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14 15:50
수정 : 2009.05.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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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칠리아 인근 섬에서 포도가 여물고 있다.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슬로푸드 운동을 최초로 벌였다. 농업을 살려야 포도주와 요리도 부활한다는 점을 이탈리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칠리아/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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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2009 농촌 보고서
이탈리아, 원산지 세분화…소비자들 구매 선호
다양한 먹을거리 생산 토대 위 음식문화 발전
2002년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며 많은 책을 챙겼다. 특히‘슬로푸드’ 편집부에서 만들어낸 몇 권의 책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중 한 권은 이탈리아가 어떻게 농어민-유통업자-요리사-소비자의 강고한 물적ㆍ정신적 연대를 이루고 있는지 증명했다. <일 부온 파에제>(Il Buon Paese)라는 책은 전통적인 채소와 곡물, 육가공품, 가공 수산물, 임산물을 파는 전국의 상점을 소개하는 단순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이런 상점이 자기 마을에 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지역의 언론은 이 상점을 자주 보도해주고, 지역의 요리사들과 미식가, 소비자들은 기꺼이 이 상점의 상품을 산다. 그것을 좋은 요리를 위한 최선의 지출로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이 곧 원산지가 된다. 사실상 원산지를 잃어버린 채 대형시장에서 사생아처럼 팔리는 한국의 식재료들과는 대접 자체가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아스파라거스나 상추 한쪽까지도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나온다. 원산지는 세세하게 구분되고, 품질과 가격도 다르게 매겨진다. 요리사들은 이런 재료들을 각자 어울리는 요리에 따로 쓴다. 그래서 신문ㆍ잡지의 요리법 소개 기사에는‘리구리아 임페리아 마을산 올리브유 두 큰술’이라거나‘캄파냐 아말피산 양배추 50그램’등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어떤 나라의 농어업이 얼마나 건강한지 알아보려면 요리사의 의식수준을 살펴보면 된다. 이탈리아의 요리사들은 자기 나라, 마을의 재료를 즐겨 쓰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굳이 멀리서 수입된 재료를 쓰기보다 부족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마을에서 난 재료를 택한다. 이걸‘테루아’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신토불이’쯤 된다. 언젠가 한국의 한 요리사가 언론을 통해 자랑삼아 한 말을 듣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바다 건너 저 멀리서 수입한 특별한 아스파라거스를 독점해서 쓴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나 요리사나 어떤 문제의식도 없었다. 멀리서 항공유나 벙커시유를 소비해 날아온 그 야채가 나는 귀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탈리아 언론의 자세도 한국과 다르다. 중앙ㆍ지역 언론 모두 이탈리아의 농어업과 음식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의라도 하는 것 같다. 농산물과 와인, 가공식품을 소개하는데 지면을 파격적으로 쓴다. 지역의 전통 요리를 소개하는 특집 부록이 아예 책처럼 묶여 나와 필자 같은 요리 유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예를 들어 토스카나의 신문이라면, 토스카나 산악의 버섯과 멧돼지요리, 해안의 해물을 이용한 다양한 전통요리를 묶은 특집판을 펴낸다.
소비자의 의식도 이탈리아의 농어업이 세계화의 거센 태풍을 이기는 촉매가 된다. 그들은 제철 재료와 자국에서 생산한 재료를 사랑한다. 어물전에서 냉동재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은근히 경멸받는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하우스 재배가 거의 없다. 매달 제철에 맞춰 나오는 채소와 과일을 구해 먹는다. 비닐하우스 재배처럼 농업생산물에 인위적인 요소가 가해지는 것에 본능적인 불안과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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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요리사 /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 졸업. <와인스캔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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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는데 열성이지만, 이탈리아는 그 역사가 오래됐다. 시골의 작은 마을도 매년 한두 차례 지역 특산물 축제를 연다. 보통 ‘사그라(sagra)’라고 부르는데, 실제 참석해보면 별 게 없어 실망하기 일쑤다. ‘돼지 사그라’라고 해서 가보면, 어린 돼지 잡기 놀이나 좀 하고, 바비큐를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행사를 통해 지역민들은 자기 마을 특산물을 홍보하고 서로 연대의식을 고양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이탈리아인들은 1986년 로마 스페인 광장의 시위대를 기억한다. 유서깊은 나이트클럽을 대신해 들어선 맥도널드 개점에 항의해 모인 이탈리아의 농민 운동가ㆍ지식인의 시위였다. 그 시위대는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브라에서 작은 단체를 만들고, 신명나는 먹을거리 생산ㆍ소비 운동을 시작했다.‘슬로푸드’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이탈리아인들이 건강한 농산물과 먹을거리의 생산ㆍ유통에 얼마나 자발적으로 모이고 행동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탈리아의 음식문화는 건강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토대 위에 서 있다. 박찬일 요리사/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졸업. <와인스캔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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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유럽에서는
