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워킹맵 36. 속초 동명항과 산동네 골목
강원 속초시 시청~동명항~중앙시장~아바이마을 8km
강원도 북부 해안의 속초시는 일제강점기 이후 발달한 신흥 항구도시다. 조선 말까지 양양 소천면에 속한 작은 포구마을(속초리·속진·속새)이었다. 일제가 양양의 철광석 등을 배로 실어가기 위해 청초호 항만을 개발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시내에서 오래된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건 포구 주변과 산동네에 깔린, 애달프고 고달픈 사람살이 흔적들이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1950~60년대 묵은때와 굳은살이 보이고 만져진다. 속초시청에서 출발해 동명항·속초등대 거쳐 옛 철길 터를 따라 내려와, 금호동 산동네와 중앙시장을 들여다본 뒤 청호동 ‘아바이 마을’로 걷는다.
해경 전용부두 옆 도로를 따라 수복탑 오거리 쪽으로 걷는다. 40년 전엔 이 도로 안쪽까지 바다였다. “일루다 고기 덕장이 그냥 깔렸는데, 원체 고기가 많으니까는 터만 있으면 거저 낭구(나무) 엮어선 고기를 내거는 거라.”(문화관광해설사 김성환씨·70) 김씨는 전쟁 전, 아버지 등에 업혀 함흥에서 월남한 뒤 떠돌며 생활하다 1967년 속초에 정착한 실향민 2세대다.
오징어 경매(6월 말~늦가을)가 벌어지면 주변이 시끌벅적해진다는 오징어 어판장(1)을 지나 수복기념탑(2)을 만난다. 1954년 수복을 기념하고 피난민 향수를 달래기 위해 세운 ‘모자상’(1983년 재건립)이다. 전쟁을 겪고도 굳세게 사는 어머니와 아이를 표현했다. 골목길을 돌아, 세운 지 84년 됐다는 속초감리교회(3) 쪽으로 오른다. 교회 교육관 담 쪽을 향해 구불구불 오르는 골목길엔 70년대 지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시내·동해바다 내려다보이는 교회 앞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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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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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옛날 집을 살펴보는데, 옆 집터의 시멘트 바닥 한구석에서 고추밭을 일구던 고창순(78)씨가 말했다. “내 영랑동 토백이요, 인저 토백이두 몇 없어. 다 여기저기서 몰려온 잡종덜이지. 나두 가야지. 갈 때가 됐으니.” 몰려온 ‘잡종’ 중 한 분인 해설사 김씨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며 말했다. “노인네들 ‘인제 가야지’ 하는 얘기 말야.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야.”
높고도 널찍한, 교회 앞마당은 빼어난 전망대다. 항구도 섬(조도)도, 시내도, 설악산 일부도 바라다보인다. 턱밑엔 낮고도 비좁은, 잿빛 슬레이트 지붕들과 골목길들이 깔려 있다. 낡고 구멍난 오래된 빈집을 바라보며 동명동 성당(사진·4)으로 들어선다. 사다리꼴의 본당 건물(1951년 건립) 모습이 볼만한데, 옛 맛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게 근대문화유산 감인데, 안에 습기가 차니까 거죽에 콜타르 칠을 하면서 망쳤어요. 창문까지 갈아끼우고.”(서낙원씨·72)
소나무숲 계단 밑 쪽문을 나서 동명항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동원부식’ 간판이 걸린 옛 2층집(5)을 보고 내려가, 동명항으로 가기 전에 해경 앞에서 산길로 오른다. 주민들이 ‘망지꼬대’라 부르던 야산에 동명동 성황당(6)이 있다. 영금정 산자락 부근에 있던 것을 옮겨 세웠다. 유리문까지 해달고 담장까지 두른, 멋없는 최신식 성황당이다.
오징어·노가리·쥐포·가자미 내걸린 건어물 가게들 지나 30~40년 전 형성된 낡은 골목을 돌아 동명항 주차장 쪽으로 걷는다. 멀리 영금정 돌산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 옆 구명 튜브 모양의, 냉난방이 되고 음악도 흘러나오는 공중화장실 거쳐, 50여척 어선들이 머리를 들이밀고 흔들리는 어구 보수장(7)으로 간다. 그물 손질엔 대개 부부가 매달려 있다. 요즘 뭐가 많이 잡히느냐고 묻자, 한 선주는 “하두 고기를 못 봐서 뭐이가 나는지, 어드렇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외면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동명항 활어유통센터(8) 1층엔 활어가게 28집이 있고, 2층엔 수협 직영의 매운탕집이 있다. 1층에서 회를 떠 갖고 올라가면 실비를 받고 채소 등을 제공한다. “센터에선 요 앞에서 입찰본 자연산만 다뤄요. 고기 없으면 문 닫고.”(남치우 활어센터 관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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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동명항 어구보수장 앞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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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 쪽으로 간다. 영금정 밑(방파제 쪽)에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파는 좌판(9)이 있다. 30년 경력의 해녀 진숙자(66)씨는 “5년 전까지 17명이나 있었는데, 이젠 다들 나이 들고 몸이 아파 3명만 물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디 영금정(10)은 정자 이름이 아니었다. 속초등대 밑 바닷가의 넓은 암반과 이어진 돌산을 지칭하던 이름이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신비한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경관이 아름다워 비선대라고도 불렀다(<대동여지도>). 일제강점기 청초호 축항공사 때 채석장으로 이용되면서 훼손됐다. 속초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깎아낸 암반 자국이 뚜렷하다. 돌산 위 영금정과, 다리로 이어진 해상정자(11)는 최근에 만든 것이다. 해상정자 들머리엔 동명항의 옛 사진들을 전시해놨다.
