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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16 21:01 수정 : 2009.12.19 22:13

제주 남문사거리 모퉁이의 타일 담장. 이도1동 주민 1300여명이 각자 꿈과 소망을 그림 그리고 글로 적은 타일을 모아 벽화로 장식했다.

[매거진 esc] esc 워킹맵 16. 제주읍성터 올레와 산지천
제주목 관아에서 제주성터·산지천 물길 지나 복신미륵상까지 3.5㎞

유명 관광지 위주의 제주도 여행에선 놓치는 게 많다. 제주도 문화유적이 그런 것들이다. 제주시 옛 도심 골목에도 관광지 개발의 와중에 살아남은 제주 특유의 볼거리들이 숨어 있다. 시내 올레(집에서 거리에 이르는 골목길) 탐방이다. 제주목 관아에서 출발해 제주성터와 산지천 물길 따라, 온화한 웃음으로 반기는 복신미륵상까지 걷는다.

제주관아 앞 광장을 바라보며 선 커다란 누각이 보물 322호 관덕정①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정자이자, 도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조선시대(세종) 건축물이다. 눈 부릅뜬 돌하르방 둘이 정자 앞 양쪽에 서서 나그네를 맞는다. 관덕정 앞마당은 과거시험장, 조정에 바칠 말과 귤을 점검하는 장소로도 이용됐다. 해마다 입춘 굿놀이가 벌어지고, 60년대 이후론 각종 집회나 선거유세가 열리는 곳이다.

제주목관아 앞 관덕정(보물 322호) 안에선 ‘호남제일정’ 등 편액과 벽화들을 볼 수 있다.

세월은 물 같고, 늙기는 바람 같구나

제주목 방어사의 기를 내걸던 깃대받침기둥(기간 지주)과 하마비를 보고 제주목 관아 안으로 들어선다(입장료 1500원). 관아의 건물들은 발굴조사를 거쳐 최근 복원한 것이다. 관아 회랑 한쪽에 마련된 <탐라순력도>(보물 652-6호·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의 관내 순시 모습을 그린 41폭 채색 화첩) 복사본을 통해 옛 관아 모습과 각 지역의 풍광들을 살펴볼 수 있다.

관아 안의 선정비·불망비②들은 주로 조선 말기 재임한 제주목사들을 기린 것이다. 김익수(72) 제주도 문화재위원은 “제주도의 비석들은 쉽게 마모되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조선 중기 이전 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흥선대원군의 형인 이최응을 기려 세운 영세불망비도 있다. 고종 때 제주목사 백낙연이 당시 영의정에 오른 민비파 실권자 이최응의 환심을 사고자 세운 것이다. 복권된 대원군에 의해 이최응이 피살되면서 백낙연은 다른 벼슬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관아를 나와 우체국 옆 270년 된 녹나무와 성주청(통일신라~고려 때 탐라국의 관청) 터 표석을 보고 지하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선다. 남문에서 관아로 이어지던 옛 큰길인 한짓골(한질골)이다. 80년대까지 문화예술인들이 북적이던 골목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 김오순(43) 연구사가 이산저산식당 2층을 가리켰다. “옛날 소라다방·사회과학전문 서점 자리인데, 전시회·공연이 자주 열리던 곳입니다.”

보리빵삼형제집의 쑥빵·찐빵·보리빵.


제주 최초의 천주교회 터를 지나 조선시대 판관의 집무실, 이아가 있었던 이아골로 들어선다. 옛 제주대병원 옆 좁은 골목길로 드니 돌담 안쪽에 초가집③ 한채가 보인다. 도심 한복판의 초가집이다. 김오순씨가 닳고닳은 대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다. “이거보우다예. 삼춘(이웃이나 친지, 어르신을 부르는 호칭), 잠깐 들어가게마씸.” 안순생(87) 할머니와 친정에 다니러 온 딸 박순(54)씨가 문을 열어준다. 6대째 살고 있다는 초가다. 볏짚이 아닌 새(벼과에 속하는 억새의 일종)를 엮어 이엉을 얹었다. “삥이(새)가 귀해 지난해엔 못 올렸수다.” 2년에 한번 이엉을 얹는데 지난해엔 새가 없어 못 했고, 이달 20~25일에 얹기로 날을 잡아놨다고 한다.

제주성 남문터 표석을 보고 남문사거리로 간다. 사거리 모퉁이 주차장 담④이 눈길을 잡아끈다. 2008년 여름 이도1동 주민 1300여명이 글과 그림으로 각자의 꿈·소망을 담은 작은 타일을 모아 벽에 붙이고 ‘아름다운 남문골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빠의 금연 결심에서부터 20대의 사랑 고백, 의사가 되고 싶다는 초등생의 소망까지 하나하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제주성터를 향해 걷는다. 제주읍성은 고려 말·조선 초 사이에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세운 성곽이다. 명종 때(1565년) 성을 넓혀 둘레 약 3㎞에 이르는 성곽을 완성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곽의 대부분과 동·서·남문, 산지천 물길 위의 홍예문 두개가 철거되고 지금은 산지천 옆 치성⑤ 등 일부만 남았다. 헐어낸 성돌은 산지천 하류 포구 매립공사에 썼다고 한다. 성지로 길옆에 170m 길이의 성곽과 치성을 복원해 놓았다.

제주성터 밑 오현단 조두석. 송시열 등 제주에 유배되거나 부임해 지역 발전에 기여한 다섯 분을 모시고 제를 올린다.

