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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17 14:15 수정 : 2011.11.17 14:25

자구리 해안의 용천수 자구리물. 서귀포 주민들이 소낭머리물과 함께 오랫동안 식수공급원·빨래터로 사용해 온 곳이다.

[매거진 esc] esc 워킹맵 40. 제주 서귀포항과 서귀진
이중섭초가~매일올레시장~이중섭거리~자구리해안…제주 서귀포 옛도심 5km

서귀포는 ‘세계 7대 자연경관’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섬 제주도 남부의 그림 같은 항구도시. 앞바다를 지키는 섶섬·문섬·새섬·범섬이 늠름하고, 포구 양쪽 해안절벽에 드리운 정방폭포·천지연폭포 물줄기가 늘씬하다. 관광객들이 좀더 멋진 경관을 찾느라 무심코 지나치는 서귀포 옛도심에도 흥미로운 볼거리·느낄거리들이 촘촘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이 살던 집 앞에서 걷기 시작해 매일올레시장, 이중섭 거리, 서귀진 터와 자구리 해안, 정방폭포를 감상하며 도심을 한바퀴 돈다.

이중섭 거주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래된 계단길을 오른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때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 와 서귀포에서 1년을 지냈다. 그가 살던 집과 미술관은 잠시 뒤에 보기로 하고 서귀포기상대로 올라간다. 기상대는 일제강점기 신사가 있던 치욕의 자리였다. 정방동주민센터 거쳐 기상대로 오르는 돌계단길이 신사참배를 위해 오르던 길이다. 서귀포 향토사학자 박정석(68)씨는 “초등생들도 반바지 차림으로 줄지어 올라가 참배했다”고 말했다. 일제 흔적은 일부 민가 돌담에도 남아 있다. 돌을 길쭉하게 세워서 쌓는 건 일본식이라고 한다.

기상대 옆길엔 노란 머위꽃들이 화사하다. 제주 특산 문주란도 심어놨다. 기상청 마당 구석에 선 커다란 후박나무를 만나러 간다. 400년 넘은, 서귀포를 지키는 신목이다. 옆에 한 그루가 더 있었으나, 태풍 사라(1959년) 때 낙뢰로 불타버렸다. 박씨는 “불탄 나무를 톱으로 자르는 데 닷새가 걸렸다”고 말했다. 기상대 앞마당은 이중섭이 앞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리던 곳이다. “내가 그때 일곱살이었는데, 그 양반이 여기 이젤을 세우고 앉아서 바다 그림을 그렸어요. 그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었지.”(박정석씨)

고위 공무원 줄줄이 났다는 구린세끼 윗마을
굿인모텔·영원여인숙·장수장여관…, 이름도 좋은 숙박시설이 고루 나타나는 골목길 지나, 감귤가게·떡집·옷가게 즐비한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동쪽 입구로 들어선다. 시장 자리는 ‘시내 뒤쪽 넓은 들판’이란 뜻의 ‘뒷병듸’라 불리던 곳이다. 20여년 전까지는 오일장(4·9일)이었다. 서귀떡방아·강방와(가서 보고 와라)·모닥치기(모둠)·상에떡(상외떡)…, 가게 이름, 음식 이름이 색다르면서도 정겨운 시장골목을 걷다가, 한 분식집 진열대에 쌓인 커다란 빵덩어리들을 만났다. “이게 제주 별미 상외떡이우다.”(영분식 주인) 시루떡·송편처럼 제사상에 정식으로 올리는 떡이 아닌, 밀·보리로 만든 떡(빵)을 말한다. 가난했던 시절 제상에 제대로 만든 떡을 못 올리고, 대신 올리면서 상외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중섭이 1951년 1년 동안 세들어 살던 초가. 당시 주인집 며느리 김순복씨가 지금도 살고 있다.
식당·카페 간판들 깜찍한 이중섭 거리. 길바닥도 담벽도, 식당도 가로등도 이중섭 그림 장식이다. 1년을 머물고 간 천재화가의 후광이 거리를 환히 비춘다. 토요일엔 ‘서귀포예술시장’이 열린다. 문화단체 회원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공예품과 옷가지, 기념품들을 파는 장터다. 한 가게 앞 난간 전체가 주황빛 감귤로 눈부시다. “멋있죠? 내가 만든 거예요.”(한다경·5) 아이가 감귤 수십개를 난간 위아래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고 있다. 이중섭 거리다운 근사한 설치미술 아닌가! 아이가 건네준 작품 재료 하나를 까먹으며 언덕길을 내려간다.

다정여인숙 골목으로 들어가면 제주도 설화에 등장하는 바람의 신 ‘보름웃도’를 모시는 서귀본향당과 이중섭미술관이 기다린다. 서귀본향당은 700년 유래를 가진 사당. 본디 목재 사당이던 것이 낡아 헐고 시멘트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사당 옆 담 너머로 기상대 안에서 만났던 후박나무 신목이 보인다. 이중섭미술관엔 이중섭의 작품 10점과 아내(이남덕·마사코)와 주고받은 편지, 박수근·이응노의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아래, 이중섭 가족이 1년간 살던 오래된 초가가 볼만하다. 그가 아내와 5살·3살 두 아들과 살았다는 방은 초가의 오른쪽 끝 1.4평짜리 단칸방이다. 초가에는 당시부터 살아온 주인집 며느리 김순복(91)씨가 지금도 살고 있다.

