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21C, 중국의 것인가
‘차이나 달러’ 앞세워 금고역할…달러 지위에 도전
아·태 위협하는 군사력 팽창…미국의 영향력 대체
‘부자이지 현자 아니다’ 일부선 지도력 부족 비판도
■ ‘왕샤의 굴욕 165년’ 입장바뀐 미·중
1844년 7월3일 마카오 교외의 한적한 어촌 왕샤(望厦). 청나라 흠차대신 치잉은 협상 도중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앞에 있는 원탁을 힘껏 내리쳤다. 원탁엔 금을 그은 듯 칼자국이 깊게 패었다. 그 순간, 그는 또다시 치를 떨어야 했다. 둘로 나뉜 원탁마저 자기 쪽보다 상대방 쪽이 더 컸기 때문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미국 특사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치잉의 얘기로 전해지는 ‘왕샤조약’은 중국이 미국과 맺은 최초이자, 최악의 불평등조약이었다. 불평등의 정도는 청나라가 영국에 홍콩을 넘겨준 ‘난징조약’을 능가했다. 청나라는 미국인들에 대한 재판권을 상실하고, 관세자율권도 잃었다. 반면, 미국의 군함은 청나라 항구를 맘대로 순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이 조약은 이후 프랑스와 스웨덴 등 서구 열강이 청나라와 맺은 불평등조약의 교과서가 된다.
그로부터 165년이 지난 2009년 4월28일 미국 시카고.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중국의 기업 대표들을 이끌고 회의장에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회의장엔 포드자동차를 비롯해 시스코, 델컴퓨터, 휼렛패커드, 암웨이 등 미국 굴지의 대기업 대표들이 모여 그의 ‘선물 보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천 부장이 106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절정에 오른다.
세계가 중국의 힘에 울고 웃고 있다. 한동안 세계질서를 쥐락펴락했던 미국마저 흔드는 중국의 위세에선 과거 치잉의 울분을 찾아볼 수 없다. 탈냉전 이후 급속하게 떠오른 ‘중국호’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세계적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 맞먹는, 혹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제국’의 등장을 예견하는 목소리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미국 국가정보국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글로벌 트렌드 2025-변화하는 세계’ 보고서는 중국의 미래를 이렇게 예견한다. “앞으로 15~20년간 전세계에서 중국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중국은 2025년께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이자 주요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마치 19세기 후반 영국을 제치고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섰던 미국 자신의 역사를 회고하는 듯하다.
중국은 이미 지구적 차원에서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지속된 고속성장으로 이룩한 경제력을 앞세워 세계 각국을 주무른다. 세계의 공장이나 시장으로 불렸던 중국이 이젠 ‘세계의 금고’가 됐다는 감탄사마저 나온다. 급기야 최근엔 미국의 패권을 지탱해온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기 침체로 중국도 수출이 급감하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요구하며 발언권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G2)의 양자회담이었다. 군사력의 팽창도 주변국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위협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최근 내놓은 국방백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누려온 군사적 우위가 중국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며 “미국이 이제 더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지켜줄 수 없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중국의 부상은 단순히 ‘제국의 교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시장이 국가를 주도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국가가 시장을 지배하는 비자본주의적 체제’의 도전을 의미한다. 세계가 가까운 장래에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 국가로 일본이나 유럽, 인도, 브라질보다 중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선 중국이 새로운 세계질서를 담보할 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의구심을 표명한다. 중국이 ‘강대국’의 조건을 갖추곤 있지만, ‘지도국’이 되기엔 많은 허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중국 정치체제엔 ‘민주주의’가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부자’이지 결코 ‘현자’는 아니라는 얘기다. 중국은 21세기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활절로 만들고 싶어한다. 후진타오 주석은 개혁개방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중국의 목표는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조화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안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공자는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듯 땅에도 두 명의 황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G2 책임론’ 중국은 사양 서방음모론·미국동화론 등…중국내 전문가들은 비판적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경영하는 구도를 가리키는 이른바 ‘G2론’에 대해선 중국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 논의가 향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재편을 암시하는 선견지명이라는 주장 못지않게 중국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려는 서방의 음모에 불과하다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 판강(중국개혁기금회 국민경제연구소장) 금융 위기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들은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 그들은 새로운 세계질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온갖 명분을 내세워 장애물을 세운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대동사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진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중국은 이미 일정한 지위에 올라섰다. 중국은 이제 더 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 장위옌(중국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60여년 동안 미국을 우두머리로 한 서방이 세계 경제와 금융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이번 금융 위기로 그들의 절대권력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이제 미래의 세계질서를 만드는 주체는 더이상 그들이 아니다. 하지만 서방의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이른바 G2의 세계질서는 결코 중국의 목표가 아니다. 이 논리는 중국이 결국은 미국에 동화되고, 미국과 함께 세계를 공동관리하는 구도를 상정한다. 중국은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지만, 그 기초는 평등호혜와 상호존중이어야 한다. ■ 바이옌쑹(중국중앙텔레비전 뉴스채널 사회자) G2라는 말에서 한 글자를 바꿔 U2로 만든다면 나는 기꺼이 그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U2는 영국의 유명한 록밴드이고, 음악은 듣기 좋기 때문이다. 나는 G2란 말은 정말로 듣고 싶지 않다. G2란 말은 걱정스럽다. 세계가 금융 위기에 직면해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질서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G7이 왜 G20으로 확대됐는가? 이제 몇 나라가 세계질서를 논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계는 이제 더 많은 나라들이 참여하는 질서를 원한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다. G2는 그 추세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베이징/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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