최저가 보장에 직불금 ‘식재료 수호’ 정성
45명 중에 15명.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기숙사의 정원은 45명이다. 모두 외국인이다. 이 가운데 평균 15∼20명이 한국인이다. 르 꼬르동 블루(프랑스 요리학교)도 비슷하다. 유학파 요리사들의 경력에 ‘시아이에이’라는 이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정보기관이 아니라 미국 요리학교(컬리내리 인스티튜트 오브 아메리카)다. 발달한 음식 문화를 배워오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세계에 수출할 음식ㆍ음식문화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농어업이 죽은 나라에서 요리가 발달하기 어렵다고 요리사ㆍ요리전문가들은 말한다. 노민영 슬로푸드 문화원 정책위원은 음식재료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는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 등이 만든 이탈리아 미식과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를 졸업했다. 그는“농업을 지켜 음식재료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음식 문화 발달에 영향을 준다. 음식재료가 다양해야 조리법도 다양해진다.”고 말했다. 일본ㆍ미국 등에서 공부한‘올리브 앤 팬트리’의 김신 요리사도“요리와 음식재료는 실과 바늘이다. 농축산물의 생산ㆍ유통이 제대로 돼야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이 등장한다. 또 한식 세계화가 되려면 한국 음식재료를 외국에 알려야한다.”고 말했다.
요리 선진국 미국ㆍ유럽은 농업 선진국이다. 이들은 한국과 개발도상국에 농업보조금 중단과 시장개방을 요구하면서, 자국 농가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농업을 보호, 육성한다. 농협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보면, 현재 미국 농가는 법률을 통해 최저가격을 보장받고, 고정적으로 보조금을 직접 지불받는다. 농업보조금을 강화한 농업법이 지난해 5월 다시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유럽연합 전체 예산에서 농업 부문 예산이 절반을 차지한다. 가격지지 정책 대신 직접 지불금을 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가령 2000~2002년 연평균 재배면적 70㏊(약 21만1750평)의 농가는 직접 지불금으로 1만8385유로(당시 환율로 약 1800만원)를 받았다. 이들은 요리와 음식재료를 동시에 수출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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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현실은
개방 파고에 농촌 붕괴…‘식량주권’ 위태
1980년대 이후 농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공업화·도시화·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농업은 급속히 해체되고, 농민은 삶터를 떠나고 있다. 더욱이 정부가 공산품 수출의 대가로 농업을 희생하는 개방농정을 밀어붙이면서 위기감이 한층 깊어졌다.
정부가 89년 단행한 대규모 농산물 수입자유화 조처는 개방농정의 신호탄이었다. 이를 계기로 농촌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내몰리면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시장 개방의 압력은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협상 타결과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을 거치면서 더욱 거세졌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높여 국제시장에 적응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파고들면서 2003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속속 타결됐다. 이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지원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2006년 추곡수매가 폐지됐다. 정부는 시장 개방의 대세를 수용해 농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농민들은 이런 방침이 농업을 말살한다며 개방 반대에 목숨을 걸었다.
개방 대책을 둘러싼 정부와 농민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농업 해체과 농촌 붕괴는 빠르게 진행됐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년 9.2%, 98년 4.3%, 2008년 2.2%로 낮아졌다. ‘천하지대본’이었던 농업의 위상이 얼마나 낮아졌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다. 식량자급률은 98년 31.4%에서 10년 만에 26.2%로 하락했다. 식량주권을 지키는 데 필요한 50%에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농촌에서 생계를 잇기가 어려워진 농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등졌다. 농민 수는 88년 727만명에서, 98년 439만명, 지난해 318만명으로 줄었다. 국민의 6.6% 수준이다. 지난해 농가 소득은 3052만원이었지만, 농가 부채는 2578만원을 기록했다. 한해 농사를 지어도 500만원이 남지않는 형편이다. 살기 어려우니 탈농 행렬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남은 농민도 교육·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겨우 살아가고 있다. 정부는 10년 동안 119조원을 들이겠다지만 농촌 살이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높지 않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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