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06 18:14
수정 : 2009.09.0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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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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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무풍지대 일본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자민당 독주의 55년 체제를 기적적으로 무너뜨린 민주당의 압승은 지난해 11월 오바마의 대선 승리 못지않게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준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자민당의 외교노선을 차분히 복기해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우선 자민당의 대미관을 보자. 지난 자민당 정부에 있어 미국은 절대적이었다. ‘미국 없는 일본’은 생각할 수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미국에 편승하여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보통국가의 길로 나가겠다는 것이 자민당 외교노선의 핵심이었다.
자민당의 대중관은 어떤가. 자민당 인사 대부분은 중국의 부상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의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대규모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일본이 안심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이들의 중론이었다. 이들에게 중국 위협론은 가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로 각인되어 왔다.
어디 그뿐인가. 2002년 9월15일 ‘평양선언’ 채택을 통해 북-일 관계에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왔던 고이즈미와 그를 계승한 자민당 내각이 결국은 북핵 문제까지도 납치 일본인 문제의 볼모로 잡아왔다. 그리고 자민당 의원들은 한-일 관계 개선과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한-미-일 3국 공조를 줄곧 강조해 왔지만 실상 이들 중 상당수가 독도, 역사교과서 개정, 야스쿠니신사 문제 등에는 강경 자세를 취해 왔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오히라, 나카소네 시절만 해도 일본은 환태평양 또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일본과 동남아 간의 양자 협력 구상으로 평가절하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자유와 번영의 호’라는 대중국 견제용 가치공동체 구상으로 변질된 바 있다. 이러한 의존적·배타적·관성적인 외교행태 때문에 막강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외교지도력이 문제시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자민당의 외교행보에 비추어, 하토야마 내각은 세 가지 이유에서 희망적이다. 첫째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다. 하토야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과거사 문제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호소카와의 대주변국 외교노선과 무라야마 담화 계승을 공식화했다. 아시아 외교의 진정성이 보이는 대목이다.
둘째, 냉철한 현실인식과 분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차분한 전망이 돋보인다. 미국은 이제 무소불위의 패권국이 아니기 때문에 좀더 대등한 관계에서 일-미 동맹을 조율해 나가겠다고 한다. 주일미군의 재편, 달러 위주의 외환정책 재고, 유엔 중심의 외교기조 강화 등 새로운 대미 정책이 곧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국을 견제·배제하기보다는 중국의 부상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미국과 중국 양자 간에 독립적인 입장에서 균형자 노릇을 하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애의 공동체’라는 미래의 담론이다. 하토야마는 미국 주도 세계화의 한계를 간파하고 그 대안을 공동체에서 찾고 있다.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부의 양극화·격차화를 극복하고 박애와 공생에 바탕을 둔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적 공동체의 부활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호혜와 협력의 통합체를 모색하겠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일본 외교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해 준다. 일본, 동아시아, 그리고 전세계를 위해 이는 지극히 바람직한 행보이다. 아무쪼록 대외적 제약과 국내정치적 저항을 극복하고 일본 외교의 대승적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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