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18 19:31
수정 : 2009.03.2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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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2교 밑 소양강처녀상. 1970년에 발표돼 인기를 끈 가요 ‘소양강 처녀’를 기념해 2005년 세웠다. 뒤쪽엔 쏘가리 조형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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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 워킹맵 2. 춘천 망대골목과 명동
예술가들 숨결 밴 망대골목에서 명동거리, 춘천예술마당 지나 소양정까지 6㎞
봄내, 맑은내. 춘천의 우리말 이름이다. 의암댐·소양댐으로 막히기 전까지 소양강은 눈부신 백사장을 적시고 흐르는 투명한 물길이었다. 정철, 김시습, 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은상 등이 이 물길을 지나며 감탄사를 쏟았다. 호숫가 도시가 된 지금도 춘천은 걷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춘천 도심의 과거와 오늘을 한나절에 꿰뚫는 코스를 걷는다. 봄볕 쬐며 한나절 쏘다니기 좋다.
박수근·권진규가 살았던 낡은 골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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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망대골목과 명동. 지도 그래픽 디자인 멋짓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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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남부로에서 춘천우체국 건너편 풍물시장①으로 들어섰다. 남부로를 따라 나란히 주택가 골목으로 이어진 풍물시장 자리는 옛 약사천 물길을 복개한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2·7일). 뒷골목까지 시끌벅적하다. 담 밑으로 줄줄이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이 웃고 수다떨어 봄볕 아니어도 골목 안이 환하다. “들여가유. 아칙에 뜯었어유.” 집에서 기르고 들에서 뜯은 봄나물과 먹을거리, 생활용품을 앞에 놓고 손님을 부른다. 냉이·달래·씀바귀에 칡뿌리·강아지·병아리·메주·봉밀·질금(엿기름)·참기름·뚱딴지·망태기까지 좌판 물건들이 쪼그려 앉은 어르신들의 표정만큼 다양하고 흥미롭다. 오리새끼·부엉이도 나온다는 골목이다. 약사천 복원 추진으로 풍물시장은 2년 뒤 온의동 고가 전철길 밑으로 자리를 옮긴다.
장터 뒤 ‘진보길’로 올라 본격적인 망대골목 탐험을 시작한다. 왼쪽에 유치원을 내려다보며 나무계단을 오르면, 새로 지은 정자 망대정이 나오고 옆으로 전망 좋은 찻집 하늘카페②가 있다. 높은 곳은 아니지만, 주변 동네와 대룡산·금병산 등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망대골목 투어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기에 좋은 찻집이다. 에스프레소 3000원.
하늘카페 위쪽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망대골목이 시작된다. 일제 때 야산 위에 세운 망대(화재감시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골목에 늘어진 개나리는 노란 꽃봉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낡고 허름한 시멘트돌담, 녹슨 쇠창살과 철조망,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길 등 1960~70년대 산비탈 동네 풍경이 정겹고도 쓸쓸하다. 망대골목 삼거리 ‘기대슈퍼’③ 할아버지(69) 말투도 쓸쓸하다. “썩어가는 골목에 무얼 볼게 있다고들 오는지 원.” 20년 전 산동네 사람끼리 서로 기대며 살자는 뜻으로 이름붙였다는 기대슈퍼는 백화점·편의점에 밀려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문 닫은 ‘망대서민이발관’ 맞은편 계단을 오르면 망대④가 있다. 3층짜리 망대에선 요즘도 민방위 사이렌이 울린다. 다시 내려와 아리랑골목으로 접어든다. 구불구불 이어진다 해서 아리랑골목이라는데, 혼자 걸어도 옷자락이 담에 스칠 정도로 비좁다.
망대골목 주변은 화가 박수근(1914~1965), 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다. 소방도로를 따라 약사명동주민센터 쪽으로 내려와 춘천교육정보관 옆골목으로 들면 주택 담벽에 한국 현대 조각의 문을 연 조각가 권진규가 살던 동네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⑤이 있다. 춘천의 길과 골목을 연구하는 신용자(56)씨는 “박수근은 가난했으므로 더 윗동네에 살지 않았나 추측된다”고 말했다.
