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3 20:40
수정 : 2009.05.03 20:40
|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문정인칼럼
오바마 행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부시 집권 중 실추된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재확립하고, 우방과 동맹뿐 아니라 적대 국가들과도 대화를 통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방주의가 아니라 파트너십을 통해 세계 질서의 구축을 모색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구상은 실로 대전환적 행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대북정책을 보면 불안한 예감이 든다.
이런 우려는 얼마 전 워싱턴에서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의 정책 처방을 접하면서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는 우선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단정하고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의 정면 위반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그런 위반행위에는 단호한 처벌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응징을 위해 유엔 차원은 물론 한국·일본과 긴밀한 공조를 전개하고 있고 이런 노력에 중국도 동참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이 6자회담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6자회담을 연명하기 위해 북한에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판을 깰 수도 있다는 자세다. 이같이 강경한 태도는 북한을 ‘핵 야욕을 가진 무책임한 국가’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에서 ‘더 큰 무덤을 파고’ 있는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클린턴 국무장관의 최근 의회 발언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이쯤 되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차분한 무관심’을 넘어서 부시 행정부 1기의 ‘적대적 무관심’ 전략으로 전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물론 미국이 화를 낼 만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서 북에 로켓 발사 유예를 요청했고 스티븐 보즈워스 특별대표를 중국 베이징에까지 보내면서 방북을 강력히 희망했는데도 북은 이를 거부했다. 이란·시리아·쿠바 등과는 대조되는 반응이고 이는 분명히 북한의 패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강경대응의 배후에는 일본과 한국의 압력이 거세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북핵 문제를 전담할 정책 라인도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대북정책 검토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북의 로켓 발사는 오바마 행정부에 ‘심각한 도발적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북 강경노선이 성공할까. 다분히 회의적이다. 이미 북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과 3개의 북한 기업체 제재 등 그 후속 조처에 대해 6자회담 탈퇴 선언, 국제원자력기구 감시요원 추방, 그리고 폐연료봉 재처리 착수의 공식화 등으로 강경대응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4월29일에는 유엔 안보리가 사죄하지 않으면 2차 핵실험,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그리고 저농축 우라늄 확보를 통한 경수로 건설에 나서겠다고 공표했다. ‘벼랑 끝 전술’이나 ‘공격적 구애’로 보기에는 북의 의지가 너무 강력해 보인다. 이제 북은 그네들이 좋아하는 ‘우리 식’으로 ‘자기가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 밀고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은 꼭 우리 쪽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군사행동이나 적대적 무관심 전략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북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은 증대되고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죄와 벌’ 그리고 국제사회의 집단응징이라는 카드로 북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조속히 보즈워스 특별대표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고 양자접촉을 통해 반전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잃어버린 5년’이라는 망령이 되살아나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