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4.13 13:54
수정 : 2009.04.13 15:51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기본소득 모델’ 한국 적용해보니
국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의 불씨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지난 2월‘모든 국민에게 즉각,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 한 권을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기본소득 도입 전략을 다룬 연구 프로젝트의 첫번째 산물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2009년 기준)은 △39살 이하 연 400만원 △40~54살 연 600만원 △65살 이상 연 900만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 연 550만원씩의 수당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 두 명을 둔 30대 부부는 해마다 160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 기본소득 수령액은 해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늘어나게 된다.
불로·투기소득 세율높여 부족재원 메우고
현금지급형 복지예산, 기본소득으로 대체
“국민 90%가 이익…비정규직 해법 열릴것”
이 제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재원은 2009년 기준으로 대략 257조원. 2009년 예산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 보고서는 기존의 연금 및 실업급여 등 다양한 현금지급형 사회복지 예산을 모두 기본소득 지급으로 돌리고, 세원 양성화나 불로소득에 대한 세율 인상으로 300조원이 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주식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나 이자소득세 등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적어도 기본소득 제도를 유지하는 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사각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복지전략이자,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현재의 불평등한 조세체계를 뜯어고치는 조세 변혁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모델에 따를 경우, 우리나라 전체 국민 가운데 10% 정도의 고소득자 소득이 나머지 90%의 기본소득으로 이전돼 실업자와 노령층, 영세자영업자 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실질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됐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도 이 제도가 새로운 실마리를 열어줄 것이라고 내세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은 “그간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나눌 경우 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 때문이었다”라며, “기본소득이야말로 질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려는 압력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울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회계층과 연대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승협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기본소득은 공동체를 위한 활동 등 그간 가치 있는 노동으로 대접을 못받던 다양한 활동을 자연스레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특히 여성운동, 백수운동, 실업자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사이버공간으로도 옮겨붙었다. 지난 2월말 기본소득 제도에 관심을 둔 국내 연구자와 사회활동가, 노조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카페(cafe/daum/net/basicincome)가 개설됐다. 이들은 조만간 각국의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한국지부를 결성하고, 내년에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정례행사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은 또 기본소득이 노동시간 단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별도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노동과는 분리된’ 기본소득을 공론의 무대로 올려 놓으려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결국 기본소득이야말로 일종의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강남훈 교수는 “기본소득이야말로 국민 90% 이상이 이익을 보는 모델”이라고 강조한 뒤, “진보세력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은 새로운 분배 패러다임이자, 동시에 보다 광범위한 사회계층을 급진화·진보화시키는 진보세력 집권전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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