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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뒤쪽 큰 건물이 팔달문이고, 앞쪽은 문을 지키기 위해 쌓은 옹성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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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 워킹맵 17. 수원 화성 안 옛도심
수원 화성 남문 팔달문에서 영동시장·화홍문 거쳐 팔달문으로 5㎞
18세기 동양을 대표하는 성곽이자, 조선 전통건축의 완성품으로 꼽히는 수원 화성(華城).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긴 뒤 2년9개월(1794년 1월~1796년 9월)에 걸쳐 완성한 새도시다. 정약용·채제공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축성에 참여했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래 수많은 탐방객이 화성 성곽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성곽길에서 만나는 굽이치는 성벽과 좌우로 트인 전망이 압권이다. 성안 골목길에선 무르녹은 사람살이의 흔적들이 기다린다. 화성 남문 팔달문①에서 시작해 영동시장②·화홍문·화성행궁 거쳐 다시 팔달문으로 돌아온다.
수원 명물 양념갈비의 원조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답게 팔달문은 어느 쪽에서 바라보아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2층 문루 지붕에도, 문 밖에 둘러쌓은 옹성에도 흰 눈이 덮여 자태가 한결 도드라진다. 팔달문 주변은 1980년대까지 수원의 중심 번화가였다. 조용필 등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대부분 팔달문 위에서 열렸다고 한다.
거리엔 약국이 즐비하다. 약국이 몰려 ‘박리다매’ 경쟁을 벌이면서 한때 “전국에서 약값이 가장 싼 곳”으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차량이 즐비한 ‘차량 없는 거리’ 거쳐 영동시장으로 들어선다. 1919년 개설돼, 수원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컸다는 시장이지만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팔달문 밖에 있어 문밖장이라 하던 시장이다. 3대째 수원양념갈비집으로 유명했던 화춘옥도 이곳에 있었다. 시장의 명맥은 한복·이불집 수십곳이 남아 이어간다. 70년째 대를 이어 한복집을 열고 있는 수원주단의 구형서씨가 언성을 높였다. “죽어가는 시장 살려달랬더니, 대책도 없이 복개천 주차장을 뜯어내 손님이 더욱 줄게 됐어요.” 수원천 복개 주차장에선 최근 하천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물길 건너 지동시장③ 순대타운④으로 들어간다. 순대·머릿고기·곱창을 파는 식당 25곳이 모인 널찍한 실내공간이다. 뜨거운 순댓국 뚝배기 옆에 소주잔을 곁들인 이들이 많다. 자매집도 고향집도, 엄마네도 원조엄마네도 순댓국 5000원, 소곱창 1만원 균일가다.
수원천 물길을 따라 걷는다. 성곽이 끊긴 지점, 수원천 물길에 성의 남쪽 수문(남수문)이 있었다. 1922년 대홍수 때 쓸려내려가 버렸다. 수원천 물길은 90년대 중반 시에서 전면적인 복개공사를 추진했으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살아남았다. 화성연구회 사무처장 염상균(51)씨는 “시민들이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반대해 하천 복개공사를 막았다”고 말했다.
흘러간 노래 테이프를 파는 손수레에서 흘러나오는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 ”를 들으며 남수교 건너, 종각⑤ 쪽으로 이어진 골목길을 걷는다. 한때 이른바 룸살롱이 밀집했던 유흥가였으나, 거의 사라지고 통닭집들이 생겨나 술꾼을 불러모으는 거리다. 연극·미술 등 예술단체들이 수원 문화의 도약을 꿈꾸며 세 들어 있는 ‘수원문화사랑’과 만두로 이름난 중국집 ‘수원’을 지나 종각인 여민각으로 간다. 종각은 화성을 한양과 같은 도성체제로 격상하기 위해 화성행궁 앞 네거리에 건립했던 것이다. 일제 때 소실됐던 것을 2008년에 새로 짓고 종도 새로 만들었다. 원래 있던 종은 1911년, 정오 시보용으로 쓰기 위해 팔달문에 걸어 ‘팔달문 동종’으로 일컬어진다. 2008년 수원역사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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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창호에 대해 설명하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소목장(창호) 김순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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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화성박물관⑥으로 간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축성 과정과 문화적 가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축성 전모가 담겨 있는 <화성성역의궤>, 사도세자가 내린 명령서, 축성을 지휘한 채제공의 초상 등을 만난다. 야외전시장에선 성돌을 들어올리는 데 썼던 거중기와 녹로의 모형, 선정비 무리를 볼 수 있다. 입장료 2000원.
