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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7 19:31 수정 : 2009.01.21 11:26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문정인칼럼

지난 12월2일 미국 의회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테러 방지위원회’는 ‘위기에 빠진 세계’라는 초당적 보고서의 발간을 통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 저지를 오바마 차기 행정부의 최우선적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직접협상 등 외교적 노력을 통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되, 실패할 경우 군사행동과 같은 위협의 행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전제로 한 미래의 강경책이 아니라 외교적 처방의 정교화다. 향후 대북 협상에는 두 가지 외교적 경로가 있다. 그 하나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남겨 놓은 정책 유산인 2·13 합의 3단계 ‘검증 가능한 폐기’ 협상을 6자 회담의 틀 안에서 전개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부시 행정부의 “에이비시”(ABC·클린턴의 것은 안 돼) 정책 때문에 중단되었던 ‘통 큰’ 대북 협상을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방북의 연속선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솔직히 전자의 경우,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 힐 차관보는 탁월한 상상력과 외교력으로 위기국면의 대북협상에 돌파구를 찾곤 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아래서 힐을 대신할 사람을 찾기 힘들 뿐 아니라, 찾는다 해도 차관보 수준의 대응으로는 복마전 같은 워싱턴 관료정치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또다시 미국은 관료적 타성에 젖은 ‘주고받기’(tit-for-tat) 식의 지루한 협상을 일상화할 것이고, 북한은 이에 ‘살라미 전략’(협상카드 키우기 전략)으로 대응해,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제2의 핵실험과 같은 또다른 위기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누차 강조했듯이 이제 북핵 문제는 과거의 관료적 협상 행태에서 벗어나 역발상의 통 큰 외교 구상으로 풀어야 한다. 사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은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위한 사전답사였다. 그 연속선상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예 취임 초기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보내 역사적 반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클린턴 특사가 검증 가능한 핵 폐기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북-미 적대 관계 해소는 물론 북-미 국교 정상화를 위한 기본조약을 체결할 용의가 있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북쪽의 화답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북에 보내는 메시지의 핵심은 북-미 관계 정상화가 협상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핵 폐기 초기 단계에서도 하나의 인센티브로 제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베이징 6자 회담에서 시료채취, 감시 활동, 그리고 의심되는 핵 시설에 대한 접근 허용 등 검증 의정서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다음, 뒤이어 3단계의 진입으로서 구체적인 폐기 일정을 수용하는 데 대한 대가로 북-미 수교는 고려할 만한 카드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강조해 온 ‘변화’의 진정성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북한에 수교 카드는 가장 매력적인 유인 효과가 될 수 있는 동시에, 비협조 때 단교의 위협은 군사행동보다 더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좋은 카드를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클린턴 특사의 방북과 국교 정상화 제의 같은 역발상의 파격적 고강도·고위급 대북 외교는 6자 회담에 탄력을 불어넣고 ‘검증가능한 핵 폐기’를 순조롭게 이행시켜주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가 통 큰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의 조기 타결에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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