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진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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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진보의 길찾기
오바마를 만든 ‘진보의 포석’ 지난 5일, 워싱턴의 ‘미국의 미래를 위한 캠페인’(CAF) 사무실은 활기에 넘쳤다. ‘진보의 다수세력 형성’을 기치로 6월1일부터 사흘 동안 열리는 미국 진보·리버럴 세력의 총결집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동대표인 로버트 보러시지는 “영구적인 진보세력 다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정권의 인수위원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가 소장으로 있는 ‘미국진보센터’(CAP)가 6일 마련한 기금마련 만찬 행사엔 10만달러를 내고 포데스타와 함께 주빈석에 앉으려는 후원자들이 몰렸다. 이 단체는 인구 구성과 유권자 성향 변화 등을 근거로 민주당 장기집권을 전망하는 일련의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미국진보센터의 존 뉴로어 언론담당 부국장은 “지금 워싱턴 정가는 진보적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조직·싱크탱크 등 장기적 인프라 구축
정책 생산보다 빠르고 쉬운 전달 힘써 민주당
정책 선명성 강화…취약지 조직 정비
중진들, 새내기 스타에 아낌없는 지원 2005년 초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조지 부시의 재집권을 이끈 칼 로브가 공화당 영구집권을 공언할 정도로 보수세력의 기세가 등등했다. 잇따른 선거 패배 이후 침체에 빠져 있던 진보진영과 민주당은 어떻게 4년 만에 상황을 역전시킨 걸까? 버락 오바마라는 뛰어난 개인의 존재나 공화당의 실정이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는다. ■ 하워드 딘의 유산 진보 주간지 <네이션>은 ‘민주당을 치료한 의사’로 하워드 딘을 지목했다. 딘이 오바마 대통령 탄생에 주춧돌을 놓았다는 것이다. 하워드 딘은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풍적인 ‘딘 돌풍’을 일으켰다. 비록 존 케리에게 패배했지만, 그의 활약이 민주당과 진보진영 전체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앨 고어의 선거기획단장 출신인 민주당 전략가 도나 브러질은 “2004년의 하워드 딘 신드롬이 있었기에 2008년의 오바마 신드롬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딘은 ‘민주당 내 민주파’를 자처하며 민주당 정통 진보노선으로 복귀하자고 외쳤다. 그는 이라크전쟁에 분명하게 반대했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던 민주당 주류의 중도화, 보수회귀 노선을 비판했다. 딘은 ‘빅머니’로 불리는 특수 이익집단의 정치자금을 거부했다. 대신 무브온(moveon.org)과 미트업(Meetup.com) 등 인터넷 공간을 활용해 단숨에 4500만달러를 모아 다른 후보들의 모금을 압도했다. 딘을 지지하는 ‘딘의 아이들’(Deanie Babies)은 마이디디(mydd.com) 등 수많은 정치블로그와 사이트를 넘나들며 딘의 메시지를 퍼날랐다. <떠오르는 인터넷뿌리>(Netroots Rising)의 저자인 로월 펠드는 딘의 캠페인을 ‘풀뿌리와 인터넷뿌리, 진보운동의 창조적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잠재해 있던 진보적 에너지가 온라인 공간의 ‘인터넷뿌리’들과 결합하면서 발생한 새로운 동력이 진보세력 부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딘은 비록 경선에서 졌지만 2005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맡아 당 혁신에 나섰다. 논쟁을 피하려 모호하게 돼 있던 정강정책을 뜯어고쳐 쟁점에 대한 의견을 단순하고 선명하게 정리했다. 또 승리 가능성이 있는 접전주 공략에 치중하는 종래의 당 조직노선을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취약지까지 파고드는 ‘50개주 전략’(fifty state strategy)을 채택했다. 공화당 강세지역에서도 젊고 헌신적인 후보자를 발굴했고 활동가들을 기용해 풀뿌리 조직을 확충했다. 결실은 일찍 찾아와 민주당은 1년 뒤 중간선거에서 캔자스, 몬태나 등의 취약지에서 의석을 차지하는 등 크게 승리할 수 있었다. 4년 뒤 버락 오바마 진영은 딘의 조직노선과 인터넷 기반의 캠페인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오바마의 선명한 반전 노선에 환호한 2004년 ‘딘의 아이들’은 2008년 ‘오바마니아’(Obamania)로 변신했다. 오바마 진영은 후보경선 기간에 인터넷 공간을 통해 평균 100달러를 기부한 47만명의 지지자 명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전통적 모금방식에 의존한 경쟁자 힐러리 클린턴을 압도하는 원동력이 됐다. 오바마는 본선에서도 ‘50개주 전략’을 본떠 대대적인 ‘50개주 유권자 등록운동’을 벌이며 취약지 공략에 공을 들였고 이것이 노스캐롤라이나 등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지역 승리로 이어졌다. 오바마의 성공은 하워드 딘의 의미 있는 실패와 장기적 안목의 혁신이라는 디딤돌 위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 중진들의 인물 키우기 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존 케리는 기금마련 행사에서 만난 오바마의 탁월한 연설 솜씨에 이미 반해 있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을 오바마에게 맡김으로써 ‘스타’로 만들었다. 상원 원내대표 출신의 톰 대슐은 ‘101번째 상원의원’으로 불릴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던 자신의 보좌관 피트 라우스를 오바마의 의회보좌관으로 보내며 전폭 지원했다. 2008년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은 원래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존 에드워즈의 것이었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공약을 오바마의 공약으로 만들어줬다. 일리노이 출신의 풋내기 상원의원이 일약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엔, 재능을 시샘하지 않고 사심 없이 인물을 키웠던 민주당 중진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 준비된 진보진영 오바마 신화는 미국 진보·리버럴 진영의 장기적인 준비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공화당에 정권을 내준 2000년 이후 진보진영은 1970~80년대 보수세력이 했던 일을 벤치마킹하는 데 몰두했다. 이슈 중심의 이벤트 위주로 돈을 쓰던 데서 탈피해 조직과 단체를 띄우고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미국진보센터’나 ‘미국의 미래를 위한 캠페인’ 같은 단체는 장기적 관점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정책을 발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통 사람들에게 ‘빠르고 쉽게’(퀵 앤 이지)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다. 보수정책의 본산 헤리티지재단이 정책 생산 못지않게 유통에 집중한 것을 본뜬 것이다. 경제, 이라크전쟁, 에너지, 의료보험 등 주요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 논리로 무장한 진보단체들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파고들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이럴 때 버락 오바마라는 걸출한 인물이 출현했다. “진보진영은 진보적 정책과 가치를 유권자에게 실어나를 맞춤한 차량을 찾고 있었다. 진보적이면서도 과격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현실적이며, 뛰어난 대중소통력을 지닌 버락 오바마는 우리가 찾고 있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차량이었다.” 미국진보센터 존 뉴로어의 얘기다. 지난해 3월 열린 진보진영의 총결집 행사 ‘미국 되돌리기’에 참여한 진보진영 활동가 3000여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미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72% 대 16%로 압도했다. 오바마의 탄생은 미국 사회의 시대적 지형변화 속에서 이미 예고돼 있었던 셈이다. 워싱턴/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정치평론가 버니 혼 “진보진영과 대중은 오해하기 쉬워
보통사람 이해시킬 설득력 가져야”
정치평론가 버니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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