다리(매향교) 건너 불교 진각종 옆길로 들면 경기도 무형문화재인 김순기(70) 소목장(창호)의 작업실과 전시관⑦이 있다. 14살 때부터 줄곧 창호 작업을 해온 장인이다. 아름다운 전통 꽃무늬 창호를 감상할 수 있다. 김씨가 작업실 벽에 걸린 대패 등 연장들을 가리켰다. “저 대패들이 우리 집 가보여. 누가 한번 연장이 몇개냐 그래서 셔봤더니, 한 400개는 되더라구.” “딱 한잔만 하자”는 그와 기사식당 고향집에서 막걸리 잔술을 들며 그의 손을 보았다. 상처 없는 곳이 없는, 몇 손가락은 잘려 뭉툭해진 손. 외길을 달려온 삶의 흔적이다.
고향식당과 묵은지찜으로 이름난 골목집 사잇길 안에, 젊은 지역 예술가들의 전시공간 ‘눈 갤러리’가 있다. 2월 말까지 휴관한다는 팻말을 내걸었다. 발길을 돌려 일곱개의 무지개형 수문이 아름다운 화홍문⑧(북수문)으로 간다. 눈 덮인 화홍문과 뒤쪽으로 보이는 방화수류정⑨ 자태가 그림 같다. 화홍문은 지폐 도안에 등장한 국내 최초의 문화재다. 1909년 한국은행에서 화홍문 도안을 넣은 1원짜리 지폐를 발행했다.
성곽을 따라 장안문⑪ 쪽으로 걷는다. 성곽 안 북수동엔 대규모 우시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크게 번성하다 성 밖 영화동으로 옮겨가 60년대까지 소를 거래하며 수원양념갈비가 명성을 얻게 된 밑바탕을 이뤘다. 장안문 옆 성곽의 치성(북동치)과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문 좌우 성곽에 설치했던 적대(북동적대)를 보고 장안문 옆구리로 들어간다.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파괴됐던 것을 1970년대 복원했다.
화성행궁을 향해 걷는다. 행궁 전에 화령전⑬부터 만난다. 화령전은 1801년 순조가 정조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화령전 담 옆엔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나혜석(1896~1948) 생가 터⑫ 표지석이 있다. 그를 기리는 ‘나혜석 거리’가 팔달구 인계동에 조성돼 있다. 화령전 옆 신풍초등학교는 1896년 개교한,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다. 개교 전엔 화성 관아의 객사(우화관)가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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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박물관 앞에 모아놓은 선정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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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전통
행궁으로 드는 정문 신풍루 앞 좌우엔 거대한 느티나무가 마주 서 길손을 맞는다. 화성행궁⑭은 정조가 내려와 임시로 거처하던 별궁이다. 총 44동 576칸 규모의 행궁으로, 정조는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열었다. 일제강점기 대부분 철거되고 과거시험을 치렀던 낙남헌만이 남았으나, 최근 대대적인 복원공사로 본디 모습을 찾았다. 애초 행궁 터엔 경기도립 수원병원 고층빌딩이 들어설 계획이었다고 한다. 지역민들의 거센 반대로 병원은 정자동으로 옮겨가고 대대적인 행궁 터 발굴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게 됐다.
전신주를 뽑아내고 가게 간판들에 전통 그림을 그려 새로 내건 ‘레지던스 길’을 지나 큰길로 나서자 다시 팔달문의 멋진 자태가 다가온다. 길 건너 공예품 상설전시장인 가빈 갤러리
(대표 조성진·화성연구회 이사)에 들어가 언 몸을 녹였다. 갤러리 2층에선 1월16일부터 2월3일까지 성안 홀몸 어르신들을 돕는 자선바자회가 열린다. 여기까지 약 5㎞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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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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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쪽지
⊙ 손수운전 | 경부고속도로 수원나들목이나 영동고속도로 북수원나들목, 동수원나들목에서 나가 수원으로 간다. 서울에서 1번 국도 타고 의왕 거쳐 가도 된다. 팔달문 부근에 팔달주차타워 등 주차장이 있다.
⊙ 대중교통 | 강남역사거리에서 10분 간격(3000, 3001, 3009번 버스), 잠실역에서 20분 간격(1007-1, 1007번), 사당역에서 10분 간격(7000, 7770번) 버스 운행. 전철 1호선 10분 간격 운행.
⊙ 여행정보 | 수원관광안내소 (031)228-4672, 수원화성연구회 (031)226-7223, 수원화성박물관 (031)228-4205. 골목집(묵은지찌개·생선조림·홍어회) (031)245-9158, 연포갈비 (031)255-1337, 청산갈비찜 (031)243-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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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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