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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5 18:41 수정 : 2010.06.24 16:37

목포진(만호진)으로 오르는 길가의 석축. 일부는 옛 목포진 성벽의 돌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매거진 esc] esc 워킹맵 4. 목포 옛도심 근대문화유산 탐방
193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목포 옛도심 근대문화유산 즐기며 목포역까지 6㎞

목포는 신의주~부산을 잇는 1·2번 국도의 기점이다. 영산강을 통해 내륙 깊숙이 드나들던 뱃길의 길목이기도 하다. 목포란 이름은 중요 길목, 요충지 포구를 뜻한다. 일찍부터 왜구들이 자주 설쳐댄 곳이다. 목포 원도심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로 불린다. 호남선 철도 종착지이자 출발점인 목포역에서 걷기 시작했다.

목포역①(1914년 완공) 맞은편 골목은 젊음의 거리다. 주말 밤이면 골목마다 색색의 조명이 켜지고 쌍쌍의 발길이 이어진다. 오거리 쪽으로 걷는다. 일제 때 이곳은 일본인 거주지(유달동)와 한국인 거주지(북교동·죽교동)의 경계 지역이었다. 상권이 발달하면서 날선 대립과 공존이 교차하던 곳이다. 목포 주먹들이 세력화한 시초가 됐다고 알려진다.

esc 워킹맵 4. 목포 옛도심 근대문화유산 탐방.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80살 먹은 모자가게, 70살 넘은 정원

오거리를 건너 옛 일본인들의 거리로 접어든다. 왼쪽에 옛 극장 건물이 있다. 일제 때부터 목포극장(1926년 설립)과 함께 공연·영화 보급에 기여했던 평화극장②(당시 평화관·1927년 설립) 자리다. 최승희의 무용, 홍난파의 공연도 평화관에서 열렸다. 초원실버타운(초원호텔)은 일제 때 소방서 자리. 소방서 옆엔 경찰서가, 그 옆엔 목포우체국③(현 유달산우체국)이 있었다.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와 도로원표 표석 뒤로 보이는 붉은 벽돌 건물이 옛 일본영사관④이다. 일제 영사관에 앞서 먼저 만나는 건 소박한 얼굴의 조선시대 선정비 두 개(각각 1714년, 1763년 건립)다. 본디 만호진 터에 세워졌던 것으로, 일제가 영사관 뒤뜰에 묻은 것을 광복 뒤 발견해 현 위치에 세웠다.

옛 일본 영사관(사적289호)은 일제가 1900년에 지은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다.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건물이다. 광복 뒤 목포시청·시립도서관·목포문화원 등으로 쓰이다, 현재는 전시관 용도로 쓰기 위해 내부 공사 중이다. 일본영사관 건물 뒤 산 밑엔 일제가 40년대 초 미군 공습에 대비해 파놓은, 82m 길이의 방공호⑤가 있다.

내려와 200m쯤 가면 오른쪽 골목 안에 호남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일본식 정원⑥(1930년 조성)이 남아 있다. 광복 뒤 한 국회의원의 손을 거쳐 지금은 향토 기업인 이훈동(93)씨가 사들여 소유하고 있다. 정원을 보려면 옆의 성옥기념관⑦에서 허락을 얻어야 한다. 길 건너 오른쪽 유달초등학교 안엔 일제의 교육기관이던 심상학교의 강당⑧(1929)이 남아 있다. 현 유달초교엔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잡힌 한국호랑이의 박제가 보존돼 있다.


목포 근대역사관 네거리 모퉁이의 카페⑨(행복이 가득한 집)는 일본인이 살던 집과 정원 모습이 그대로 남은, 이른바 적산 가옥이다. 고전음악과 마키아토 한 잔에 6000원. 앞쪽 목포근대역사관⑩은 꼭 들러볼 만한 곳. 일제 수탈 기관의 대명사였던 옛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건물이다. 목포 근대사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이 담긴 사진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80여년간 대를 이어 모자만 팔아온 갑자옥모자점.

