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산당과 산하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이 지난달 29일 도쿄 신주쿠에서 개최한 ‘거리 노동생활상담’. 단순한 당 홍보활동이 아니라, 비정규직 등 해고의 광풍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표방했다.
|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제조업까지 파견직 허용 ‘평생직장 실종’
연봉 2백만엔 이하 ‘워킹 푸어’ 1천만명
공산당, 풀뿌리 조직개편·거리노동상담
진보의 길찾기 / 일본 공산당의 부활 전직 자위대원 사야마 가쓰노부(60·가명)는 지난해 10월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선거 때마다 집권 자민당에 투표하던 그가 자민당과 대척점에 있는 정당에 입당한 것은 실직이 계기가 됐다.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1년간 자위대에서 일한 그는 지난해 주방 및 가구 재활용 업체에서 2개월간 파트타임으로 청소일을 하다가 해고됐다. 자위대 퇴직 이후 인쇄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각종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던 그에게 실직 뒤 수중에 남은 것은 3만엔뿐이었다. 하루 생활비를 500엔으로 줄이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일자리를 찾으려 했으나, 예순살의 그가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때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적기)를 구독하는 이웃이 공산당과 한번 상의해보라고 귀띔했다. 사야마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일본공산당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의원인 도쿠마스 기요코(58)는 당장 사야마와 함께 시의회에 가서 생활보호를 신청했다. 44살 때 세번이나 생활보호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경험이 있던 그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곧 다달이 7만엔의 생활보호 자금을 받게 된 그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고 여겼던 공산당에 대한 이미지를 싹 바꾸게 됐다. 지난달 26일 공산당 지바현 나가레야마시 동부지부의 일요모임에서 <한겨레>와 만난 사야마는 “사회 저변의 약자들을 돕기 위해 공산당에 들어왔다.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모르는 것도 여러 가지 가르쳐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일정한 수입이 없어 결혼도 못했고, 오랜 불안정한 생활 때문에 가벼운 우울증까지 있다는 그는 이날 회의 동안 시종 활기를 보이며 간혹 유머까지 던지는 등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날 회의에는 종교단체 창가학회를 모체로 한 집권 여당 파트너인 공명당의 당원이었던 60대 여성, 70살에 입당한 홀몸노인 등 다른 신입 입당자들도 참석했다.
우스이 도코미(55·가명)
|
“비정규직 노동조건 바꾸자”
공산당 입당하며 각오다져 자본주의 체제가 고도로 발달한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사야마처럼 공산당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7년 9월 이후 매달 약 1천명씩 신규 당원이 늘어나 1만8천명이 새로 입당했다. 당원 증가 속도가 이전의 두 배가 됐다. 특히 20대~30대 전반의 젊은 입당자들이 이전에는 10% 정도였지만, 지금은 20~3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시이 가즈오 공산당 위원장이 지난해 중의원 대정부 질의를 통해 파견노동자의 마구잡이 해고를 질타하는 동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당 강령을 보고 자발적으로 입당하는 전례 없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만 52명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입당했다. 젊은 공산당원 증가의 배경에는 평생직장을 자랑하던 일본 사회가 어느덧 ‘고용 불안과 숨겨진 빈곤 대국’으로 전락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공산당원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가 70년 전에 발표한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이 지난해 50만권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한 것도 공산당 붐에 불을 지폈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겐 70년 전 소설 속 가혹한 노동환경이 현대 일본의 자기 이야기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2002년 자민당 정권이 노동자파견법을 개정해 제조업까지 파견직을 허용하는 등 신자유주의식 구조개혁을 단행한 결과 비정규직이 35%로 늘어나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젊은이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으로 전전하고 있다. ‘일본판 88만원 세대’인 비정규직의 양산은 빈곤의 확산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급여의 50~60%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간 수입 200만엔 이하인 1천만 일본 ‘워킹 푸어’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친 세계 금융위기와 경기 불황은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도요타 등 일본 대기업 제조업체들이 지난 5~6년간의 호황 때 사내 유보금을 수조~12조엔씩 두 배 가까이 늘려놓고도, 불황을 빌미로 기다렸다는 듯이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해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고용보험에도 들지 못해 실직과 동시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 해고와 함께 회사 기숙사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은 경우도 많았다. 올해 6월까지 비정규직 해고의 광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20만~40만명이 해고될 것이라는 통계도 나오고 있다. 허술해진 사회안전망에서 퉁겨져 나간 그들에게 일본 공산당은 현대판 ‘가케고미데라’(에도시대 사회적 약자의 도피처 구실을 했던 절)였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시급 1천엔의 파견직으로 일하다 지난해 1월 해고된 우스이 도코미(55·가명)는 두 달치 생활비밖에 없는 막막한 상태였다. 해고 뒤 집 안에 틀어박혀 생활했던 그는 올 1월 사장이 공산당원이고 직원 상당수도 공산당원인 병원 청소회사에 취직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3월 공산당에 입당했다. 1922년 창당 이후 오랜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당원 40여만명의 대부분이 50~70대 중장년층이었던 일본공산당으로서는 최근 ‘젊은 피’ 수혈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데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사노 기쿠코(22·가명)
