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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5 08:36 수정 : 2008.12.15 10:01

민생뉴딜

[민생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③‘사회 서비스’로 고용 늘리자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일자리 창출’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특히 보건·보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늘리기를 주문한다. 사회안전망도 강화하고 고용도 창출하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어라고 밤낮 일해도 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자리는 또다른 ‘굴레’다.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늘리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한겨레>는 정부가 운영 또는 지원하거나, 아예 공공의 영역 밖에 있는 대표적인 사회서비스 일자리 셋을 ‘동행르포’ 형식으로 취재했다. 최대 24시간 곁에서 들여다본 이들 일자리의 현실은 ‘부지런한 가난뱅이’의 그것이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일자리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3일 새벽 간병사 양아무개씨가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이아무개씨를 돌보고 있다. 최원형 기자

#1 간병사의 하룻밤 체험 해보니

최저임금 미만에 4대보험조차 안돼

‘탁탁 탁탁탁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누워 있던 아아무개(80)씨가 손에 든 부채로 침대에 붙은 난간을 두드린다. 얼른 침대 옆으로 가 얼굴을 보니 어딘가 불편한 듯 잔득 찡그린 표정이다. 이씨를 돌본 지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커튼을 걷어드릴까요? 아니면 부채를 부쳐드려요?”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목에 꽂힌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얼굴을 더욱 찡그리며 다시 난간을 두드릴 뿐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간병사 양아무개(53)씨가 다가왔다. 이것저것 살펴보던 양씨는 “대변을 보셨네요”라며 이씨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냈다. 과연 엉덩이 밑에 깔아놨던 위생패드에 변이 묻어 있었다. 양씨와 함께 스스로 앉을 힘이 없는 이씨의 몸을 들었다 놨다 하며 변이 묻은 위생패드를 깨끗한 것으로 갈고 환자복 바지도 새 것으로 갈아입혔다.

신장병과 당뇨를 앓고 있는 이씨는 이 병원에 14달째 입원 중이다. 손발을 조금씩은 움직이나 몸을 뒤척일 정도의 힘은 없어 모든 일을 간병사에게 의지해야 한다. 위장과 직접 연결된 관을 통해 하루에 5번씩 미음과 약을 먹이는 일, 2시간마다 한번씩 가래를 제거해주는 일, 틈틈이 자세를 바꿔주고 대소변을 치우는 일 등이다. 이씨는 거의 5~10분 간격으로 난간을 두드리며 ‘침대를 올려라’, ‘침대를 내려라’, ‘등을 긁어 달라’, ‘부채를 부쳐 달라’ 등의 요구를 한다. 손짓과 눈빛만으로는 무슨 요구인지 알 수 없어 매번 쩔쩔매는 기자와 달리, 양씨는 ‘척하면 착’으로 이씨의 요구를 알아듣는다. 일주일 내내 옆에 붙어 이씨를 돌보고 있을 뿐 아니라 간병사 경력이 12년이나 되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씨처럼 성격이 예민하신 분은 간병하기 참 어려워요. 처음엔 스스로 간병하려 했던 가족들도 결국 24시간 붙어서 돌봐주는 ‘전문가’인 우리들에게 맡겼다니까요.”

저녁이 되자 밤에만 이씨를 돌보는 간병사 유아무개(42)씨가 왔다. 이씨가 밤에도 잠을 통 이루지 못하기에 밤 시간에는 유씨와 양씨 두 간병사가 번갈아가며 돌보는데, 이날은 기자가 양씨 대신 유씨와 한 조를 이루기로 했다. 밤 10시께 이씨는 편히 잠드는 듯 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나 한번 잠에서 깨어나자 다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병실 바닥에 놓은 보조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어김없이 ‘탁탁 탁탁’ 찾는 소리가 들린다. 좀더 편한 자세를 잡도록 침대를 옮기거나 튼 입술에 약을 바르고 소변을 보도록 돕는 일 등 밤이 깊어도 일은 끝날 줄 몰랐다. 아무리 눈이 감겨와도 환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경쓰느라 통 잠들 수가 없었다.

