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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7 21:18 수정 : 2009.06.17 21:22

일제 때 만들어진 뜬다리부두(부잔교)가 있는 군산 내항 모습.

[매거진 esc] esc 워킹맵 8. 군산 근대문화유산 골목 한바퀴
근대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내항 뜬다리에서 영화동 지나 백년광장까지 6㎞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의 창고다. 인천·목포과 함께 근대 옛도심의 사람살이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도시다. 금강 하구다. 조선 3대 시장의 하나였던 강경으로 드나드는 길목이자 서해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군산항은 1899년 개항했다. 이곳을 통해 일제는 전북 곡창지대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날랐다. 월명동·영화동·내항 주변, 개정면·대야면 일대에 일제 수탈의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 있다. 일본 냄새 물씬한 옛도심 골목 순환코스를 걷는다.

일제 강점기에는 인구 반이 일본인

영화시장은 10여년 전까지도 인파로 붐비던 곳이다. 썰렁해진 시장골목에 앉아 콩을 다루시는 어르신들.
내항 뜬다리부두(부잔교) 옆 관광안내소①에서 출발한다. 관광안내지도를 챙긴 뒤 먼저 내항을 둘러본다. 내항은 옛 군산진이 있던 곳으로, 군산산업단지 쪽 외항과 구별된다. 일제가 기름진 전북평야에서 난 쌀을 이곳으로 모아 반출하던 물류기지였다. 그 흔적들이 내항 주변에 가로 뻗고 모로 뻗은 철로와 물이 빠질 때도 배를 댈 수 있게 한 뜬다리부두②다. 관광안내소 옆엔 군함과 전투기를 전시한 해양테마공원도 있다.

1999년 만든 개항 100돌 기념 백년광장③으로 간다. 해망로 내항사거리 옆이다. 광장에 세워진 12개의 돌기둥이 다소 생뚱맞다. 광장 옆엔 낡고 우중충한 대형 건물이 곧 무너져내릴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1923년 지은 조선은행 건물④(등록문화재)이다. 당시 군산 최대 건물이었다지만, 지금은 뼈대만 남은 텅 빈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서 있다. 유흥업소 낡은 간판들이 어지러운, 뚫어진 외벽을 통해 80여년 영욕의 세월이 다 들여다보인다. 복원공사중이다.

해망로는 일제 때 상업 중심거리인 이른바 본정통이다. 관청·은행·상점이 즐비했다. 해망로 길 건너 동령고개로 오른다. 고개 들머리 오른쪽에 57년 됐다는 중국집 빈해원⑤이 있다. 식당 내부가 트인 2층 구조의 중국식 건물이다. 동령고갯길은 일제 때 화교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고개 넘어 영동사거리에서 패션가인 영동거리로 든다. 단층건물이 이어진 골목이지만, 없는 브랜드가 없는 옛도심 패션1번지다.

문 닫은 국도극장 앞을 지난다. 일제 때부터 희소관이란 극장이 있던 곳이다. 극장 앞 오른쪽 골목은 ‘예술의 거리’⑥가 조성되고 있다. 아직은 썰렁하지만, 길이 150m가량의 골목 곳곳에 현재 화가 7명, 문인 2명과 음악가·사진가·디자이너 들이 화실·찻집·작업실 등을 마련해 들어와 있다. 2002년 1월 이른바 성매매업소 화재로 13명이 목숨을 잃은 개복동 골목이다. ‘개복동 예술의 거리 조성위원회’ 이상훈(39) 위원장은 “조금씩 문화예술 거리로 변화할 낌새가 보인다”며 “8월부터 화재사건과 연계한 추모 이미지작업·전시회 등 ‘꽃순이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콩나물고개 골목 담벽에 붙은 주소 표지.

골목을 나와 콩나물고개⑦로 오른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 중 한 곳이다. 재산 다 팔아먹고 창성동 고개 위(둔배미)의 초가집으로 이사한 정 주사가 오르내리던 길이다. 콩나물고개란 이름은 옛날 주변 주민들이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내다 팔았던 데서 나왔다고 한다. 고개 중간에 주공아파트 단지 옆길로 오르면 선양고가교에 이른다. 일제 때 산줄기를 끊어 삼학동~명산동을 잇는 길을 냈다. 이른바 ‘산 끊어진 데’라는 곳이다. 끊어진 부분에 고가다리를 놓아 다시 이었다. 다리 위에 <탁류>의 무대임을 알리는 빗돌⑧이 있다.

일본식 절 동국사 안의 종각과 석물들.

