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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으로 부도가 나 문을 닫은 안산 시화공단의 한 중소기업체의 녹슨 자물통이 산업화 이후 최대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산/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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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전에 없던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제한파는 평소에도 자금과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사 위기에 놓인 중소기업을 살리자면 유동성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만을 위한 ‘50조원 자금공급 펀드’를 조성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우선 ‘진통제’를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경증과 중증 등 환자 상태에 따른 ‘정교한 처방’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소기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경쟁력 향상 프로그램 실시’에 방점을 찍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위기 뒤 찾아오는 기회를 활용하자면 지금부터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전문가들은 산업대학을 강화하는 교육 시스템 재편이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협동조합 활성화 등도 대안으로 내놓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오래된 불공정 거래를 개선할 기회라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정해 하청업체에 통보하는 관행을 벗어나기 위해선 원자재값과 납품단가를 연계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얘기했다.
지원·퇴출 기업 선별기준 만드는 게 급선무
인력 재훈련·중기 협동조합 활성화도 필요
■ 자금지원 대책은 정밀하게 정부는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자금 지원을 발표하고 집행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원책은 키코(통화 파생상품) 피해를 본 중소기업 등 특정 기업과 업종에 국한돼 있다. 정부가 지난 8일 비상경제대책 회의에서 약 50조원의 신규자금을 중소기업에 공급하기로 한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50조원 가운데 20조원은 은행의 자본 확충을 지원하는 것이어서 엄밀히 얘기하면 중소기업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머지 금액도 기존에 해 오던 보증기관의 보증을 확대하는 정도다.
전문가들은 자금 지원 규모를 늘리는 것과 병행해, 정교한 자금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제안한다. 정부의 지원책에는 ‘누구에게’ ‘왜’ 지원하느냐는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의영 군산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돈 줄테니 알아서 하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선별기준을 빨리 제시해야 금융기관이 그것을 시그널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단 최상위 중소기업과 최하위 중소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솎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시장에서 자체적으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견실한 중소기업은 일단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모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회생이 힘든 기업에 대한 지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주관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현재의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 대한 평가모형도 재정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돈을 풀어도 막상 중소기업한테 흘러 들어가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려면 지방 은행이나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지역 금융기관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시중에는 200조원의 부동자금이 떠돌고 있지만 중소기업엔 돈이 흐르지 않고 있다. 은행들의 대출 기준이 워낙 까다롭고 엄격해 실제 대출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단기적으로는 지역 금융기관들을 통해 정책 자금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들 풀뿌리 금융기관의 기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을 전문가들은 유동성 지원에만 집중돼 있는 정부의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위기 이후’를 대비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늘릴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실장은 “위기 때 기술력을 보존하고 축적해야 경기가 좋아졌을 때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인력 양성 시스템 개선과 재훈련 강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박주현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이참에 교육 패러다임을 확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옛소련과 서유럽의 중개무역으로 살아가던 핀란드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국가 경쟁력에서 앞서가고 있다”며 “이는 종합대학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산업대학 중심으로 바꿨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는 90년대 초 200여 대학을 통폐합해 33개의 산업대학으로 재편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고용보험기금 등으로 중소기업의 잉여 인력에 임금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면서, 전국의 폴리텍대학이나 산업기술대학, 국공립대학의 이공계학과 등에 6개월~1년 정도 ‘연수’를 보내자는 제안도 있었다. 지금이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적기라는 얘기다.
김영호 유한대학 총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과 이의영 교수 등은 중소기업의 네트워킹 혁신을 강조했다.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중소기업과 대기업, 중소기업과 대학의 연계 고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소기업 협동조합을 활성화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비용을 줄이는 작업에 대해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도 “대학이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납품거래 관계가 지속되면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중소기업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며 “경부 대운하를 팔 게 아니라, ‘대학-중소기업-대기업 사이 지식과 혁신’이란 진정한 대운하를 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전문가 기고
은행통한 지원으론 한계
정부가 직접공급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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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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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최근 수출과 내수의 동시 추락에 따른 타격으로 연초부터 악전고투하고 있다. ‘판매대금 지연’과 ‘자금조달 곤란’으로 겪는 어려움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중소기업에 가장 큰 어려움은 원활한 자금조달 숨통을 트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금융위기 확산시점부터 막혀 버린 중소기업 자금조달 통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유상증자 등을 통한 조달은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기업이 선택할 마지막 자금 조달수단은 은행 대출이다. 한국은행의 대출행태 서베이 조사결과를 보면, 중소기업의 대출수요는 지난해 3분기 이후부터 갑절 이상 증가했지만 거꾸로 은행의 대출태도는 갑절 이상 위축되고 있다.
사실 일부 건설사와 조선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모두 부실·방만 경영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부도위험에 빠진 것이 아니다. 환율폭등으로 원자재가 떨어지지 않고, 신용경색으로 자금조달이 어려워졌으며, 수출과 내수 추락으로 판매통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해 왔던 것처럼 후선에서 은행을 독려하고 은행이 전방에서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정부가 은행에 자금지원을 대대적으로 했지만 은행으로 들어간 자금은 중소기업으로 다시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무엇인가?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직접 자금을 조성해서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주요 금융기관과 기업을 살린다고 10조원 규모의 ‘채권안정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대부분 은행채 매입이나 금융채 매입에 사용되었다. 또한 지난 12월에는 20조원 규모의 ‘은행 자본확충 펀드’를 조성하여 은행 살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8일 금융위원회는 2009년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50조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출한 순증가 금액인 52조원보다도 적고, 그나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12조원을 추가로 더 대출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다. 이 정도는 일상적인 대책이지 정부 표현대로 ‘비상경제정부’에 맞는 비상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별도의 ‘중소기업 50조 자금공급 펀드’를 조성하고, 정부·금융기관·중소기업이 참여하는 운영기구를 꾸려 신속하고 적실하게 자금공급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이 우리 경제에 절실한 내수기반을 회복하는 길이고, 88%를 담당하고 있는 고용의 방파제를 지키는 길이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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