전쟁 같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다시 온 양씨와, 유씨는 서둘러 이씨의 몸을 씻기고 머리를 감겼다. 침대보와 환자복도 갈았다. 이날은 이씨가 신장 투석을 받기 위해 투석실로 가는 날이므로 미리 가래도 제거해 놓고 아침끼니·약 등도 챙겼다. 유씨는 “아침 7시부터 8시 사이는 간병사들이 가장 바쁜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침대가 투석실로 가는 걸 보고서야 잠깐이나마 쉴 틈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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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는 “그래도 오늘은 토요일”이라며 “주급도 받고 퇴근도 할 수 있어 일주일 가운데 제일 좋은 날”이라고 말했다. 대개 일주일 단위로 일을 하는 간병사들은 보통 일요일 오후 병원으로 출근했다가 그 다음주 토요일 오후에나 퇴근을 한다. 집에서 병원으로 출퇴근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살다가 집에 잠시 다녀오는 셈이다.

간병료는 거동이 어려운 중환자는 하루 6만5천원, 그렇지 않은 환자는 하루 5만5천원으로 보통 퇴근하는 날 받는다. 24시간으로 나눠 시간급을 따져보면 최저임금(3770원)에도 못미치는 2700원 정도다. 더구나 간병사는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각종 수당은커녕 4대 보험 적용도 안 된다. 병원에서 지정한 인력 알선업체들이 간병사와 환자를 연결해 주고 알선 수수료를 받으면, 간병사들이 환자 또는 보호자들과 상의해 ‘알아서 일하는’ 방식이다.

“나이가 많은데 배운 것은 없어 간병사 일을 계속한다”는 양씨는 “비록 노동조건은 열악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고정적으로 돈이 들어와서 좋다”고 말했다. 특히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학생 딸의 등록금을 대야 하는 그로서는 절실하다. 양씨는 “병원에 간병사 없는 병실이 없을 정도인데, 그 많은 간병사들이 소속된 곳도 없이 일한다는 게 웃기긴 하죠”라며 일주일치 옷가지를 가방에 집어넣으며 퇴근을 준비했다.

간병사 무료 알선단체인 ‘희망터’의 최경숙 소장은 “병원 간병은 환자가 병원에 있으면 당연히 수요가 발생하는 보편적인 사회 서비스”라며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병원과 인력 알선업체 등 민간에만 맡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병을 공적인 의료 서비스의 한 영역으로 활성화시켜야 간병사 일자리 창출, 간병사 노동권 보장, 간병 서비스질 향상 등 세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글·사진/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12일 오전 구로구 고척동에서 홀로 사시는 정환옥씨의 집에서 김정란 간병인이 식사을 차려주고 청소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정용일 기자yongil@hani.co.kr

#2 요양서비스 현장 가보니

노인에 ‘딸노릇’ 보람 있지만…일자리 찾기 힘들어
월급 60만~70만원 고작…“임금 현실화 개선책을”

12일 아침 9시께 서울 구로구 고척2동 주택가. 김경란(41)씨가 1m 높이의 문을 밀고 들어서자, 정환옥(76) 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인사를 나눈 김씨는 곧바로 벽 한가운데 붙어 있는 카드에 휴대전화를 댔다. 그의 휴대전화로 ‘요양서비스 개시시간 12일 9시00분00초’라고 적힌 문자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지난 9월부터 정부가 노인들을 위한 요양서비스 사업에 전자 바우처 제도를 도입한 데 따른 것이다. 김씨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꼭 족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겨울이면 늘 두툼한 담요가 깔려 있는 할머니의 단칸방은 요양보호사 2급 자격증을 가진 김씨가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마다 찾는 일터다. 김씨가 이곳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다리가 불편한 할머니의 오른쪽 발목에 저주파 자극기를 대는 것이다. “물리치료에 쓰이는 기계인데, 노인분들이 워낙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항상 갖고 다닌다”는 설명이 따라온다. 할머니가 아픈 다리를 기계에 맡긴 사이, 김씨는 서둘러 설거지와 청소를 시작했다. 방을 두번 걸레로 훔치고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있는데, 할머니가 “화장실에 물도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곧바로 화장실로 간 김씨는 수도 상태를 확인해 이를 수리하고, 요강마저 깨끗이 비웠다.

