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드라곤 조합집단, 적자조합 손실 50% ‘보전’
조합원 1인1표 경영…임금삭감 있되 해고 없어
이윤 절반 조합원 몫…임금차 최대 5배 제한
‘대전환’의 시대 제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5회 노동자 주주행동
스페인 ‘협동조합 기업’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용의 산’이란 뜻)의 호젓한 계곡에 자리잡은 몬드라곤협동조합그룹(MCC)에서는 요즘 대규모 기술연구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나노, 친환경에너지, 첨단 자동차부품 같은 분야의 신기술을 개발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실업률 17%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스페인 경제상황이 이곳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인 듯하다. 몬드라곤협동조합그룹은 경영환경이 악화되더라도 매출의 5%가량은 늘 연구개발 투자에 쓴다. 보유 자산이나 자본이 넉넉해서가 아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과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 기업의 주인은 일하는 사람들 1956년 기술교육학교 동창생 23명이 만든 석유난로 공장으로 출발한 몬드라곤협동조합은 현재 260개 사업장에, 328억유로(55조원)의 자산(금융부문 제외)을 갖춘 스페인 7대 기업그룹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 협동조합그룹이자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인 기업으로 유명한 이곳에선, 경영성과 배분부터 경영진 선임, 새로운 투자 등의 중요 사안을 조합원 ‘1인 1투표’로 결정한다.
기푸스코아·비스카야·알라바 3개 행정구역으로 이뤄진 바스크 지역에서 몬드라곤협동조합이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은 절대적이다. 2차 세계대전 뒤 폐허가 된 바스크 지역을 스페인 안에 가장 성장률이 높은 복합공업지대로 탈바꿈시켰고, 2008년 기준 제조업 분야의 역내 고용기여도는 9.7%에 이른다.
이런 몬드라곤협동조합도 전세계를 휩쓴 경제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154억유로(금융부문 제외)로, 1년 전보다 6.7% 줄었다. 올해 1분기엔 주력조합인 파고르(Fagor)의 전자제품·자동차부품 판매가 20%나 떨어졌다. 국외 공장을 포함해 전체 고용인원도 2007년 10만3700명에서 지난해 9만5천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이 기업의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자못 달랐다. ■ 희생의 나눔으로 위기 극복 몬드라곤그룹에 속한 조합들은 모두 이윤의 10%를 그룹 본부에 ‘상납’한다. 조합의 금융 지원을 위해 1959년 세워진 카하 라보랄(Caja Laboral: 노동인민금고)은 20%를 낸다. 평소엔 새로운 조합 설립이나 신규 투자 재원으로 쓰이는 이 기금이 빛을 발하는 건 요즘 같은 때다. 어려움에 빠진 조합의 적자분 50%를 3년 동안 그룹이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이익을 많이 낸 조합이 어려운 동료 조합의 생존에 ‘버팀목’ 구실을 하는 셈이다. 몬드라곤협동조합에서 조합원에 대한 해고는 없다. ‘협동과 연대’의 원칙은 고용조정이 불가피할 때에도 적용된다. 한 조합이 어려워져 인원을 줄여야 하면, 고용 여력이 있는 그룹 내 다른 조합으로 옮기게 한다.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던 여성 조합원 수백명이 유통서비스업체인 에로스키(Eroski) 등으로 옮겨간 것이 대표적 사례다. 판매 둔화로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자동차부품 제조 협동조합에선 노동시간계좌제 같은 탄력근무체제로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전환배치나 임금 조정 등은 사회보장 공제조합인 라군아로(Lagun-Aro)가 정한다. 임금 등에서 희생이 뒤따라도,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달 29일 만난 그룹 본부의 헤수스 힌토 홍보이사는 “자발적인 임금 삭감이나 조합들끼리 고용인원 조정, 연대기금 지원을 하면서 경기침체의 터널을 헤쳐가고 있다”며 “조합원은 노동자인 동시에 기업의 주인이기 때문에 경제위기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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