중앙성결교회를 끼고 비탈길(만호로)로 오르면 향토사학자들이 ‘목포 답사 1번지’라 부르는 목포진⑪(만호진) 터가 있다. 500여년 역사를 지닌 서남해안 방어기지다. 세종 때 목포진을 설치하고 연산군 때 돌성을 쌓아 왜구 침입에 대비했다. 둘레에 400m가량의 성벽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성벽 흔적은 사라지고, 목포진 터임을 알리는 빗돌과 안내판이 서 있을 뿐이다. 일제 때 혼마치(본정)로 불리던 옛 번화가로 내려선다. 갑자옥모자점⑫은 무려 85년째 한자리서 모자류만 팔고 있는 모자 전문점이다. 193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거리 중간엔 백반집들이 이어진다. 바지락맑은탕에 10여가지의 반찬이 나오는 6000원짜리 밥상이 괜찮다. 목포문화원⑬으로 새 단장을 한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1929년 건립)은 일제 때 호남인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순수 민족자본 은행이었다. 정문 머리 위 돌에 새겨진 ‘… 목포지점’(木浦支店)이란 한문 글자 가운데 ‘浦’ 자의 맨 위 1획이 빠져 있다. 이는 설립자인 현준호가 ‘목포지점이 번창하면 그때 찍겠다’(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면 찍겠다)며 일부러 뺐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거리 쪽엔 오래 묵은 ‘묵다방’이 있다. 54년간 여섯 번 주인이 바뀌며 한자리를 지킨 ‘옛날식 다방’이다. 목포 문화예술인과 유지들이 모여 전시회도 하고 세상사를 논하던 사랑방이다. 지난해 한때 폐업 위기를 겪었으나, 다방 문화를 되살리자는 운동이 일며 명맥을 잇고 있다. 커피 2000원(어르신은 1500원). 오거리에서 10시 방향 길로 들면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번져온다. 제철 생선회·구이와 흑산홍어로 이름난 식당 덕인집이 있다. 딱돔(금풍생이)구이·서대조림·은학상어회·강달이(황석어)조림 등을 먹을 수 있다.

양동교회는 목포 최초의 교회다.
일본식 절 동본원사⑭를 거쳐 옛 목포극장⑮ 옆으로 들면 패션·쇼핑의 중심가인 젊음의 거리다. 수문통 쪽으로 간다. 오래전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수문을 설치했던 곳을 가리킨다. 목포 청년운동의 산실이던 신안군청 옆 목포청년회관(16)(1929년 건립)과 군청 안의 옛 무안감리서 건물(17)을 보고 북교초등학교(18)로 향한다. 1897년 개교한 유서 깊은 교육기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수 이난영이 이 학교를 거쳤다. 양동교회(19)는 1897년 창립된 목포 최초의 교회다. 건물 창문 아치형 돌에 ‘대한융희사년’(大韓隆熙四年)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1910년 세운 건물이다.

유달파크맨션 뒤 이난영 생가 터(20)를 보고 내려오니 전당포 옆으로 ‘체 내립니다’ 간판을 내건 가정집이 보인다. 10여년 전까지도 양동 대성쌍샘길 일대엔 민간요법으로 식체·급체를 낫게 해주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곽순임(52) 목포역사길라잡이 대표가 말했다. “목포는 말입니다잉. 개발과 발전이 늦어분 게, 그게 덕이랑게요. 딴디서 온 분들이 보곤 으째 요런 것이 요대로 남았으까 하고 놀래부요.”

“개발이 늦어분 게 덕이랑게요”

100여년 역사를 지닌 정명학교(21)에도 옛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중학교 도서관으로 쓰는 건물 천장에선 1990년 ‘목포 4·8 만세운동’ 참가자와 투옥자·사망자 명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학교를 나와 왼쪽으로 10여분 걸으면 창평동 중앙공설시장에 이른다. 35년째 실과 단추, 지퍼만을 팔고 있다는 제일실집 주인 송수진(59)씨를 만났다. 그가 손때 묻은 주판을 매만지며 말했다. “장사 잘 안돼야. 그래도 실·단추 집은 목포서 딱 두 집뿐이랑게. 30년 전에도 두 집이고, 지금도 두 집뿐이여.”

발걸음도 느려지고 출출해질 시간. 중앙식료시장(22)(먹자골목)으로 들어섰다. 순대집·떡집·홍어가게 등이 이어진다. 간을 푸짐히 썰어주는 선지순대 한 접시가 5000원. 여기서 목포역까지 10분 거리다. 어느새 6㎞를 걸었다.

워킹 쪽지

◎ 서울 용산역에서 목포역까지 케이티엑스(KTX)가 새벽 5시2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하루 아홉 차례 운행한다. 월~목요일 4만500원, 주말 4만3300원. 3시간10분 걸린다. 새마을호 하루 2차례(오전 8시55분, 오후 5시5분) 운행. 월~목 3만6600원, 주말 3만8300원. 4시간50분 걸린다. 무궁화호 하루 6차례(오전 7시5분부터 밤 10시5분까지), 월~목 2만4600원, 주말 2만5700원. 5시간10분.

◎ 목포문화원에서 매달 셋쨋주 토요일, 목포 원도심을 걸으며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목포 골목길 답사’를 진행한다. 1시간30분~2시간 걸린다. (061)244-0044. 시민단체 ‘문화역사 길라잡이’에서도 목포 근대문화유산 탐방행사를 준비중이다. 016-871-8885.

목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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