오현단⑥으로 들어선다. 성벽 밑 울창한 숲 속에 자리한 오현단은 조선 중기 제주에 유배되거나 관리로 부임해 지역 발전에 공헌한 김정·송인수·김상헌·정온·송시열 등 다섯분을 모신 곳이다. 김정과 송시열의 적려유허비가 있고, 무너져가는 바위벽엔 우암 송시열의 좌우명이던 ‘증주벽립’(曾朱壁立, 증자·주자처럼 소신 있게 살겠다는 뜻)을 후대에 새긴 각자가 있다.

“세월이 가기는 흐르는 물 같고, 사람이 늙기는 바람결 같구나….” 성벽 밑 향로당(경로당) 앞에 앉은 어르신의 나직한 ‘청춘가’ 한 자락을 들으며 오현단을 나와 길을 건넌다. 동문시장 쪽으로 이어진 길 담장에 전시한, 제주시내의 옛 모습 사진들이 볼만하다. 담장 너머 석축 밑엔 ‘가라쿳물’(가락천 끝의 샘·가락샘) 표석이 있다. 물맛이 좋아 시내 전역에서 물을 받으러 오는 인파로 붐볐다고 한다. 민가들이 들어서며 샘은 묻히고 표석만 남았다.

동문시장 일대는 조선시대 이래 여러 교육기관들이 명멸해간 곳이다. 제주 최초 중등교육기관인 의신학교(1907년) 터, 생원·진사 등이 모여 공부하던 사마재(1879년) 터, 향교 창건 터 등을 알리는 표석들이 길모퉁이마다 숨어 있다. 15년째 삼형제가 보리빵·쑥빵·찐빵을 쪄온 보리빵삼형제집에 들러 보리빵(1000원에 4개)을 사들고, 12년 됐다는 꿩고기메밀국수 전문 골목식당을 거쳐 웃생지골(윗향교골)을 돌아 동문로 큰길로 나선다.

동문로터리에 이르면 산지천 물길이 나타나고 동문시장 일부가 복개천 위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산지천 물길은 60년대에 모두 복개됐으나, 2002년 다시 뜯어내 옛 모습을 되찾았다. 물고기들 노는 모습이 들여다보이는 산지천 물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광제교 옆 물가의 바위(경천암) 위에 조천석⑦이라 불리는 신앙석이 서 있다. 홍수 피해가 없도록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북성교 밑과 산지교 밑에선 산짓물·노리물(나릿물) 등 옛 빨래터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비행기 이륙 보며 미소 짓는 미륵상

복신미륵(제주 민속자료 1호)

용진교 건너편엔 중국 피난선⑧ 모형이 있다. 중국 랴오닝성을 떠나 떠돌다 1950년 8월 산지포구에 도착해 몇년간 정박해 있던 난민선 해상호를 본떠 만든 배다. 제주도의 전통 배 테우, 조운선 등도 전시했다. 용진교 주변엔 항만공사용 석재를 운반했던 궤도차 터 표석, 탐라국 개국설화와 관련된 건입포(건들개) 터 표석이 있다. 기린모텔 골목으로 들어가 김만덕 객주터 표석을 만난다. 빼어난 미모의 관기였던 김만덕(1739~1812)은 이곳에 객줏집을 차려 재산을 모은 뒤, 흉년이 들어 도민이 굶주리자 전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곡식을 사서 나눠주었다.

구덕 짜던 집터 표석을 보고 언덕길을 오르자 복신미륵(제주 민속자료 1호·사진)⑨의 온화한 미소가 기다린다. 높이 3m가 넘는 커다란 고려시대(추정) 미륵이다. 주민들이 동자복·자복신·큰어른 등으로 이르며 풍어와 안전, 복을 빌어온 신앙석이다(읍성 서문 밖엔 서자복이 있다).

미륵이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곳을 돌아보니 제주항 바다 위로, 공항을 막 이륙한 비행기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사라봉까지 걸으려던 계획을 빗속에서 접었다. 관아에서 복신미륵까지 3.5㎞.

esc 워킹맵 16. 제주읍성터 올레와 산지천.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킹 쪽지

⊙ 제주공항에서 제주목관아까지 차로 10분 이내 거리. 제주목관아 뒤쪽 북초등학교 옆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관아엔 무료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한다. 신청하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제주 옛 도심 탐방의 또다른 방법으로, 옛 제주읍성 터를 따라 한바퀴 돌거나, 제주목관아로 들던 옛 포구인 화북 일대를 둘러봐도 좋다. 탐방 전에 사라봉 밑 국립제주박물관을 찾으면 탐방길이 한결 풍요로워진다. 제주 역사와 문화유산들을 단번에 훑어볼 수 있다.

⊙ 탐방길 주변 먹을 만한 곳으로 동문시장 골목 안의, 메밀을 두껍게 반죽해 굵직한 국수를 썰어내는 제주식 꿩고기메밀칼국수 전문 골목식당(064-757-4890), 50년째 찹쌀순대를 내는 광명식당(064-757-1872), 옛 제주대병원 입구의 35년 된 해장국집 미풍해장국(064-758-7522), 일도1동 광양로터리 흥국생명 뒷길의 한방웰빙 음식점 참살이제마네(064-721-0880) 등이 있다.

⊙ 제주문화예술재단 (064)748-9817, 제주문화원 (064)722-0203, 제주공항 제주종합관광안내소 (064)742-6051.

제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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