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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4 21:51 수정 : 2009.02.24 21:55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스포츠맨십을 위하여 이것부터 해보자] ⑬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지난해 10월, 그야말로 ‘일제히’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어린 학생 선수들은 ‘일제히’ 배제되었다. 전교조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상당수 중·고교에서 운동선수들을 시험에서 제외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일제고사는 매우 퇴행적이고 획일적이며 반교육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주먹에 의한 폭력만이 아니라 이처럼 구조적인 폭력과 배제 속에 학생 선수들의 영혼이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일선 지도자와 학생 선수들이 이런 반교육적 폭력에 어느덧 무감각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와 인권-아름다운 합창’이라는 제목 아래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면서 일선 지도자와 학생 선수들을 위한 강의와 상담을 진행했다. 그 현장을 함께 하면서 나는 유무형의 온갖 폭력과 배제에 의해 어린 선수들이 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박탈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도자와 선수들은 방향 없는 분노와 짙은 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신이 맡고 있는 팀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적으로 바꿔보려고 했던 지도자들의 노력은 거대한 구조의 폭압에 의해 산산히 부숴지곤 했다. 학교와 국가를 위해 우승 깃발을 들고 돌아오는 것만이 유일선이 되는 파탄난 상황이 바로 ‘2002 월드컵 4강’과 ‘2008 베이징올림픽 7위’의 현실이다.

 어떤 지도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식만은 제발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스포츠에 조금이라도 재능을 보이게 되면 꿈 같은 학창시절이나 평범한 사회생활은 접어야 한다. 오로지 훈련과 시합으로 생애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그러다가 부상이나 슬럼프라도 겪게 되면 인생 그 자체가 위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은 수업받을 권리가 있다. 체육계의 명망 높은 인사와 선수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분명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반교육적인 행태에 대해 체육계 그 어디에서도 정당한 분노를 표시하고 확실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없다.

선수들이 학업에서 배제되는 현실에 대해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은 정당하고 위엄있는 행동이다. 체육 단체장이나 유명 선수들이 때때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더 긴급한 것은 ‘후배 선수들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다. 이는 비단 후배들만이 아니라 유명 체육인들의 자존심과 명예와 존재의 의미가 걸린 중대한 문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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