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5 21:38
수정 : 2009.02.25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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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광주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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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맨십을 위하여 이것부터 해보자]14 이기호 광주대 문창과 교수
우선은 대한민국 여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듯싶다. 군대축구란 과연 무엇인가. 이등병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거의 생과 사의 갈림길이 아니던가? 아아, 제발 내 앞으로 공이 굴러오지 않기를, 하나님께 갈구하면서 계속 뛰어다니는 시간이 바로 그것. 그런 시간 속에서 어찌 감히 개인기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호날두도 메시도,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대한민국 연병장을 뛰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은 뻔한 이치. 어디 감히 ‘짬밥’도 안 되는 것들이 헛다리짚기에 무회전 슈팅을 떠올리겠는가. 그저 제 앞으로 공이 굴러오면 고참님들 슈팅하시기 좋은 각도로 살포시 내어드리면 그뿐. 아름다움 따위는 필요없다. 그저 이기는 것이 ‘선’이고, 지는 것이 ‘악’인 세상이다(그러니, 여자들이 군대축구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뻔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군대축구의 이러한 습성은, 사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딜레마이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본론부터 바로 꺼내 들자면, 우리 선수들은 사실 지나치게 도덕적이다. 각 개인을 그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제어하면서 운동을 한다. 이것은 선수들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우리 일반인들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너무 도덕적 층위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선’과 ‘악’의 관전법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몇 개, 은메달이 몇 개, 종합순위가 몇 위, 그런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는 것이다. 과정 자체나, 행위 자체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것이 숨길 수 없는, 지금까지의 우리의 관전법이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 스스로가 먼저, 보다 윤리적인 시선으로 선수들을, 스포츠를,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그 시선은 ‘선’과 ‘악’의 판별법이 아닌, ‘좋음’과 ‘나쁨’, ‘선택’과 ‘질문’의 구별법이다. 세계야구클래식(WBC)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플레이 못지않게, 올해 마흔세살이 된 송진우의 구위가 여전할지 관심 깊게 바라보는 것, 거기에서부터 윤리는 발생하는 것이다. 스포츠가 무슨 반도체도 아닐 터인데, 왜 자꾸 수출실적 체크하듯 바라보는지, 그것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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