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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8 22:19 수정 : 2009.02.09 14:41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정인칼럼

해마다 1월 말 돈 많고 힘 있는 명망가들이 벌이는 ‘세계화의 축제’ 다보스 포럼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초청 연사로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1971년 이 포럼이 시작된 이래 올해처럼 암울한 분위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9월 시작된 금융위기 탓만은 아니었다. 올해 전세계 실업자 수가 5천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와 주요 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경기진작 조처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저성장을 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이 포럼 개최에 맞추어 발표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통해졌다.

2009년 ‘다보스 컨센서스’는 국가의 개입과 국제 공조를 통한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과 공황심리 극복에 맞추어졌다. 이 포럼에 참석한 최고경영자와 경제정책 입안자의 절반 이상이 시장의 자기규제 실패가 현 세계경제 위기를 촉발했다고 진단했다. 시장에 대한 신뢰 상실은 곧바로 공황심리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축제인 다보스 포럼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윤리와 ‘세계화’ 역시 도마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이번 금융위기의 또다른 원인을 금융자본가의 탐욕과 국가의 규제 실패에서 찾았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아예 맹목적 이윤추구의 자본주의를 ‘책임공유형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월가식의 ‘막가파’ 금융자본주의로는 세계경제를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책임윤리에 기초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 올해 다보스 포럼의 중론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화의 역설 구조도 관심을 끌었다. 포럼 참가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1930년대식 ‘이웃국가 가난하게 만드는’(beggar-thy-neighbor) 보호주의 정책의 재현은 세계 평화와 번영을 크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기초한 세계화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바이 아메리카’와 같은 배타적 무역 관행과 자국 기업 우대의 금융보호주의가 가시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위선적 이중성이 세계화의 한계인 것이다. 반면 양극화와 같은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다보스 포럼이 새롭게 보였다.

미국 책임론도 크게 대두했다. 미국의 낮은 저축률, 과도한 소비, 그리고 탐욕스런 금융자본가와 이들에 대한 정부의 규제 실패가 이번 경제위기의 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 없이 세계경제의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여타 국가들은 계속 미국 국채를 사야 한다는 빌 클린턴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또 하나의 역설이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중국 구원론’이다. 중국의 1조달러 넘는 외화보유고와 8퍼센트 예측 성장률을 모두 부러워했다.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한 중국인 참석자의 발언이 장내를 압도했다. 중국의 입김이 세진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한국은? 다보스 포럼 최초로 ‘한국의 밤’을 성황리에 개최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경제 자체보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집중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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