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대 제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5회 노동자 주주행동, 캐나다 ‘노동후원연대기금’
투자수익, 퇴직연금 환급…노동자, 운영에 참여퀘벡주, 작년 1880곳 기업 투자로 12만개 일자리
정부, 기금 출자액 30%까지 세금공제 혜택 지원해 캐나다 ‘퀘벡주 노동조합연맹’(FTQ)에서 일하는 브루노 발리(52)는 연맹에서 운용하는 ‘연대기금’의 장기투자자이면서 주주다. 1983년부터 여태까지 캐나다 돈으로 8만달러(약 8600만원, 이하 캐나다달러)를 투자해, 기금 주식 3781주를 보유하고 있다. 발리는 “지금까지 누적수익률이 4.8%니까, 60살에 은퇴하면 해마다 1만5천달러(1600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금을 단지 노후 생계보장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내가 투자한 돈은 나 자신 뿐 아니라 퀘벡지역 경제 발전과 퀘벡주 노동자들을 위해 쓰인다.” 그의 목소리에 기금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올해로 출범 26년째를 맞은 연대기금은 주로 노동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퀘벡주에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한다. 이는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기업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만들거나 유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기금의 투자 수익은 출자한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으로 돌아간다. 캐나다 정부는 기금 출자금에 대한 세제혜택으로, 노동자들의 투자를 유도한다. 노동자로서는 일자리의 안정성과 노후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2008년 12월 순자산 규모가 61억달러(6조7천억원)에 이르는 이 기금에는 퀘벡주 노동자 57만5천여명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기금 자산의 주인이 노동자인 만큼 투자대상 선정 등 기금 운용과 관련한 의사결정 주체도 노동자다. 모두 17명으로 구성되는 이사회는, 노동조합연맹이 임명하는 10명, 주주총회에서 선출되는 2명, 그리고 이들 12명이 지명하는 각 분야 외부전문가 5명으로 꾸려진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기금 이사회는 ‘노동의 이익’과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자산운용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연대기금 정관은 기금의 주요 기능을 △일자리 창출·유지를 위한 사업에 투자할 것 △노동자들에게 퀘벡주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제교육을 할 것 △노동자에게 이익이 될 사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할 것 등이라고 밝힌다. 이런 원칙은 기금이 투자하는 기업과 맺는 투자협정에도 항상 반영된다. 기금의 모든 투자는 ‘사회책임투자’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연대기금은 1980년대 초반 퀘벡주에 찾아온 경제위기의 산물이다. 당시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률이 10%를 웃도는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퀘벡주의 노·사·정 대표들은 마라톤 대책회의를 열었다. 고용을 늘리는 데 필요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아래, 노동계가 먼저 낸 해결책이 바로 연대기금 조성이었다. ‘노동자들이 돈을 내어 기업에 투자할테니, 기업은 고용을 늘리고 정부는 이를 도와라’는 취지였다. 이런 대타협안을 놓고 노동계에서는 “노동운동의 목적을 잃고 자본에 굴복한 것”, 기업 쪽에서는 “노조가 과도하게 경영에 참여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당시 노조연맹 사무총장이었던 페르낭 다우 연대기금 고문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취지에 공감했고, 정부와 경영계가 이를 돕기로 결정하면서 ‘독특한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 뒤 사반세기 만에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 국면에서, 연대기금의 성과는 위기 극복의 길잡이 구실을 하고 있다. 2008년말 현재 연대기금은 퀘벡주에 있는 1880여곳에 투자를 해, 12만6035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평가에 힘입어 투자한 노동자들의 기금에 대한 신뢰도 남다르다. 브루노 발리는 “연대기금은 퀘벡주 지역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퀘벡주의 경제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는 한 내가 투자한 돈을 안정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퀘벡주도 미국발 경제위기 한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제조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대체로 연 3~4%를 유지해왔던 연대기금의 투자수익률이 지난해 -1.2%로 떨어졌다. 그러나 기금 운용자들은 낙담하기는 커녕 미래를 낙관한다. 미셸 아르세노 연대기금 회장은 최근 열린 올해 주총에서 “우리는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페르낭 다우 연대기금 고문은 “경기침체로 노동자들에게도 힘든 시기가 오고 있다”며 “하지만 처음 기금을 만들었을 때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이 돈을 모아 투자를 일궈 고용안정을 뒤받침할 수 있는 연대기금의 가치는 더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몬트리올(캐나다)/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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