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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22 21:52 수정 : 2009.03.22 21:52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칼럼

지난주 예멘에서 발생했던 한국인 대상 테러공격은 우리도 국제 테러리즘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테러 사태를 알카에다에 의한 ‘기획 테러’로 단정 짓고 한국도 이제 ‘테러와의 전쟁’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번 테러 사태를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 보도에는 문제점이 많다. 우선 알카에다는 45개국에 직접 지부를 두고 65개국 무장세력들과 연계를 가진 거대한 초국가적 테러조직이 아니다. 더구나 이번 테러공격을 알카에다 예멘 지부가 감행했다는 확증도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일부 언론이 확고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합법 정당인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까지도 알카에다와 연계를 가진 테러조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70년대부터 민다나오 분리를 주장하며 반정부 투쟁을 전개해온 필리핀의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과 아부 사야프도 알카에다의 연계조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의 과격파 테러조직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신봉이라는 이념과 체제전복이라는 방법론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동일 또는 연계 조직은 아니다.

우리 언론은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와 필리핀 삼모앙가 테러,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테러, 2007년 알제리 폭탄테러 등 9·11 이후의 거의 모든 테러사건을 모두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 역시 오보다. 발리 테러는 제마 이슬라미야, 마드리드와 런던 지하철 테러는 현지 무슬림 이민자들로 구성된 자생조직, 그리고 알제리 폭탄테러는 현지 이슬람 무장조직이 각각 감행했다. 이번 예멘 테러도 알카에다 예멘 지부가 아니라 현지 자생조직이 저지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왜 이런 오보가 생기는 걸까. 그것은 우리 언론이 미국 쪽 정보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세계 도처의 자생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과격단체 모두를 알카에다와 동일시하는 구체성의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고유명사로서의 ‘알카에다’를 보통명사화시킨 데 있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가 우려했던 문명충돌론적 사고와 테러와의 전쟁에서 조직과 예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관료적 노력이 이러한 확대해석을 가져왔다고 본다. 때문에 이번 사태를 알 카에다에 의한 ‘기획 테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외교통상부의 신중한 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이와 더불어 차제에 15억 인구의 이슬람권에 우리가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에 대해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김선일씨 사건과 아프간 인질 사태 이후 한국은 ‘기독교 공화국’, 그리고 서구를 대신해 이슬람권에 대한 기독교 선교 침투를 자행하고 있는 국가로 현지의 일부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아랍, 이슬람 문화를 소개할 목적으로 인천에 세워진 중동문화원이 기독교계의 반발로 한때 무산위기에 처했던 사례가 현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대한 유엔 인권위 결의안에 한국이 기권했던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반아랍, 친유대’ 국가라는 이미지가 이슬람권에 퍼질수록 우리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제 정부는 국제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보수집 및 판단 능력을 고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도 좀더 겸허한 자세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표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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