리지 않았다. 1983년 9월1일자로 된 <유태흥 대법원장, 송지섭 등 간첩사건 파기환송에 따른 처리방안 확정>이란 안기부 보고서를 보면 유태흥 대법원장은 송씨 일가 사건이 이일규 대법원 판사의 판결대로 확정될 경우 “앞으로의 대공수사가 재판에 치명적인 타격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동안 동 사건 처리를 위해 사건 기록과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 검토하고 현재까지의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동 사건을 원심대로 확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그 “처리 방안을 확정”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누가 처리방안을 마련했는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8월24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이일규 판사의 파기환송 판결 직후 유태흥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정지형과 비서실장 가재환에게 각각 판결문 및 기록을 검토하여 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법원조직법 제7조 2항(당시)에는 “상급법원의 재판에 있어서의 판단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을 기속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법률관계 및 사실관계는 기속을 받는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관계에 있어 기속의 범위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판례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일규 판사가 파기환송을 할 때,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고 “장기구금 상태 및 부당 대우 등 환경하에서 작성한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임의성이 없다고 판시”하였기 때문에 “장기 구금을 하였다 하더라도 부당한 대우가 없었고, 또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조서가 작성되었다는 입증만 있으면 검사 심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그러므로 본 건 대책으로 항소심 재공판 시 수사 당시의 담당 수사관, 공소 제기한 담당검사 등을 증인으로 신청(항소심 검찰부), 이를 담당 재판부가 받아들이게 하여 사실관계를 명백히 진술토록 하여 검찰 작성 심문조서가 임의성이 있다고 판결”하도록 한 뒤, “재상고하면 사건을 특별배당”하여 “기각판결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송씨 일가 사건의 결말이 깨어나려는 사법부를 죽인 것이라면, 그 독약은 사법부 내에서 이렇게 준비된 것이다. 파기환송심과 새로운 증언 조작 송씨 일가 사건은 고등법원에서 형사4부(재판장 오병선 부장판사, 주심 박동섭, 배석 김명길)에 배당되었다. 안기부는 11월7일 오병선 부장판사실에서 수사관들을 출석시켜 비공개로 증언토록 했다. 이들 수사관들은 재판장을 만나러 가기 전 임휘윤 검사와 진술내용을 협의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안기부의 통신담당 직원이 오병선 부장판사실에서 비공개로 간첩지령통신에 대해 재판부에 설명했다. 11월21일에는 자수간첩 박정수와 박종덕, 그리고 사망한 ‘재남 망책’ 한경희의 친지 2명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진술하였다. 이들은 모두 수사 초기에 청주분실에서도 진술한 바 있는데, 주목할 점은 수사 초기의 보고서에 남아 있는 진술 내용에 비해 파기환송심에서 훨씬 더 구체적인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박종덕은 1974년 출옥 후 한경희에게 편지를 보내 ‘동업’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한경희는 ‘매형’(송창섭)이 다녀가서 상의했는데 “동생은 본디 사업하다 실패한 사람이기 때문에 동업하다가는 틀림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으니 조용히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단념하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진술했다. 이런 내용은 안기부의 수사에서도, 박종덕의 1심 증언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내용이었다. 박종덕은 필자와의 면담에서 한경희에게 편지를 보낸 일도, 답장을 받은 일도 없지만, 안기부에 다시 잡혀가 “두들겨 맞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내가 살려니까 그들(안기부 수사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고 진술했다. 한경희는 사건이 발생하기 5년 전에 사망하여 안기부는 한경희를 직접 조사한 적이 없다. 한경희를 간첩망 책임자로 모는 데에서는 박종덕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는데, 그의 증언은 안기부의 가혹행위에 의한 것이었다. 변호인에 대한 내사와 압박 파기환송심에서도 변호인들이 치열하게 허점을 파고들자, 안기부는 변호인들을 밀착감시했다. 안기부의 11월24일자 보고서 <간첩 송지섭 사건 관련 변호인 동향보고>를 보면 한경희 사망 후 간첩망 책임자를 맡은 것으로 지목된 송지섭의 변호인인 조준희 변호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보고서는 조 변호사가 “반정부 활동자”로 “본명은 76.4 세칭 명동사건 및 79.12 고 박대통령 시해사건 피고인 김재규 담당 변호인”이었다고 기술했다. 이 보고서는 조 변호사의 ‘동향’에 대해 “간첩 송지섭 사건 재심 공판 시 피고인이 당부 수사과정에서 협박과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한 것이라고 변론”했고, “사법경찰관 및 검사 작성의 신문조서에 대한 임의성을 전면 부인하는 변론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11월 24일 10시 본 사건 담당 재판부 오병선 부장판사실에서 재판부, 관여검사(임휘윤) 및 변호인(조준희, 박종연) 등 참석하에 당부 7국 분석계장 ○○○직원이 본 사건 간첩 통신에 대한 설명 시 위 조준희는 당부에 전환된 간첩 지령통신 자료를 송지섭의 자료인 양 조작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 바 있음”이라고 서술했다. 안기부는 조 변호사에 대한 ‘조치’로 “본명에 대한 동향내사, 비위사실 수집하겠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 변호사 등 내놓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경우에는 안기부도 섣불리 손을 대지는 않았다. 안기부에 불려가 곤욕을 치른 사람은 한경희와 사돈뻘이라는 인연으로 처음 시국사건을 맡은 김성기 변호사였다. 이와 관련해 홍성우 변호사는 필자와의 면담에서 “이돈명, 조준희, 황인철, 홍성우 등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공인’된 변호사들의 경우 정보부에서 사건 관련 압박이 오히려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 처음 시국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에게는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정보부의 압박이 상당했다. 송씨 일가 사건을 담당한 김성기 변호사는 재판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보부 직원이 와서 못살게 군다고 하소연하곤 했다”고 전했다. 안기부는 김성기 변호사를 일주일 동안 모 호텔로 아침 9시에 나오게 하여 저녁 6시까지 잡아두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수사관 3~4명이 나왔지만, 대부분 하루 종일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했다. 고문당한 것은 아니지만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상급심을 치받은 판결 12월12일에는 파기환송심의 구형공판이 있었는데, 검찰은 2심 구형량과 같은 형을 구형했다. 12월23일 서울고법 115호 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왔고, 형량은 절반 정도로 깎였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사건을 하급 법원인 고등법원에서 치받아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일규 대법원판사는 검찰조서의 증거능력 문제, 간첩방조 문제, 편의제공 문제, 검사의 상고 등에 대해 일일이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판결하였다. 이는 어쩌면 하급심에서 혹시라도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할까봐 책임을 상급심에 미룰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등법원의 재판부는 대법원의 명판결을 지켜내지 못했다.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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