미루나무 카페 벽에 매달려 나부끼는 ‘울지마 구럼비야’ ‘그냥 놔둡써, 건드리지 말앙!’ 등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리본들을 살펴보고, 화사한 빛깔로 물들어가는 감귤밭 지나, 90년대 중반까지 말이 끄는 연자방아가 있었다는 모퉁이를 돌아 구린세끼 골목으로 내려선다. 구린세끼는 “비 오면 윗동네에서 배출된 온갖 구정물과 쓰레기가 쏟아져들어와 냄새가 심했던 골목”이었다. 구린세끼 윗동네에선 고위 공무원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60년 넘은 중국집 덕성원과 100년 역사를 가진 서귀포성당을 지난다. 성당 앞마당은 50년대 중반, 1~3회 탐라예술제(현재 탐라문화제)가 열렸던 장소다. 나포리호텔 밑 옛 매일시장 터 지나, 조선시대 서귀진성과 포구로 드는 옛길이었다는 기정길(벼랑길)로 내려선다. 앞이 탁 트이며 포구 쪽 경관이 열린다. 최근 건설된, 새섬과 잇는 다리 새연교가 울창한 참가시나무·동백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4·3 통곡 숨은 서복전시관…‘무아지경’에 마음 달래고
천지연폭포 들머리에서 방향을 틀어 포구 쪽 절벽 밑의 선왕당사(용신당·용왕당)에 들른다. 잠수·잠녀들과 고깃배의 안전과 풍어를 빌며 매달 초하루 제를 올리는, 용왕의 막내딸을 모신 사당이다. 위쪽으로 오르면 오래된 팽나무 무리가 울창하다. 최근 지은 칠십리정자 옆에는 둘레가 7m나 되는 소나무(신목)가 있었다. 찰흙을 빚고 조각하는 솜씨가 전문가 뺨친다는, 강씨(75) 할아버지 집 울타리 안에 놓인 다양한 표정의 인물 작품들(사진)을 감상하고 서귀진 터로 걷는다. 서귀진은 조선시대 제주 3성9진의 하나. 일제강점기까지 건물들과 성벽이 남아 있었다. 동헌이 있던 자리에 서귀진 표석을 세웠다.

검은 바위 우거진 자구리 해안으로 간다. 이중섭은 섶섬·문섬이 보이는 이 바닷가에서 아내, 두 아이와 함께 게를 잡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작품 <그리운 제주도 풍경>에 이때 모습이 담겨 있다. 이를 알리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자구리에서 ‘자구리물’을 빼놓을 수 없다. 서귀포 주민들이 오랫동안 식수로 써온 용천수다. 할머니 두 분이 앉아 자구리물로 빨래를 하신다. 강옥(70) 할머니 말씀. “여깃물이 수돗물보다 좋수다예. 재기 호는 맛에(빨리 하는 맛에) 여기 와서 함수다.”

제주 풍물을 노래한 시화전시장 지나 소낭머리 전망대에 선다. 소나무가 많았던 언덕으로, 서귀포 출신 서예가 소암 현중화(1907~1997) 선생이 자주 들러 머리를 맑혔다는 곳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보낸 서불(서복)이 정방폭포 주변에 들러 갔다 해서 세운 서복전시관(16)과 서복공원은 규모에 비해 근거도 전시 내용도 빈약하다. 정방폭포(17) 절벽에 서불이 새긴 글씨가 있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실은 서복전시관 주변 절벽은 제주도민의 한과 고통이 서린 곳이다. 문화관광해설사 강치균(67)씨가 말했다. “4·3 때 폭도로 몰린 중산간 지역 사람들과 군인·경찰들이 교대로 총과 대창으로 살해된 곳입니다.” 낮엔 군경이 지배하고, 밤엔 산사람들이 지배하며, 무수한 주민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정방폭포 앞으로 내려가, 땅을 치는 물소리에 이마를 씻고 돌아나와 소암기념관(18)을 향해 걷는다. 박정석씨는 기념관 앞길이 “통곡의 길, 죽음의 길이었다”고 말했다. 해안가 절벽에서 희생될 사람들이 이 길로 가족의 통곡 속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소암기념관은 자유분방한 글씨체로 이름난 현중화 선생이 “자연이 곧 글씨”라는 철학 아래 “먹고 자고 쓰는” 데에만 몰두하며 50년간 살던 집 옆에 세운 서예전시관이다. 무아지경에 든 듯한 ‘무아지경’ 글씨를 마음에 새겨담고 나오니 걸음이 좀 가벼워진 느낌이다. 5㎞ 남짓 걸었다.

서귀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매거진 esc] esc 워킹맵 40. 제주 서귀포항과 서귀진 ※ 오려서 보관하세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랑조을거리엔 먹거리 지천

가는 길 | 제주공항에서 600번 버스로 서귀포항까지 1시간20분. 아침 6시20분부터 밤 10시까지 17분 간격. 5000원. 렌터카로 1시간 소요.

먹을 곳 | 서귀포 솔동산 안거리밖거리(064-763-2552)의 정식(8000원)과 비빔밥(7000원), 천지연폭포 들머리 새섬갈비(064-732-4001)의 흑돼지오겹(1인분 1만5000원) 숯불구이, 서귀포매일올레시장 안 새로나분식(언니네)의 모닥치기(김밥+떡볶이+만두+전 모둠) 5000~7000원, 서귀포항 올레밀면(064-763-3313)의 회밀면(8000원). 중앙로터리(1호광장) 옆 골목의 ‘아랑조을거리’는 다양한 식당이 몰린 서귀포의 먹자골목. ‘알면 좋은 거리’라는 뜻.

또다른 탐방길 | 서귀포 도심은 제주 올레 제6코스가 지난다.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완만한 해안길, 마을길이 이어진다. 14.4km. 서귀포시에서 마련한 ‘작가의 산책길’도 있다. 이중섭미술관~기당미술관~칠십리 시 공원~자구리~서복전시관~정방폭포~소암기념관 4.9km.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상외떡 파는 가게. 밀가루나 보릿가루로 만든 커다란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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