죽림동성당⑥(근대문화유산) 지나 약사리고갯길⑦로 간다. 예전 효자동·석사동 주민들이 시내를 오갈 때 걸어 넘던 고개다. 미싱가게, 강냉이 튀기는 집, 톱가게 등 고색창연한 옛 점포들이 남아 있다. 50년간 미싱가게를 하며 “미싱에 청춘을 다 바친” 김순돌(79)씨가 2차선 차도로 변한 고갯길을 가리켰다. 장날이면 고갯길로 사람들이 들어차 콩나물시루 같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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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옆 브라운5번가 ‘미공간 봄’의 한우 사진전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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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돌아 나오면 길은 첨단 패션 거리로 이어진다. 중앙시장⑧을 거쳐 이어지는 명동⑨거리는 춘천 패션1번지다. 곳곳에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임을 알리는 팻말을 세웠다. 상권이 80~90년대와 같지는 않으나 여전히 젊은 남녀들로 붐빈다. 요즘 새로 뜨고 있는 곳은 명동 윗골목 브라운 5번가⑩다. 멀티플렉스인 프리머스시네마 앞 쉼터까지 의류·구두·네일아트전문점·이탈리아식당·커피전문점·북카페·과일주스 가게들이 들어찼다. 극장 옆골목엔 마임·마술 등 공연단체들의 연습장이 있다. ‘미공간 봄’⑪은 개성 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는 무료 전시관이다. 전시중(23일까지)인 ‘한우 전문’ 사진작가 김시동씨의 소 사진들이 영화 <워낭 소리>의 감동을 일깨운다. 4월4일부터는 평범한 황혼 어르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편지·영상·녹취·사진으로 전시하는 ‘연애편지전’이 열린다.
또다른 문화공간을 만나러 도청 쪽으로 걷는다. 강원일보와 한국은행 사이 골목 끝에 춘천문화원 정문이 있고 맞은편 모퉁이의 카페 ‘아름다운 사람’⑫이 호젓하다. 좌회전해 오르면 큰길 건너편에 마임의집·미술관·봄내극장이 한데 모인 춘천예술마당⑬이 있다. 마임의집에선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마임 공연이 열린다. 전통 한정식집 온소반을 지나 옥천길로 오르면 도청 앞에 이른다. 여기서부턴 문화유적지 탐방이다. 도청 앞 위봉문⑭은 1646년 현 도청 자리에 있던 문소각으로 들던 솟을대문이다. 아파트 토목공사장 옆 기와집골⑮은 옛날 만석꾼들이 살던 부자동네였다. 지금은 낡고 초라한 집들이 실낱같은 골목길들을 품고 떼지어 앉아 있다. 한편엔 일본인 관광객이 끊겨 썰렁한 <겨울연가> 촬영지도 있다. 10분 정도 내려와 탑거리로 들어 서부시장 앞으로 나서면 고려 때 탑인 춘천칠층석탑(16)(보물)이 서 있다. 큰길(소양로)로 나와 10여분 소양교 쪽으로 오르다 충원사 팻말 보고 번개시장길 골목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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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동 풍물시장 뒷골목 한 할머니의 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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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번개시장(17)은 매일 새벽 3시에 장이 시작돼 오전 9시면 끝나는 재래시장이다. 자그마한 공터와 뒷골목으로 좌판과 노점 40여곳이 들끓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만신’ 간판을 단 점집들이 포진한 골목을 지나면 선정비·송덕비·불망비들을 한데 모은 비석 무리(18)가 나온다. 그 옆길로 5분 오르면 봉의산 자락 소양정(19)(도 문화재자료 1호)에 이른다. 봉의산(301.5m)은 춘천의 진산이다. 정자에 오르니 봄바람 잔잔하고 해는 중도 너머로 기울었다. 봄냇가에 선 ‘소양강처녀상’이 실루엣으로 확 다가왔다. 여기까지 6㎞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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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쪽지
◎ 남춘천역에서 남부로의 춘천우체국 앞까지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10분 거리. 춘천역은 폐쇄됐다. 택시로 춘천 도심 대부분 지역을 2천~3천원에 간다. 도심에서 들를 만한 곳으로 춘천박물관, 공지천 조각공원 등이 있다. 조각공원 옆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2층의 자판기 커피가 맛있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커피를 쓴다. 먹을 만한 곳으로 남부로 남부막국수(033-254-7859)·명가춘천막국수의 막국수와 총떡(각 5천원), 중앙로2가 원조닭불고기집(033-257-5326) 닭숯불구이(1인분 8천원), 옥천동 은소반(033-244-6116, 점심·저녁시간에만 영업)의 전통한정식(1인 1만7천원부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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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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