|
당과 상담 해고철회투쟁
“나같은 약자편이라 입당” 아사노 기쿠코(22·가명·여)도 공산당이 최근 확보한 ‘젊은 피’의 한 사람이다. 고교 졸업 뒤 4년 가까이 일하던 자동차 정밀부품 공장에서 지난 3월25일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지난 1월 공산당이 주최한 거리노동상담에서 알게 된 아베 마코토 도쿄도의원의 도움을 받고 회사를 상대로 해고철회 투쟁을 하고 있다. 다른 곳에 취직하기 어려운 불황 속에서 13만엔이라는 터무니없이 적은 퇴직금을 가지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그는 지난 2월 “공산당은 나 같은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응원해준다”고 느껴 입당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애초 정치에 관심도 없고 선거 때는 투표 현장에서 적당히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냈다는 그는 입당 이후 “우리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도쿄 신주쿠에서 일본공산당과 계열 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민청)이 공동 주최한 ‘거리 노동생활상담’ 캠페인은 사회적 약자와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공산당의 전형적인 활동이다. 지난해 11월 건축회사에서 쫓겨나 공원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쉰다섯살 남성은 이날 상담을 받고, 공산당 도의회 의원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생활보호 신청을 했다. 열아홉살 때 결혼하고 스물두살 때 이혼해 두 자녀를 둔 싱글맘 스마노 요코(41)에게 일본공산당은 “곤란한 사람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정당”이다. 또한 “국가의 정당보조금이나 기업체 정치헌금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당비로만 운영하는 깨끗한 정당”이라고 생각해 최근 자연스럽게 입당했다. 일본공산당은 지역조직 강화에 역점을 기울여 풀뿌리 정당의 이미지를 강화한 것도 당세 확장으로 이어졌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에 밀려 의석수가 9석에서 7석으로 줄어든 데 충격을 받고 지역 밀착 활동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전국 2만2천여 지부와 3천여명의 지방의원들이 지역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이 결과 지난 4월 지방선거에서 일본공산당은 의석을 9석이나 늘리고 2007년 참의원 선거에 비해 득표수도 50% 가까이 확대하는 등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에키 도시오 공산당 홍보부장은 “공산주의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한꺼번에 공산주의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있는 자본주의, 즉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를 실현하자는 것이 우리 목표”라며 “이것이 국민들이 공산당에 편안함을 느끼고 공감대를 넓히는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본공산당은 2004년 1월 제23차 당대회에서 당강령을 대대적으로 개정해, 혁명정부 수립 목표를 포기하고 민주연합정부를 통한 의회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공산주의 혁명이나 일당독재가 연상되기 쉬운 공산당 이미지를 탈피해,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는 ‘민주집중제’라는 이름으로 각 지부에 현지 실정을 무시한 상의하달식의 지시를 내려보내기도 했지만, 현재는 각 지역의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산당 당원 증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약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공산당은 올 9월 이전에 실시되는 중의원 선거에서 650만표 이상을 얻어 현재 9석인 중의원 의석을 크게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공산당 지지율은 4~5% 정도에 그치고 있다. 소련 붕괴 등 사회주의 체제 몰락 이후 혁명노선을 포기한 뒤에도 일본 국민 전반의 공산당에 대한 거리감 또는 거부감은 여전히 강하다. 최전성기였던 1979년 중·참의원을 합쳐 40석을 확보했던 때에 비하면 현재 중·참의원의 16석은 초라하다. 정권교체의 바람이 거세질 경우 차기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 대 민주당의 구도가 강해져 부동표가 민주당에 쏠릴 수도 있다. 지방선거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력이 떨어지는 점도 고민거리다. 지역 당 관계자는 “우리 지역의 경우 지방선거에선 유권자들이 공산당의 정당명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투표를 하기 때문에 1만표 정도 나오는데, 총선에서는 아무래도 공산당이라는 간판이 부담스러운지 표가 적게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우에키 홍보부장은 “공산당은 일당독재 이미지가 있으니까 당명을 바꾸자는 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의 본질은 일당독재가 아니라고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산당이 다수파로 다른 정당과 함께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사진 황자혜 <한겨레21>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