금호동 산동네 골목길 미로 헤매볼 만
속초등대(12) 2·3층에 올라 앞바다·뒷산 감상하고 소나무숲길 걸어 내려가, 30여년 전까지 해당화밭이었다는 해변 옆 영랑동1구 마을 옛 시장터(13)를 둘러본다. 이모네식당 옆 간판 없는 구멍가게(성미수퍼)에서 만난 신광철(64)씨는 “60년대까지 속초의 대표 시장이었는데, 중앙시장이 생기면서 쇠퇴했다”고 말했다. 골목마다 빈집과 창고들이 낡아가고 있다.
옛 동해북부선(양양~원산) 철길 터는 4차선 도로가 돼 있다. 옛 철길 터 따라가는 길은 ‘법대로’ 걷는, 다소 지루한 길이다. 법원 옆길이어서 도로 이름이 ‘법대로’다. 속초버스터미널 옆 네거리 건너 수복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꽃다방 건너편에 ‘카오디오 자동차용품점’ 건물이 보인다. 옛 속초역 자리(14)다. 1941년 지어진 속초역사는 1978년 헐렸다.
시청과 연결하는 도로공사장 지나 현대미니수퍼 옆골목으로 오른다.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이어진 금호동 산동네(15) 들머리다. 잠시, 멈춘 시계가 가리키는 시침·분침·초침 따라 걸으며 미로를 헤매볼 만하다. 능선 위로 올라 ‘사이렌 탑’ 지나 ‘중앙시장로 8길 1-29’ 이정표 따라 우회전해 다시 골목길로 내려선다. 지붕 밑 벽에 ‘여인숙’ 글씨가 뚜렷한 허물어진 옛 건물 보며, 담쟁이 덮인 돌담집 거쳐 내려가면 천신선녀 보살집 지나 중앙시장 들머리로 나서게 된다.
중앙시장(16)으로 들어선다. 수산시장 지나 닭전골목을 구경한다. 한 집이 방송을 타고 뜨면서 3년 새 10여집이 생겼다고 한다. 맛은 “대동소이하다”. 1마리분 2만원. 순대골목 보고, 의류·화장품·휴대폰 매장 이어지는 번화가로 나선다.
길 건너에 ‘어부상’이 보인다. 퍼덕이는 물고기를 움켜쥔 어부들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구두 수선 카페(17)’를 들여다본다. “30년 가까이 요 앞 손수레·트럭에서 구두 닦아 돈을 벌어, 5년 전 이 건물을 사들였다”는 50대 후반의 구두닦이 아저씨가 당당하게 말했다. “개인이 밝고 당당하면 대통령이 온대두 까딱마이신이죠.” 흘러간 팝송·가요(엘피판)들을 틀어놓고 ‘신나게’ 일하는 시민이다. 자판기 커피 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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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등대 밑에서 바라본 영금정 정자(오른쪽)와 해상정자. 앞쪽 바위바닥은 일제강점기 축항공사 때 석재를 파낸 흔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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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호 선착장을 걸어, 청호동으로 건너는 갯배(18)를 타러 간다. 청호동은 “소낭구(소나무)들과 공동묘지만 즐비하던 모래땅”에 한국전쟁 직후, 함경도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아바이 마을(19)’이다. 쇠밧줄로 꿰인 사각형 나무배(갯배) 2대가 50여m 물길을 오간다. 사람·자전거·손수레 편도 2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가을동화’ ‘1박2일’ 촬영지임을 알리는 간판들이 어지럽다. 청호동에서도 옛 골목과 낡은 집들을 만날 수 있다. “절반이 행경도(함경도) 사람들인데, 1세대는 다 돌아가고 인전 세 분인가만 남았대요.”
올해 안 청호대교 옆 모래톱을 뚫어 청초호와 앞바다 물길이 이어지면, 고깃배들도 이 물길로 드나들게 된다고 한다. 다시 갯배 타고 건너와, 속초시청으로 돌아왔다. 8㎞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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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킹쪽지
생선 숯불구이집 선착장에 즐비
◎ 가는길 | 수도권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강일분기점에서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탄다. 동홍천나들목에서 나가 44번 국도 타고 인제~원통~용대리~미시령(터널) 거쳐 속초로 간다. 수도권 남부지역에선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거쳐 7번 국도 따라 양양 지나 속초로 간다.
◎ 먹을곳·묵을곳 | 동명항 활어유통센터는 속초 어민들이 잡아온 활어만 다루는 수협 직판장이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르고 떠서 2층으로 올라가면 채소·반찬·매운탕을 마련해 준다(1인 30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숯불생선구이집이 즐비하고, 청호동 아바이마을엔 아바이순대·오징어순대·함흥냉면·생선구이를 내는 식당과 젓갈집들이 많다. 조양동 관광엑스포장 부근에 새로 생긴 모텔들이 몰려 있다.
◎ 여행문의 | 속초시청 문화관광과 (033)639-2365, 속초박물관 (033) 639-2974, 속초문화원 (033)63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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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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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속초시 시청~동명항~중앙시장~아바이마을 8km.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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