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도시의 꿈, 고용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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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일자리, 희망 나누기
■ 독일의 친환경 ‘그린잡’
2년 전 건축회사에 다니던 페터 베른트(42)는 갑작스런 회사의 도산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의 재취업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마침 그가 사는 포츠담 부근의 펠트하임에 독일 에너지기업 에네르기크벨레의 생산공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공장은 그가 다니던 건축회사가 마지막으로 시공한 곳이었다. 베른트는 다른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3개월간의 재교육을 거쳐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지난 7일 펠트하임에서 만난 귄터 크라이슬러 공장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태양광 전지판의 각도를 조절해 에너지 효율을 40% 높이는 ‘무버’를 생산하고 있다”며 “공장 직원의 절반가량은 이곳에 오기 전 실업자였다”고 귀띔했다. 이 회사는 오는 8월에도 추가로 직원을 고용할 계획이다.
지난 6일 독일 베를린 베딩지역의 호프가르텐 아파트 단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도, 나무 기둥들로 그네를 잇는 기능공 프리드리히 에케르트(34)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미끄럼틀과 그네 등 놀이기구를 목재로 만든 친환경 놀이터가 곧 완공될 예정이란다. 그가 하는 일은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저에너지 건물 개보수’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지난해 부동산개발 업체 데게보는 317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 단지의 CO₂ 배출량을 연간 10%씩 줄이는 개보수 공사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컨설팅을 담당하는 전문 컨설턴트부터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는 기능공,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계측기를 설치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인력이 모였다. 에케르트는 “몇해 전부터 저에너지 주택 개보수 공사가 많아져, 일감이 잔뜩 밀려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만난 베른트와 에케르트는 이른바 ‘그린칼라’로 불린다. 그린칼라란, 환경친화적 부문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가리킨다. 사무직 노동자를 뜻하는 ‘화이트칼라’와 생산직 노동자를 뜻하는 ‘블루칼라’를 잇는 신조어다. 독일에서 그린칼라의 확산은 경제위기와 환경위기에 맞설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 절반 줄인저에너지 주택 보수사업
일자리 21만개 만들어내 풍력·태양광 생산한 전기
전력회사가 의무적 구매
그린산업 전방위적 지원 최근 독일 컨설팅회사인 롤란트 베르거가 연방환경부 의뢰로 환경기술 기업 1300곳과 연구시설 200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0년까지 이들 기업의 직원 수가 최대 3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토르스텐 헨첼만은 “이들 기업은 대체로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데다 때때로 이득을 보기도 한다”며 “환경기술 발전에 따른 인력수요가 줄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에서 그린칼라의 규모는 적잖다. 전체 독일 고용의 4.5%인 180만명에 이른다. 기존 산업에서 그린화를 시도해 생겨난 친환경 일자리까지 보태면 그린칼라의 수는 훨씬 늘어난다. 2030년이 되면 자동차 및 기계산업의 총 고용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찌감치 정부와 기업, 노조가 그린산업 육성에 힘써온 결실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진 것이다. 그린칼라의 확산을 도운 일등공신은 정부의 정책지원 조처다. 독일 정부는 지난 2000년 재생에너지법을 마련해, 전력회사들이 재생가능 에너지에서 생산된 전기를 일정 금액 이상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했다. 이 법에 규정된 금액은 에너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20년간 보장된다. 베른트가 일하는 에네르기크벨레도 이런 법의 수혜를 입은 회사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엔지니어인 안드레아스 바코펜은 “지난해에 비해 직원 수가 두 배로 늘었다”며 “독일에선 2000년 이후 정부의 탈중심화된 에너지 정책 추진으로 많은 중소 에너지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주요 경제주체들 간의 합의를 발판으로 그린화를 시도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저에너지 건물 개보수’ 프로그램은 지난 1999년 독일 정부와 사용자단체, 노조, 환경단체 등 4자가 맺은 ‘고용과 환경을 위한 동맹’이 토대가 됐다. 독일노총의 제안으로 2001년부터 실행에 옮겨진 이 프로그램은 노후화된 기존 건물 지붕에 태양열 집열판을 얹고 벽면에 단열재를 깔아 에너지 효율을 높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독일 정부는 이를 위해 2001~2005년에만 18억달러의 자금을 투입했고 2006년부터 올해까지 추가로 81억달러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2006년에만 21만70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독일 건설교통부의 울리히 카스파리크 의정담당국장은 “당장 고용효과를 볼 수 있는 노동집약적 프로그램이 바로 건물 개보수”라며 “아직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건물이 전체의 70%에 이르는 만큼 최소한 20년간 지속될 거대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2006년과 2007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에너지 기업과 노조 등이 참여하는 ‘국가 에너지 정상회담’을 열어 주요 경제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노동기구(ILO)의 페터 포셴 수석 전문가는 지난 9일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그린잡을 창출하기 위해선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 정책을 이행할 기업과 노조를 개입시키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그린잡의 잠재력을 추정하는 연구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지난 2007년에 발간한 ‘환경과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의 경제적 파급 및 고용창출 효과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1조원을 투자할 때 환경산업의 고용유발 효과는 약 2만명에 이른다. 이는 반도체(5300명)나 조선(1만4000명), 자동차(1만4600명)에 비해 훨씬 큰 수치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유럽이 10여년 전부터 그린잡 창출을 추진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환경규제 강화와 친환경 조세제도의 도입”이라며 “현 정부처럼 환경규제를 오히려 완화시키는 등 기존 기업 위주의 패러다임에 매여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베를린·펠트하임/글·사진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독일의 그린잡 현황및 독일 저에너지 주택 개보수 프로그램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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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노총 고용 첫 환경전문가 슈나이더 “기업 미래 생산전략 노동자도 고민할 때”
독일노총 고용 첫 환경전문가 슈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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