“미나리전이 먹고 싶네.” 할머니의 이어지는 주문에, 김씨는 다시 장보러 나설 채비를 했다. 할머니에겐 “김씨가 찾아오는 수요일과 토요일이 배부른 날”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월 35만원씩 생계지원비를 받는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김씨에게 건넸고, 김씨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시장에 나가 미나리와 식용유, 두부와 청국장을 사와 음식을 만들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로 외롭게 사는 할머니에게 정씨는 “든든한 딸내미이자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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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특별한 기술도 없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다는 게 굉장한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 형편만 괜찮으면 이게 참 좋은 일인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김씨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3시간의 요양서비스를 제공하고, 오후 5시30분까지 자활지원센터에서 일을 맡아 보면서 버는 돈은 한달에 68만원 정도다. 그래서 김씨의 한달 가계부는 늘 적자다. 김씨는 “남편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밀린 이자도 갚고 살림에 보태기도 했는데, 요즘엔 그나마 그런 일자리도 없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가끔 급여가 좀더 많은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김씨와 같은 돌보미들이 받는 급여는 시간당 6천원씩 한 달에 70만원 정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두 집을 각각 세 시간씩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해 얻는 대가지만,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러다보니 김씨가 소속된 구로삶터자활지원센터만 보더라도, 이곳을 통해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12명 모두 저소득층 여성들이다.

올 들어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노인장기요양제도를 시작해 적잖은 노인들이 시설로 들어가면서 가정에서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구로자활센터에서도 ‘재가 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이 100명에서 43명으로 줄었다. 여기에다 전자바우처 제도가 시행된 뒤로는 임금이 사실상 깎이게 됐다. 고정적인 월급 대신 시간당 6000원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바우처 제도 시작 전에는 월급제로 72만~78만원까지 나왔는데, 지금은 네 집을 돌면 60만원이 안 되고, 다섯 집을 돌면 70만원이 조금 안 된다”고 말했다.

센터의 안강숙 가사간병서비스사업단 팀장은 “여기서 근무하는 분들은 이미 저소득층 여성들이라, 현실적인 임금을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사회적 일자리의 핵심적인 개선 방향”이라며 “이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 노동 자체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3 결식아동 도시락 챙겨보니

하루 10시간 빈곤층 도시락 싸주고 월급 100만원뿐
나랏일 대행 ‘사회적 기업’ “주방도우미보다도 저임금”

서울 마포구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해 주는 일을 하는 김아무개씨가 12일 오전 자신의 도시락 가게로 출근하고 있다. 석진환 기자

12일 아침 6시40분, 김아무개(64)씨가 서울 마포구의 12평짜리 임대아파트를 나섰다. “감기로 며칠째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그는 새벽 찬바람에 연신 쿨룩거렸다. 버스를 타고, 집에서 나선 지 40분 뒤에 도착한 ‘ㅇ도시락’ 가게가 그의 직장이다. 가게에 다다르자마자 김씨는 하얀 조리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어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쌀을 안치고, 도마와 프라이팬 사이를 분주히 오갔다. 식칼과 뒤집개가 춤추듯 움직였다. 입마개로 얼굴을 거의 감싼 그는 “도시락 247통에 들어가는 반찬 세 가지를 매일 새로 만들어야 한다”며 “아침 나절엔 잠시도 숨돌릴 틈이 없다”고 했다. 9시30분, 쇠고기 볶음, 물미역 생채, 더덕무침 등이 하나씩 제 모양을 갖추었다. 빠른 손놀림이 이어지면서 반찬들이 도시락 용기로 옮겨갔다. 오전 11시, 이윽고 배달 준비가 끝났다.

