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30 21:36
수정 : 2010.07.0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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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중앙시장 옆 골목 네거리. 약국 건물은 50년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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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 워킹맵 27. 상주 옛도심과 왕산
상주시청에서 중앙시장·왕산·벽화산책로 따라 옛 도심 한바퀴 4.5㎞
곶감 고을 경북 상주는 자전거 도시이기도 하다. 출퇴근·등하교 시간이면 동그라미들이 거리를 지배한다. 자전거 교통분담률이 전국 최고인 21%에, 가구당 평균 2.7대의 자전거를 보유한 도시다. 그러나 옛 도심은 자전거를 타기보다 걸어서 둘러봐야 제 느낌이 온다. 상주란 지명은 신라 때부터 등장한다. 고려 때 전국 8목의 하나로 상주목이 설치된 이래 조선 땐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할 정도로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일제 강점기 때 구획정리를 하면서 상주성과 4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청(남성 청사)에서 걷기 시작해 중앙시장·왕산·향청 등 옛 도심의 일부 선인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중앙시장 낡은 천장 뚫고 나무 전봇대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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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왕산 자락 복룡동 석불좌상(보물 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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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청은 본청인 남성청사와 별관인 무양청사로 나뉘어 있다. 일제 때 농잠(양잠)학교 자리였다는 남성청사에 차를 대고, 웃고 재잘거리는 소리 가득한 중앙여중 옆길을 걸어 자전거 대리점 골목으로 걷는다. 자전거 도시답게 자전거 대리점 10여곳이 도심에 몰려 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 쉼터인 보성다방과 “저짝(중앙시장 쪽)서 10여년, 이짝서 20여년째 막걸리를 팔아온다”는 시장대포집, 주점 딸어라마셔라 앞을 지나 곶감거리①로 들어간다. 11~2월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는 상주 곶감 거래의 본거지다. “여뿐 아이고 큰길 주변까지 고마 곶감 난전이 쫙 깔린다”고 한다. 네거리 건너 70년 됐다는 해장국집 남천식당②에 들른다. “왜정 때 시어머니가 밥집을 시작해” 1977년 며느리 이계순(69)씨가 이어받았다. 식탁 하나 없이 “바 맨쿠로 주방을 둘러싼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 열두개가 식당 시설 전부인데, 아침이면 장꾼·술꾼·공무원들이 줄을 선다. 달걀이 들어가는 시래기해장국을 먹기 위해서다(2천원·새벽 4시~오후 5시 영업).
큰길 건너 중앙시장 철물점 골목으로 들어간다. 무쇠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솥전③을 만난다. 대형 가마솥에서부터 냄비만한 아기솥까지 시커먼 솥들이 골목을 점령하고 있다. 20여년 전엔 4곳의 솥전이 있었으나, 한 집만 명맥을 이어오다 지난해 한 집이 새로 생겼다. 가장 큰 가마솥 40만원. 시장 골목은 현대식 지붕 시설이 돼 있으나, 한 골목에 낡은 목재로 된 60~70년대식 옛 덮개④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간판들도 낡았다. “간판 띠고 싶어도 못 띠. 천장 내리앉을까베.”(화령상회 주인) 이곳엔 오래된 나무전봇대⑤가 하나 남아 있어 흥미를 끈다. 덮개지붕의 기둥 중 하나로 쓰인다.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상주서 이래 낡은 시장골목은 여기 하나뿐이고, 옛날 전봇대도 이기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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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경력의 팔순 이발사 김성희 어르신이 옛 사진들과 표창장 등을 모아 만든 ‘흘러간 추억’ 앨범을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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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상회 앞에서 왼쪽으로 걸어, 네거리에서 6·25 직후에 지었다는 제일약국(옛 완설당 금방) 건물과 상주철물점 건물을 본다. 일제 때 건물을 닮았다. 여기서 삼강당약국에 이르는 골목길은 20년 전까지 가장 붐볐던 시장 중심거리였다고 한다. 뿌시시공주 옷가게 지나 우회전하면 명성극장 자리다. 왕산 옆 상주극장(20년 전 문 닫음)과 함께 상주의 2대 극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이 극장은 지난해까지 버티다 문 닫고 명성다방으로 남았다. 큰길로 나와 옛 상주우체국⑥ 건물을 구경한다. 외부 장식이 독특한 일제 때의 3층 건물인데 이동통신업체가 1층을 쓰고 있다. 길 건너 옛 버스터미널 자리였던 국제서림 건물 골목으로 들어가 도심 속의 쉼터 왕산 앞에 선다.