114계단을 내려와 명산동 사거리 지나 왼쪽 첫 골목으로 들어가면 일본식 절 동국사⑨(옛 금강사·등록문화재)가 있다. 1909년 일인들이 세운 절이다. 경내 정원도 종각도 석물들도 일본식이다. 군산시청 학예연구사 김중규(43)씨는 “1910년대 군산 주민의 절반 이상이 일본인(8000여명)이었다”며 “이들이 세운 6개의 절 중 동국사만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법당 안에 모신 불상은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광복 뒤 금산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다시 큰길 왼쪽으로 오르면 지금은 식당이 된, 1930년대 군산부윤 관사⑩를 만난다. 당시 시장 관사였던 이 건물은 최근 식당으로 꾸미면서 안팎을 개조해 겉모습만 당시 형태로 남게 됐다. 군산여고 옆 골목 안의 히로쓰 가옥⑪(등록문화재·한국제분 관사)은 안팎이 옛모습을 갖추고 있다. 주변 골목은 일제 때 부호들이 살던 주택가였다고 한다. 당시 포목상 히로쓰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식 가옥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다. 여기서부터 골목을 돌 때마다 담장과 정원·목조가옥 등 옛모습을 간직한 일본식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가 뚫은 해망굴.

월명산 자락 해망굴로 발길을 옮긴다. 군산서초등학교 지나면 흥천사 옆으로 뚫린 해망굴⑫(등록문화재)이 나온다. 1926년 일제가 중앙로와 해망동을 잇기 위해 뚫은 높이 4.5m, 길이 131m의 굴이다. 굴을 통과해 해망동 쪽 거리에 나서자 낡은 간판을 단 몇몇 가게가 60~70년대 거리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영자미장원도 숙머리방도 굴다방도 문이 닫혔다. 해망굴 입구에서 흥천사 옆길로 오르면 서해안과 금강 하구, 강 건너 장항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시탑⑬에 이른다. ‘군산을 지킨다’는 뜻을 담아 1968년 세운 탑이다.

해망굴에서 내려와 구영3길로 들어 영화동 시장으로 간다. 80년대까지 영화를 누리던 상설시장이다. 인근 미군부대 군인들도 이곳 술집들에 와서 들끓었다. 일인에 이어 미군들이 몰려와 북적이던 이 지역은 이제 시청·법원·검찰청도 신시가지로 옮겨가고 아메리카타운도 옮겨가 썰렁해졌다. 시장 어귀에서 50년 동안 가게를 지켜온 대우상회 주인 고창훈(77)씨가 말했다. “인제 다 망했지 뭐. 여긴 노인들만 사니께. 대책두 지원두 없구, 죽어라 죽어라 해요.”

장미동의 옛 군산세관.

해망로로 다시 나선다. 길 건너면 옛모습을 간직한 반듯한 벽돌집 군산세관⑭(등록문화재)이 보인다. 1908년 대한제국이 지은 서양식 단층건물이다. 지금은 내항과 세금 관련 사진과 자료를 전시한 호남관세전시관으로 쓰인다. 세관 뒤쪽엔 수덕산이 있었고 수덕산엔 군산진성(토성)이 있었다. 일제가 내항을 건설할 때 수덕산 자락을 깎아 바다를 메웠다고 한다.

근대산업유산 테마단지 조성중

나가사키18은행 건물⑮은 1907년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일제 때 자본 수탈에 앞장섰던 이 은행 건물은 최근까지 대한통운 건물로 쓰이다 한때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등록문화재로 인정되며 말끔히 새단장을 했다. 군산시에선 군산세관 주변부터 조선은행에 이르는 장미동 일대 땅과 건물을 사들여 근대산업유산 테마단지를 조성중이다. 박물관도 만들고 기존 건물을 복원해 문화예술인 창작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장미동이란 이름은 꽃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일제가 이곳에 쌀을 쌓아뒀던 데서 나온 장미동(藏米洞)이다.

여기서 한 골목 더 가면 출발했던 백년광장이다. 12개 기둥을 다시 보니 일본식도 아닌 것이 한국식도 아닌 것이 더욱 생뚱맞아 보인다. 6㎞ 남짓 걸었다.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워킹 쪽지

서해안고속도로 군산나들목에서 나가면 곧 관광안내소를 만난다. 군산 관광안내도와 근대문화유산 탐방지도 등을 얻을 수 있다. 27번 국도 타고 시내로 들어가 표지판 따라 내항으로 간다. 내항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명산사거리에 콩나물국밥집 골목이 있다. 일해옥(063-443-0999) 등에 인파가 몰린다. 옛 조선은행 앞 중국집 빈해원(063-4452429)은 화교가 운영하는 57년 된 식당이다. 월명동 YMCA(옛 법원) 앞 찻집 마리안느(063-445-0519)는 직접 재어둔 재료로 매실차·오미자차·복분자차 등 시원한 차를 낸다. 군산시청 관광진흥과로 연락하면 매주 토·일요일 운행하는 무료 군산시티투어 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관광진흥과 (063)450-6110.

군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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