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27 21:46
수정 : 2009.09.2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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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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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초빙교수로 온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며칠 전 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 교수 등 필자와 교분이 있는 현지 지인들과 저녁 자리를 같이했다.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중국 학자들이라 화제는 자연히 한-중 관계로 옮겨갔다.
참석자 모두 한-중 관계의 큰 흐름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교역 및 투자 규모 확대, 한류 확산을 통한 문화적 공감대 형성, 그리고 인적 교류의 심화 등 한-중 관계는 이제 모든 면에서 성숙 단계에 들어섰고 그 무엇도 이를 반전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한-중 관계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작년 이명박·후진타오 두 정상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선언, 그리고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의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의 재천명에도 불구하고 한-중 관계가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한-미 동맹, 한-미-일 3국 공조만을 강조하는 한국 정부의 불균형 외교와 중국에 대한 역지사지의 배려가 없는 밀어붙이기식 일방외교, 두 가지를 들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하자 봇물처럼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6자회담을 5자회담 대체로 판을 깨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수교 60년의 북-중 관계가 한국이 원하는 것처럼 쉽게 훼손될 것 같은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수단이지 한국 정부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북한을 고립·봉쇄하고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압력 기제가 아니지 않은가.”
이들의 불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북핵 문제에서 입지가 극히 제한적인 한국이 6자회담 주요 당사국들과 협의도 없이 ‘그랜드 바겐’이란 제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최근 한국 정부가 미사일방어(MD) 체제 가입에 관심을 표명했다는데 그 저의가 무엇인가.”
특히 이들이 강한 의구심을 표한 대목은 우리 외교 기조의 급격한 변화였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상대가 있는 외교정책의 경우 변화에 신중을 기하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급격히 외교정책을 선회하는 한국의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1.5트랙의 한-중 전략대화에 한국 참석자들이 초당적 면모를 보였는데 최근에 와서는 그런 양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며 현 정부의 승자 독식 행태를 꼬집었다.
흥미 있었던 대목은 주중 한국대사 자질론이었다. 이들은 역대 주중 한국대사 중 황병태 대사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았다. 그의 자질도 뛰어났지만 당시 천안문 사태로 국제적 고립 상태에 있었던 중국 지도부로서는 황 대사와 같이 본국에서 정치적 비중이 있는 인사를 잘 대해 주어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을 더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서는 국내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인사보다는 중국을 잘 알고 중국과 인연이 있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뛰는 직업외교관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이들 주장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도 중국인으로서 중국의 국가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차분한 설득의 논리로 이들을 대하고, 대승적 견지에서 좀더 균형적인 외교 포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제 중국은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오바마의 미국, 하토야마의 일본 모두 중국을 의식한 외교정책을 전개하고 있는데 우리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외교를 전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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