왕산(王山·해발 100m)은 도심 한복판에 솟은 상주의 진산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이 산 주변에서 장원급제자 68명이 나와 장원봉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19세기 말까지 산 앞에 상주 관아가 있었다. 옛 상주목성도를 보면 왕산 주변으로 관아 건물이 들어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산은 상처투성이 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 점령으로 훼손된 데 이어 일제 땐 산봉우리를 깎아내고 쇠말뚝을 박는가 하면, 이름마저 앙산(央山)으로 바꾸고 신사를 설치하는 등 훼손을 거듭했다. 50여년 전엔 산 주변이 개인들에게 넘어가면서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진 뒤 방치돼 지금은 작은 언덕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왕산 자락에 즐비한 거대한 느티나무·팽나무들과 14개의 크고 작은 관찰사·목사 선정비, 애민비⑦들이 이곳이 옛 상주목의 중심지였음을 더듬게 해준다. 가장 큰 비가 ‘목사이후청간애민비’인데, 길게 목을 빼고 웃는 듯한 받침돌 거북의 표정이 해학적이다. 보호수 팻말이 있는 400년 된 팽나무 옆 계단을 오르면 ‘복룡동 석불좌상’ ⑧(보물)을 만나게 된다. 머리와 양 어깨, 앞쪽의 손과 양 무릎이 모두 칼로 자른 듯 떨어져 나간 모습이다. 고려 초기 작품이다. 정상 평지의 한쪽엔 뿌리를 드러낸 느티나무와 화재 감시 망루를 세웠던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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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옆 벽화 장식 소공원을 자전거로 지나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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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1905년) 체결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쓰는 등 항일 지사였다가 만년에 친일로 돌아선, 상주 출신 언론인 위암 장지연(1864~1921) 기념비⑨를 보고 내려온다. 짙푸른 나무 그늘 밑 정자 백우정에선 어르신들의 심심풀이 화투가 한창이다. 백우정 앞을 지나 시계방향으로 왕산을 한바퀴 돌아볼 수 있다. 옛 상주극장(지금은 나이트클럽) 앞길을 걷는다. 작은 옷가게·술집들 지나 소줏집 몰린 ‘소주 골목’을 거쳐, 주전자막걸리집 2층 커피가게에 들러 찬 주스 한잔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힌다.
조계종 포교당인 상락사 앞을 지나 옛 조향주조 터의 낡은 창고건물을 보고 향청(향사당·풍헌당)⑩으로 간다. 지역 인사들이 지역발전을 꾀하면서 지방행정 보조 구실도 담당했던 곳이다. 일제 때 군청 건물로 사용한 이래 지난 95년까지 상주군수 관사로 쓰였다. 상주 도심에 남은 유일한 조선시대 건물이다. 널찍한 옛 상주주조 터엔 일본식 가옥⑪과 굴뚝 등이 거의 방치돼 있는 모습이다. 담쟁이덩굴 덮인 일본식 집을 보고 사진을 찍자, 골목 안 양장수선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여도 저도 쌔고 쌔발려삐린 게 왜식집들이구만. 먼 사진을 그래 찍노.” 옛 도심 구석구석엔 낡고 무너져가는 일본식 집들이 꽤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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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발관 김성희(81)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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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경력 65년에, 한자리에서 44년간 주민 머리를 매만져왔다는 신성이발관⑫ 김성희(81) 어르신(사진)을 만난다. 구식 의자 두개가 전부인 이발관이다. 이 어르신이 평생 머리 깎으며 터득한 기술을 들려줬다. “자, 머리가 똥그란 사람은 옆머리를 팍 쳐주고, 길쭉한 사람은 도톰하게 남겨줘야 해. 그래야 욕 안 먹어. 뒷머리는 어찌 생겼든지 죄 살려 주고. 그래봤자 인전 손님두 없지만.”
팔순의 이발사 바리캉 들고 반기는 신성이발관
자연산 버섯만을 쓴다는 산버섯식당과 서울방앗간 지나 네거리 모퉁이에서 동문 터 표석⑬(수목이발관 앞)을 만난다. 상주성 동문인 돈원문이 있던 곳이다. 상주성과 네개의 문루는 일제 때 모두 헐렸다. 성돌은 북천 제방 쌓는 데 썼다고 한다. 길 건너 원일공업사 옆 철길 골목으로 들어간다. 경북선 철길 담벽 따라 이어진, 담장도 지붕도 대문도 나직한 골목이다. 빈집이 수두룩한데 개들은 골목이 떠나가라 하고 짖어댄다. 어르신들 즐겁게 화투 치고 장기 두는 성동경로당 앞길로 나와, 피아노학원에서 흘러나오는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랏” 노래 들으며 다시 철길 골목으로 걷는다. 철길 쪽 벽을 따라 굴다리에 이르면 악취 진동하는 쓰레기장 옆으로 소공원이 나타난다. 낡은 집들을 철거하고 만든 공원이다. 산책로⑭를 따라 이어진 낡은 주택가 벽은 철거한 담벽 흔적이 뚜렷한데, 벽들이 멋진 벽화로 장식돼 있어 거닐며 구경할 만하다.
신흥철공소 앞으로 나오면 상주역 거쳐 특별한 볼거리 없이 출발점인 시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도심 속에 살아남은 제재소(상주임업사)를 만난다. 40여년간 이곳에서 나무 켜는 일을 해왔다는 주인은 “10년 전까지 상주 도심에 제재소가 다섯군데였는데 이제 하나만 남았다”고 말했다. 시청 앞으로 걷는 길. 하교시간이 되자,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는 학생들 자전거가 줄줄이 쏟아져나와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4.5㎞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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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워킹맵 27. 상주 옛도심과 왕산.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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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쪽지
동사무소서 무료 자전거 대여
⊙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상주나들목에서 나가 3번 국도 따라 상주시내로 간다.
⊙ 먹을 곳 | 산버섯식당(054-531-9225) 싸리버섯전골·산능이무침 등, 까치복집(054-533-6010) 복어탕, 남천식당(054-535-6296) 시래기해장국.
⊙ 도심 주변 볼거리 | 상주박물관·자전거박물관·경천대·상주향교·복룡동당간지주 등. 시청(남성청사), 자전거박물관, 각 동사무소에 무료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신분증을 맡기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여행 문의 | 상주시청 (054)533-2001, 상주문화원 (054)535-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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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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