김씨가 대표로 있는 가게는 마포구 관내 저소득층 및 결식아동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김씨를 포함해 가게를 운영하는 세 사람 모두 10년 전까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하지만 구청이 운영하는 지역자활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뒤 2003년부터 따로 도시락 가게를 냈다. 한 통에 3천원씩을 받고 구청에서 지정한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고 거두는 일을 한다. 나라가 해야 하는 일을 위탁받아 대행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인 셈이다. 평소에는 250통 정도를 배달하지만, 방학 기간이면 배달해야 하는 도시락이 1천통을 넘기도 한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배달을 맡은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도착했다. 대학생이 포함된 직원들은 공덕동·아현동·도화동 등 가까운 쪽은 오토바이로, 비교적 먼 상암동 쪽은 미니 승용차 ‘다마스’를 이용해 배달을 떠났다. ‘다마스’는 오후에도 40통을 싣고 한 차례 더 배달을 했다. 박씨는 “어려운 가정에 매일 정확하게 배달을 해줘야 하기에, 아파도 쉬기 어렵다”며 “특히 배달해야 하는 집을 파악하고 있는 직원이 일이 생겨 못나올까봐 항상 마음을 졸인다”고 했다.

점심식사 시간, 그나마 한숨 돌린다. 하지만 빈 도시락통이 어느덧 산더미같이 쌓인 채 김씨와 동료들을 기다렸다. 배달을 나간 이들이 도시락통을 거두어 오기 때문에 매일 설거지를 해야 하는 반찬통과 밥통이 500여통에 이른다. 김씨는 “빈 도시락통을 재떨이 삼는 철없는 어르신들도 있고, 며칠 만에 용기를 반납해 남은 음식이 상하거나 눌러붙는 경우도 있어 설거지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두 명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틈틈이 다음날 아침 만들 반찬거리를 미리 손질해야 한다. 야채도 다듬어야 하고, 쓸 고기나 생선도 미리 재거나 잘라놓아야 했다. 오후 4시께가 넘으면서 모든 일이 끝났다. 손질 많은 날보다 한 시간쯤 이른 시각이다. 다음날은 토요일, 일주일 중 일이 가장 많은 날이다. 일요일 하루 쉬는 대신 일요일치 간식거리까지 이날 함께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렇게 하루 10시간씩 일하고 김씨가 가져가는 돈은 한달에 정확히 120만원이다. 그나마 그는 가게 대표라서 그 정도다. 두 동료의 수입은 월 100만원이다. 기본급 90만원에 조리수당 10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이마저도 올해 초 급여가 오른 액수이고, 지난해까지는 기본급이 70만원이었다. 도시락 가게는 김씨 등 세 사람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지만 구청의 일을 받아서 하는 것이기에 급여나 지출을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렵다. 구청 역시 빠듯한 예산 때문에 지원을 확대할 여력이 없다.

김씨는 “구청의 지원 덕분에 지금껏 일자리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하는 일에 비해 버는 돈이 너무 적은 것 같다”며 섭섭함을 숨기지 않았다. 스스로 자활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벗어났지만, 수급 자격을 유지하면서 공공근로 등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방학 때 배달해야 할 도시락이 늘어나면 별 수 없이 도우미를 쓰는데, 이들에게 주는 돈이 자신들의 벌이보다 많을 때는 허탈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도우미 쓰는 데 시간당 6천원씩 계산해 하루 6만원을 줘야 하는데, 우리 벌이는 시간당 6천원이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이어 “그나마도 한달짜리 일이라 사람 구하기가 힘들고, 그렇다고 직원 한 사람을 더 두자니 가게 타산이 안 맞아 같이 일하는 사람들만 죽어라 고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날 오후 4시께 “몸이 아파 먼저 들어가겠다”며 가게를 나섰다. “가게에 남아있는 둘 가운데 한 명은 갑상선으로 고생했고, 또 좁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다들 관절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미안함이 짙게 배어난다. “지금은 군대 가고 없는 아들과 둘이 산 지 오래됐다”는 김씨는, 다시 쿨룩이며 휑한 빈집으로 돌아갔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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