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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4 17:39 수정 : 2009.05.16 12:00

대한민국 1% 부자는 행복할까 / 그래픽 최광일 기자 dido@hani.co.kr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행복경제학
월 가구소득 1000만원부터 행복지수 ‘ 뚝’
나눔에 소극적…“자기중심성 행복 막아”

그동안 행복은 소득과 동일시됐다. 일인당 국민소득과 넓은 집과 자동차가 행복의 척도로 여겨졌다. 행복경제학자들은 행복이 소득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행복과 돈, 가족, 건강, 일이 맺는 상관성에 주목해 왔다. <한겨레>는 행복경제연구소와 함께 우리나라 소득계층과 행복지수의 관계를 살펴봤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행복한 사람은 어떤 특성을 보일까?

행복한 사람일수록 기부금 참여와 자원봉사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경제연구소(소장 조승헌)는 2006년 7월 통계청이 시행한 사회통계조사 1만8095명의 자료를 재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한 달 가구소득에 따라 9개 소득계층으로 나눈 뒤, 계층별로 행복지수를 산출하고, 각 계층별 가정형태와 각종 사회활동 참여 여부를 물어 행복지수와 상관관계를 살펴봤다. 행복지수는 ‘경제적인 면, 직업, 건강 등을 고려한 전체적인 생활 만족도’를 물은 뒤, 응답자가 5점(매우 만족)에서 1점(매우 불만족)을 주는 방식으로 산출했다.

■ 1%, 행복은 100명 중 20등 조사 대상자의 1.1%를 차지하는 최고 소득계층(제9계층)의 행복지수를 살펴보자,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다’는 속설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한 달 가구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이들의 행복지수는 3.37로, 300만원대(제5계층)인 집단(3.25)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체 9개 계층 가운데 4위를 기록했다. 통계청 조사가 이뤄진 2006년 3분기의 우리나라 국민의 한 달 평균 가구소득은 305만원이었다. 각 소득계층 비율의 누적 분포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1%는 소득은 100명 중 1등이지만 행복은 20등 안팎이다. 대한민국 1%라고 해서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이 행복하지는 않은 셈이다.

물론 제8계층에 이르기까진 소득이 많을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커졌다. 소득과 행복이 정비례 관계로 나타난 것이다. 가장 행복한 소득계층은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중산층으로 분석됐다. 한 달 가구소득이 400만~600만원인 제6계층의 행복지수는 3.50이었고, 600만~800만원(제7계층)은 3.75, 800만~1000만원(제8계층)은 3.78로 나타났다.

■ 행복한 사람들은 나눔 활동 열심 소득계층별로 사회활동을 조사했더니, 행복지수가 높은 계층에서 기부금 참여율과 자원봉사 참여율이 높게 나왔다. 지난 1년 동안 기부금을 낸 횟수를 물은 질문에 단 한 번이라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은 계층은 6~8계층이었다. 각각의 계층은 67.5%, 71.0%, 68.0%의 기부금 참여율을 보였다. 하지만 제9계층의 기부금 참여율은 59%에 지나지 않았다. 돈은 많지만 나눔엔 인색한 것이다. 자원봉사 참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소득별 행복지수/소득계층 기부금 참여율(%)/소득계층 자원봉사 참여율(%)

서은국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나눔 활동을 많이 해서 행복해졌는지, 행복하기 때문에 나눔 활동을 많이 했는지 선후 관계를 따지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른 나라 조사 결과를 봐도 행복과 나눔 활동의 상관관계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행복한 사람들은 사회성이 높고,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 사고가 두드러진다”며 “같은 돈을 가져도 불행한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들이 기부와 자원봉사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부자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귀하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행복경제학자들이 ‘계층의식’이라고 부르는 조사다. 응답자들은 상상, 상하, 중상, 중하, 하상, 하하 등 6단계 중 하나를 골랐다. 놀랍게도 소득이 가장 많은 제9계층이 느끼는 계층의식은 3.46(중하~중상)에 지나지 않았다. 잘사는데도 못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 자녀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할까? ‘본인 세대에 비해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매우 높다’를 4점으로, ‘매우 낮다’를 1점으로 정의할 때, 제9계층의 평균은 2.48에 지나지 않았다. 전 계층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였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과 이로 인한 지나친 경쟁의식이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행복과 나눔의 연관성 깊다 이번 분석에서 최고 소득계층이 행복과 나눔 활동 모두에서 뒤떨어지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대한민국 1%에 오른 사람들보다 적당한 소득에 나눔 활동에 적극적인 중산층의 행복지수가 높았다. 조승헌 행복경제연구소장은 “사회적 나눔 활동을 많이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특정 소득 지점에 이르면, 행복은 다른 질적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적용할 수 있다. 조 소장은 “치열한 입시 경쟁과 고소득 직장을 향한 취직 경쟁 등 ‘행복경쟁체제’는 국민 전체의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경제학)는 “개인 경쟁을 유발하는 제도 대신 지나친 경쟁을 제어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모든 국민의 행복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행복경제학이란?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었던 ‘행복’을 경제학적으로 접근한 학문.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행복 정도를 묻는 각종 통계자료를 이용한다. 행복경제학자들은 소득 외에도 이혼과 동거 등 가정 형태, 사회활동 참여 빈도 등 여러 변인에 따라 행복 수준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한다.

서울, 행복이 가장 비싼 도시

어떤 지역이 행복한가

행복한 지역은 적십자회비 납부율도 높다.

행복경제연구소는 2006년 사회통계조사를 이용해 전국 16개 시·도의 행복지수를 비교했다. 이 가운데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곳은 전남(3.117)이었고, 제주(3.108), 강원(3.080), 울산(3.052)이 뒤를 이었다.

이들 4개 시·도는 적십자회비 납부율에서도 상위권을 형성했다. 2008년 대한적십자사 자료를 보면, 제주가 41.0%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납부율을 보였고, 그다음은 전남(40.8%)과 강원(37.2%), 울산(37.0%)이 차지했다.

행복한 소득계층이 자원봉사와 기부금에 적극적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반면 서울은 행복지수와 적십자회비 납부율 모두 최하위권이었다. 서울의 행복지수는 2.926으로 14위를 차지했고, 적십자회비 납부율은 25.6%로 15위를 기록했다. 서울의 가구소득은 전체 3위다.

주목되는 조사 결과는, 행복/소득 지수다. 소득 크기를 1로 잡을 때 행복 크기가 1이면 1로 나온다. 서울은 여기서도 꼴찌(0.876)를 기록했다. 조승헌 행복경제연구소장은 “서울이 행복을 얻는 데 돈이 가장 많이 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반면 행복을 얻는 데 비용이 적게 드는 지역은 전북(1.135), 강원(1.043), 경남(1.032) 등이었다. 조 소장은 “서울 시민은 강남·북의 부의 격차가 현격한 환경에서 살아간다”며 “강남 고소득층을 준거집단으로 삼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행복을 얻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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